우아한 승부사 - 품위 있게 할 말 다하는 사람들의 비밀
조윤제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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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승부사는 무력이 아닌 전략과 지혜로 이기는 사람이다.

힘으로 상대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상대를 감동시켜 따르게 하는 사람이 바로

우아한 승부사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축복일 수도 있겠지만 말로 인해 재앙과 근심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적재적소에 알맞은 말을 한다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말을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말은 입에서 나오지만 그 근원은 마음이다.

마음에서 비롯된 감정과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면 말과 행동이 무너지게 되면 말로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게 된다.

그래서 생각을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하는데,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곧 그 사람 자신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조심하라, 생각은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말은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행동은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하라, 습관은 인격이 된다.

인격을 조심하라, 인격은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데로 된다.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품격을 나타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인정을 받거나 그만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기에 우리는 말을 잘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마음 다스리기도 쉽지 않은데 말을 다스리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말은 단순히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품, 인격, 가치관, 본성 등이 집약되어 나오는 것이다.

내면의 힘이 말이 되고, 내면의 충실함이 말의 충실함이 되는데 우린 내면보다는 겉을 꾸미는데 집중하다 보니 얼마 가지 않아 밑천이 바닥나고 만다.

결과적으로 말을 잘하고 싶다면 내면의 지혜를 가꾸고, 그 내면을 잘 전달할 수 있는 표현력을 갖춰야 한다.


옛 현자들은 마음 다스림을 수양의 첫걸음으로 삼았고, 그 지혜를 고스란히 고전에 담아 주었다.(p.6)

이 책은 약 20여 권의 고전에서 뽑은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논어> <맹자> 등의 유가 철학서, <도덕경> <장자>등의 도가 철학서, <손자병법> <삼략> 등의 병법서에서 말과 관련한 통찰력 있는 글들을 뽑았다.

말의 기법에 관한 것도 있지만, 마음의 다스림과 인생의 이치를 말하는 글도 있다.

그리고 그 이치들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지를 알려주는 지혜가 담겨 있다.(P. 7)

저자처럼 수많은 고전을 읽으면서 지혜와 통찰을 얻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수십 권을 책을 읽고 내면의 지혜를 쌓는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 책 한 권을 통해 이치와 지혜를 깨달을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항상 대하는 사람,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말이 충실하고 아름다워야 어떤 곳에서도 멋진 표현을 할 수 있다.

혼란한 상황을 일시에 정리하는 힘, 중요한 자리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막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 통렬한 일침을 가할 수 있는 힘도 여기서 비롯된다. (P. 8~9)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이다."

경박하고 무책임한 말이 판치는 세상에 대한 <명심보감>의 경고라 하겠다.

사람들은 하루에 평균적으로 약 7만 단어를 말한다는데 이렇게 많은 단어를 말한다는 것조차 인식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노자는 "말을 많이 할수록 자주 궁해진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말하며 번지르르한 말, 진실하지 못한 말, 실천하지 못하는 말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요즘 악플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안타까운 죽음들 뒤에는 그들을 힘겹게 만들고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무서운 말들이 있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은 물론이고 사람을 다스리는 말을 하고 싶다.

따뜻하고 정감이 있으며, 합리적이고 품위와 기품이 넘치고, 당당하면서 위엄이 넘치는... 그러한 말을 하고 싶다.

<우아한 승부사>에 소개된 옛 현인들의 글을 읽으며 공자의 배려, 맹자의 호연지기, 노자의 겸손, 장자의 여유, 한비자의 지략, 손자의 전략을 통해 품격과 내공의 말을 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을 갖출 수 있었다.

막말과 거친 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힘도 얻고, 말과 대화의 진정한 의미와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하고 귀한 시간이었다.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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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샌디에이고 - 한국과 미국을 바라보는 이방인의 시선
복일경 지음 / 바이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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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과 미국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 유학길에 따라나서면서 10년 동안을 미국에서의 생활하게 되었다.

가난한 유학생 부부에게 미국에서도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샌디에이고에서의 생활을 막막함 그 자체였다 한다.

의식주가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고, 샌디에이고는 물론이고 미국 어디에서나 존재했던 수많은 '보이지 않는 벽'은 타국에 주눅 든 유학생에겐 더 큰 어려움이었다.

값이 싼 아파트는 흑인만이 거주하는 구역이거나, 베트남 갱단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구역이라 도저히 살 자신이 없었고, 결국 안전을 위해서라도 비싼 아파트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곳에도 인종, 언어, 문화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세워진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고 있더란다.

그 벽은 직장을 구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보내는데도 위압을 가해 왔고, 그들과는 결코 같아질 수 없다는 암묵적인 사실과 소외감으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한다.

그래도 미국 시민권자였던 아이들만은 이방인이 아닌 주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차가운 시선들을 견뎌나갈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저자 또한 벽을 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잦은 이사로 낯선 환경에 계속 내몰리다 보니 스스로 벽을 허물고 먼저 다가가는 노력을 통해 동네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게 되었단다.

저자가 미국에서 겪었던 내 생애 최고의 시간들은 임신과 출산의 기간이었단다.

미국에 있으면서 경험했던 임신과 출산의 시간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축복과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생애 최고의 시간을 선사해주었단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현실은 비참한 수준이다.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도 대두되고 있지만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어, 임신을 하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임신을 하고도 핑크빛 좌석의 주인공으로 앉는 게 쉽지 않으며, 작은 배려와 축복의 인사마저도 찾아보기 힘들다.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우리나라 여성(워킹맘)들이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막막하기만 한데, 아이만 계속 낳으라고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미국 엄마들과 친해지면서 그들의 육아법이 한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쉽게 낳고 쉽게 기르더란다.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종종거렸던 저자는 그들의 육아 방식이 게으르고 성의가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이들과 함께하는 산책과 놀이에 집중하며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이들 위에 얹어진 '신의 손길'.

그들은 신의 손길을 믿기에 신의 영역에서 물러서 있었지만 저자는 자신의 영역이라 착각해 비켜서지 않으려 했었다는 것을...

"You don't have to be d god, honey. She's gonna be OK." (P.72)

잔소리를 멈추고 앞이 아닌 옆에 서서 아이들이 신의 손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함께 지켜보는 일이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킨더'라는 이름으로 시작되는 미국의 공교육 과정에서 7살 아이들은 '예절 지키기'와 '학교 규칙 엄수하기'를 배운다.

이 엄격한 규칙 뒤에는 체계화된 규제와 제제가 숨어 있어 아이들은 서로의 모습을 통해 규칙을 배워나간다.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를 다니는 저자의 딸들은 학교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욕을 밥 먹듯이 하고, 장난처럼 몸을 밀치고 때리며, 선생님 말씀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친구들을 이해하기 어려워서란다.

친구들에 대한 예의와 규칙을 지킬 수록 학교생활이 더욱 즐겁고 편안해진다는 것을 많은 아이들이 알게 되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란다.

한국의 교육 환경은 심각한 수준으로 뒤틀어져있고 엉망이라 어디서부터 시작하며 바로잡아야 할지 막막하다.

어쩌면 가장 기본에 충실한 그들의 삶과 문화가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사커맘의 하루> 에피소드는 미국의 사커맘과 한국의 학원맘에 대한 이야기다.

스포츠가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미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체계화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스포츠 활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적극 지지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이 아이들이 모두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취미생활의 일부분으로 운동을 즐긴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오랜 기간 운동으로 단련된 체력은 물론, 주어진 프로젝트를 위해 서로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를 터득해나가므로 한국에서 공부만을 잘해 유학 온 아이들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수한 두뇌를 가진 한국 학생들이 미국 대학에 입학하기는 쉬워도 졸업하기는 어렵다.

미국에서 아이를 교육한다는 건 정말 천국일 것 같다는 부러움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욕심을 비우고 비교를 멈추고 올곧이 아이만을 바라봐 주는 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첫아이를 키우면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긴 했지만 아이가 원하고,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평생의 친구가 될 예술 분야에 대한 교육과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도록 해준 것은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그럴 시간에 학원 하나 더 보내라고 했던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악기를 가르치고,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었더니 희로애락을 느낄 때 늘 음악과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감정을 조절하고, 체력을 향상시킬 줄 알았다.

공자도 예술을 학문의 최고 경지로 꼽았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P.114)

약간의 기술과 노동으로도 만족스러운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미국은 알바 천국이었다.

까다로운 심사에도 불구라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몰려드는 건 높은 인건비 때문인지도 모른다.

베이비시터나 캐시어 등의 알바만으로도 넉넉한 용돈을 벌 수 있는 미국의 학생들과 밥도 굶어가며 두세 개의 알바를 해내야 하는 한국 학생들의 삶은 너무도 차이가 난다.

저자는 십 년 전 미국에서 시급 사만 원을 넘게 받으면 식당에서 알바를 했는데, 한국에 돌아와보니 한국의 최저임금은 8천 원 채 되지 않더란다.

대단한 직업이 아니더라도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충분한 대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최저임금 인상에 찬성한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올려야 하는 게 맞는 일이다.

미국 차량국 DMV는 차에 관한 모든 것을 관리하는 곳이다.

일이 느려 터지기로 악명이 높은 곳인데 영화 <주토피아>에서는 DMV에 일하는 직원들이 모두 나무늘보로 나와 재치 있게 꼬집고 있다.

저자는 DMV와 함께 미국 관공서에서 업무를 보고자 한다면 두세 시간은 기다림은 기본이고 네 시간에서 여섯 시간도 충분히 걸릴 수 있으며, 빈틈없는 서류 준비와 함께, 신문, 책, 급격히 떨어지는 당 충전을 위한 사탕, 스낵을 꼭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조급함은 땅에 묻고 가야 하며, 몸속에서 사리가 하나둘씩 생겨날 수 있음도 예상해야 한단다.

반면 한국에 돌아와 운전면허갱신을 위해 시험장을 찾았다가 겪은 친절한 서비스와 속전속결의 스피드는 신선한 충격이었단다.

<신데렐라의 오십 번째 생일>는 미국에서의 생일파티 문화에 대해 알 수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

7세, 10세, 16세, 40세 등 특정한 나이대에 치르는 성대한 생일파티는 다수의 미국 관련 드라마, 영화, 책을 통해 살짝 접할 수 있었던 문화였다.

특이했던 마흔 살 생일인 '블랙 포티 blasck forty'는 젊을 넘어서는 나이라고 여기며 죽음에 가까워지는 나이란 뜻을 담고 있어 모두 검은색 옷을 맞춰 입고 주인공의 생일을 추모(?) 하는 다소 서글픈 생일파티인 것 같다.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40대에 죽음을 논하다니...

저자의 바램처럼 50세 생일 때 '화이트 피프티 white fifty' 생일 파티를 성대히 치르길 바란다.

<안녕, 샌디에이고>는 저자의 미국 유학 생활 도전, 적응, 생활밀착형 맞춤 이야기다.

두 나라에서 느낄 수 있는 차별화된 에피소드를 통해 삶 속에 깃든 습관과 문화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유학을 준비 중이거나 아이들과 함께 미국 생활을 계획 중이라면 미국 생활을 미리 알 수 있는 에피소드 가이드북으로도 유용할 것 같다.


미국에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저자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았단다.

모든 점에서 다르다고 여겼던 친구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비슷하게 생각되었고, 종교와 이념보다는 친구를 더 소중히 생각하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저자를 포함한 모든 이민자 친구들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별로 달라지진 않았단다.

정작 달라진 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란다.

예전에는 나의 삶이 꼭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가르쳐준 귀한 가르침은 삶이 꼭 특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이민자라 할 수 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도서에 살고 있는 사람들, 낯선 거리에서 낯선 사람들과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이민자인 셈이다.

그럼에도 삶은 살아가게 마련이고 낯선 이웃이 곧 친한 친구로 변할 거라고 믿을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의 삶은 이미 특별해졌는지도 모른다.

(P. 24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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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 나와 세상에 속지 않고 사는 법
원제 지음 / 불광출판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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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가짜 같아 삶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던 스님은 진리를 위해 살겠노라 결심을 하고 출가하게 되었다 한다.

선원에서의 수행은 녹록지 않았고, '세계 일주나 가자!'며 2년여간 티베트를 시작으로 5대륙 45개국으로 세계 일주를 다니며 수행을 계속 이어나가셨단다.

자신을 땡중이라 부르는 원제 스님은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를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그냥저냥 쉬는 듯 노는 듯 '중놀이'하며 지내고 계시단다.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에서 스님은 '사람과 세상은 이미 그대로 답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릇된 질문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스스로 답이 된다'는 그 말씀이 어렵고 이해가 되질 않았다.

솔직히 책을 통해 하시는 수많은 말씀들이 좋은 말씀인 건 알겠지만 알듯 말듯 어렵고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라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 의문을 가지고 책을 읽어가다가 <판단중지>란 글을 읽었다.


내가 모른다고, 혹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거나 그런 것은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단지 내가 모를 뿐입니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내가 모르는 것으로 남겨두면 될 일이지, 상대방이 틀렸다고,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하면 크게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실수를 저지르면 공부할 기회를 놓칩니다. 내가 살아갈 기회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P. 134)


스님도 출가하기 전 대학생 시절에 숭산 스님의 책을 읽으며 도무지 모르는 것 투성이라 답답했고 궁금증만 점점 더 커져갔다고 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거나 다른 해석을 봐도 이 궁금증은 근원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아 그렇게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고 수행을 통해 스스로 의문을 해결하고자 하셨단다.


우리는 보통 내가 모르면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불교의 선(禪)을 대하는 데 다소 이러한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본인에게 이해되지 않기에 부정해버리거나 의미를 격하시켜버립니다. 선은 머리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논리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상식을 벗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 선이 천년 넘게 지속되어 온 것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말장난이거나 거짓이었다면 결코 천 년을 이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략)

이 선 공부의 요체는 의심입니다. 이 의심을 지속하는 것이야말로 선 공부의 시작이며 끝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종류의 의문을 품지만, 그것을 끝까지 이어가지는 않습니다. 의심을 계속 이어가기란 그만큼 힘든 일입니다. 선을 부정하거나 의미를 격하하는 분들의 공통적인 성향을 보면 이 의심에 머무르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의문이나 의심이 아닌 '답'입니다. 선의 역사에서 그 어떤 법거량(선에 대해 주고받는 문답)을 보더라도 어떤 논리와 이치로 답을 도출해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의문만 생길 뿐입니다. 모든 법거량은 의심을 위해서 생겨난 하나의 장치이지, 답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의심이 이어지고 깊어질수록, 그래서 의심밖에 남지 않아 의심과 하나가 될 때에야 비로소 그 모든 의문이 무너지게 됩니다. 답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의문의 사라지는 것입니다. 의문이 사라짐으로써 모든 것이 답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이 선입니다.

(P. 135-136)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을 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삶이 있습니다. 하나는 답을 구하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의심하는 삶입니다. 답을 구하려는 삶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아 나서고 구한 것들을 축적합니다. 축적한 것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여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의심하는 삶은 축적된 것들을 돌이켜보고, 의심되는 것들을 비워갑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바로 이 자리를 돌이켜봅니다. 그리하여 두 삶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구하는 삶은 여전히 밖을 향해 나서게 되고, 의심하는 삶은 곧장 그 자리에서 멈춰지게 됩니다. 답이란 결코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멈춤으로써 드러나는 것입니다. 구함이 멈춤으로써, 그 모든 것들이 답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137쪽)


사람들은 아는 만큼의 삶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아는 것을 끝없이 넓히려고 애쓴다.

스님은 아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다고 하셨다.

책을 통해 삶에 대한 모든 의문을 꿰뚫어보는 '본질적인 앎'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 책 또한 그 앎에 대한 스님의 수행 기록이라 하셨다.

책의 마지막 날개에는 '나와 세상에 속지 않고, 두려움 없이 사는 법'을 알려주는 '원제 스님의 킬링 법문 8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1. 꼭 삶의 의미가 근사해야 할까

2. 무엇이든 의심하기

3. 자신이 의지하는 등불을 꺼라

4. 판단 중지

5. 과거의 상처를 이용하지 마라

6. 문제는 없다. 상황이 있을 뿐

7. '나'는 이겨서 바꿔야 할 대상이 아니다

8. 행복만을 선택하지 마라


세상에만 속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속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나의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며 나의 존재와 생각 자체를 의심해보아야 한다고 하셨다.

또한 자신이 의지하고 믿고 따르며 소중히 여기는 어떤 가치와 믿음에서도 벗어나야 하며, 스스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등불을 꺼버릴 때 비로소 원래 있던 환한 달빛이 나오게 되면서 전체로서의 삶이 드러나게 된다고 하셨다.

과거에 집착해 현재를 불행하게 사는 것도 피하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들만 선택하려는 것도 멈추라고 했다.

나에게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허용해 줄 수 있어야 하며, 그리하면 기쁨도 우울도, 어두운 생각도, 분노도 그 모든 게 진리로서 드러나게 되어있다고 했다.

킬링 법문을 말씀하시지만 결국엔 힐링 법문이 되는 좋은 말씀이다.

수없이 되새기며 기억해야 할 말씀인데 정작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엔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 아쉽고 안타까워 이불킥하게 되는 상황도 더러 생기는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쿵쾅거리는 윗집의 층간 소음으로 끓어오르는 화를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누그러트릴 수 있었다.

곁에 두고 마음공부를 위해 수시로 읽어야 할 것 같다.



나에게만 갇혀 산다면 사람이나 세상은 상대해야 할 의문투성이겠지만, 나라는 집착에서 벗어난다면 사람이나 세상은 그대로 온전한 답입니다.

(P. 8)


세상에 여러 삶이 있는 것뿐 아니라, 단 한 개인에게도 다양한 삶의 모습과 역할이 있습니다.

답을 정해서 고정시키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이미 답은 다채롭게 펼쳐져 있습니다.

어느 한 역할에만 머무르려 고집하지 않는다면 동시에 여러 역할들도 아무런 걸림 없이 원만하게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고정된 실체란 없습니다.

실체화라는 망념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나로 향한 편중된 집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렇게 그릇된 질문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사람과 세상은 이미 그대로 답입니다.

질문한다면 고민이겠지만, 답이기에 누리는 것이고, 확인하는 것이고, 누리는 것이고, 써먹는 것입니다.

답은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잘못된 질문이 멈춰지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답으로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P. 9)



<니 얘기>

절집에서 큰스님들이 종종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건 경전에 나오는 말이고..., 그거 말고 니 얘기를 해봐, 니 얘기,"

(P. 59)


원제 스님은 경전 공부를 많이 하고 수행을 잘 해나가 불교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달변이 된다 해도, 자기 눈앞의 삶이 진리로서 펼쳐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큰스님들은 ' 니 얘기'를 묻는 것이란다.

불교를 잘 알고 조사의 뜻을 잘 꿰고 있다 하더라도, 본인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고, 스스로의 삶과 경험이 진리로서 드러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헛똑똑이의 삶이라고 하셨다.

정말로 두려움이 없다면, 자신의 삶으로 거침없이,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바로 '니 얘기'라고 말씀하신다.


<존재 이유>

사람은 존재 이유를 찾는다.

그래서 '대상'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 대상이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고, 나의 가치가 증명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충만하지 못하니까 그 결핍감에 존재 이유를 찾아 헤매고, 결핍감을 채워 줄 대상을 찾아다닌다.

결국 변화하는 대상에 내 마음도 수시로 변화하면서 대상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본래 주인인 나를 버리고, 대상의 객으로 사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방천지로 치구(말을 타고 내달리는 것처럼 정신없이 쏘다님) 하는 마음을 멈춰야 합니다.

멈추지 않고는 절대로 안 됩니다.

멈춰야만 비로소 보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더 이상 존재 이유를 찾아 헤매지 않습니다.

존재 그 자체입니다.

존재로서 그렇게 환하게, 분명하게, 자유롭게, 텅 비게, 충만하게 있는 겁니다.

애초부터 무얼 그렇게 구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P. 62-63)


<스승은 있다>

그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 수행을 통해서 마음을 비울 준비를 해나가야 합니다.

비우지 않고서는 본래 자연스럽게 있는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스승도, 선지식도, 부처도 찾아 나서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열리면 새로운 안목이 드러나게 됩니다.

(중략)

내 안목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고 세상도 바뀌게 됩니다.

그러한 동시에 못난 모습만을 보아 왔던 내 자신이 얼마나 큰 자만에 빠져 있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갇혀 살 때는 모릅니다.

벗어날 때에야 비로소, 그간 갇혀 살았다는 사실을 자각할 뿐입니다.

(중략) 세상에 수많은 사람의 수만큼, 수많은 세상이 있고, 그 세상만큼 다른 우주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개인과 개인의 사소한 만남이 나이라 서로 다른 세상과 우주의 거대한 조우인 셈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느끼는 딱 그만큼만, 사람을 판단하고 세상을 평가합니다.

이는 명백한 진리입니다.

만일 내가 보는 사람과 세상이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사실 그건 내가 그런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정말 제대로 사람을 보고,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은 신가요

그럼 비우십시오,

비운만큼 사람과 세상은 새롭게 열립니다.

(P. 87-88)


<킬링 법문>

스님이 힐링 법문보다는 킬링 법문을 주로 하게 된 이유는 '선(禪)'이라는 공부 방식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다.

초기 경전으로 공부를 하면서도, 어록을 보면서 줄곧 공부를 했는데 그 이유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의심이 들었고, 집중이 되었기 때문이었단다.

비교적 이해가 잘 되던 초기 경전보다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에 더 큰 관심이 갔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오히려 더 큰 알 수 없는 믿음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란다.


의심의 속성은 '킬링'입니다.

눈앞의 감각 대상과 경험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는 것이며, 거리를 두는 것이고 속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실체화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나라는 실체가 그 얼마나 강력한 중심이며 끈질긴 집착인가요.

나 역시도 포함되는 그 모든 대상들과 감각들에 대한 실체화에서 벗어날 적에 우리는 비로소 눈앞이라는 진리를 만나게 됩니다.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앞도 뒤도 없는 그러한 전체로서의 눈앞입니다.

의심이라는 수행은 나와 대상과 감각, 생각들에 대한 집착을 킬링 하는 것이지만 그 킬링이 무르익으면 종국에는 결코 킬링 할 수 없는 전체로서의 눈앞이 자연스레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허공 같은 눈앞입니다.

그 누가 허공을 벨 수 있으며, 허공을 태울 수 있겠습니까.

의심이라는 수행은 이런 것입니다.

그 모든 대상들에 대한 집착을 킬링 하는 것이 의심이지만, 결코 킬링 할 수 없는 전체를 살려내는 것이 바로 의심입니다.

대상들을 죽이지만 전체를 살립니다.

킬링이지만 동시에 힐링입니다.

대사각활, 크게 죽는 동시에 제대로 살아나는 입니다.

(P. 1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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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
얀네 S. 드랑스홀트 지음, 손화수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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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의 저자 얀네 S. 드랑스홀트는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다.

노르웨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어보는데, 서문에서부터 노르웨이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유머란 찾아볼 수도 없고 묵직하고 어둡다고 말하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예술은 항상 진지하고 가치 있어야 한다는 노르웨이 풍의 문학적 성격에서 벗어난 작품으로, 코미디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출간되기 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 모았고, 노르웨이의 인기 코미디언 배우가 영화 저작권을 선점하기도 한 작품이라기에 더욱 흥미롭게 여겨졌다.


시시각각 찾아오는 불행마저도 멋지게 집어삼킨 최강의 '웃픈' 아줌마, 잉그리 빈테르는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라지만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좌충우돌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그녀는 노르웨이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며, 변호사 남편인 비외르나르와 딸(엡바, 제니, 알바) 셋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며 항상 미소를 짓는 가정적인 사람이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일상은 갖가지 걱정거리와 직장 내에서의 갈등,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하고 있는 일마저도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아 속을 졸이는 것으로 일관된다.

그렇다고 그녀의 삶이 불행한 것은 아니고, 다만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집이 좁아 조용히 쉴 공간이 부족한 것 같고, 직장에서는 약아빠진 동료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학부모회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사소하지만 성가신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신경 쓰이게 한다.

이사를 결심하고 부동산 매물을 찾던 중 그녀는 꿈에 그리던 집을 발견하게 되지만, 100년도 더 넘은 집이라 수리까지 생각하면 예산을 초과할지도 모를 가격에 남편 동의를 얻는 게 쉽지가 않다.

끈기 있게 남편을 설득해 오픈 하우스를 다녀온 후 남편의 동의를 얻게 되고 적정 가격선(725만 크로네)을 정한 뒤 입찰을 보기로 약속하지만, 집을 꼭 가지고 싶은 욕심에 예상 금액을 훨씬 초과한 금액(820만 크로네-10억 6천만 원 정도)으로 낙찰받게 된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부동산 시장에 먹구름이 끼면서 앞으로는 부동산 거품이 빠질 것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부동산 가격은 10~20% 하락하게 될 것이라는 뉴스가 연일 나오고, 새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 내놓은 현재의 집은 보러 오는 사람도 없고 가격마저도 내려야 상황에 처하게 된다.

살고 있는 집을 팔아야 하고, 새 집으로 이사 갈 준비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데, 대학에서는 학부 개편과 구조조정 압박과 함께 그녀를 러시아 국립대학과의 자매결연을 위한 사절단으로 떠나라고 통보한다.

그녀는 감당하기 벅찬 불행(?)들 속에서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져 심근경색, 방광염, 스트레스성 암, 메니에르병(현기증과 이명, 난청을 동반하는 귓병)까지 걸린 듯 힘들어하다 결국 응급실까지 실려가게 된다.

그렇게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러시아로 출국하게 되는데...

약아빠진 직장 동료 잉빌과 페터와의 러시아에서의 일정 또한 만만치가 않다.

과연 그녀의 불행은 끝은 어디까지 일까?



테홈.

'거대한 심연' 또는 '끝없이 깊은 구렁, 깊고 깊은 해저'를 의미함과 동시에 '휘젓다, 뒤흔들다, 말살시키다, 파멸시키다' 또는 '혼돈을 야기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단어.

성경의 가장 첫머리인 창세기 1장 2절에도 나와 있는 단어.

어둠이 황폐하고 텅 비어 있는 심연을 덮고 있다고 했던가.

어둠이 덮고 있었던 것은 바로 테홈이다.

(P. 69)

완전한 어둠 속에 존재하는 그 무엇.

항상 그곳에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그 무엇.

마치 지구를 감싸고 있는 지붕창과 같은 그 무엇.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올 혼란 또는 완벽한 무의 상태가 이 땅을 지배할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태홈에서는 시간을 찾아볼 수 없다.

질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선과 악을 가늠하는 잣대로 없다.

그것은 단지 테홈일 뿐.

테홈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고 두려운 것이라 할 수 있다.

(P. 70)

잉그리 빈테르는 '테홈'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왜 테홈을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되었는지는 잘 이해할 순 없지만, 어쩌면 자신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였거나,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과 직접적으로 부딪혀보겠다는 시도였을지도 모르겠단다.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말한다.



주인공인 잉그리 빈테르가 겪는 일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들이다.

우리 삶을 이루는 것에 진지함과 비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머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우리는 웃음으로 세상의 어려움과 역경에 굴하지 않음을 표현할 수 있다.

웃음은 세상이 단지 정의와 도덕만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현실화하는 방법이며, 언젠가는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미미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웃음은 세상의 진실된 얼굴을 보여주는 방법이며, 동시에 우리는 웃음을 통해 역경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웃음과 코미디가 필요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P. 9)

저자는 책을 읽는 독자들이 주인공에게서 스스로의 모습을 반추해내며 함께 민망해하거나 소리 내어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주인공 잉그리 빈테르를 통해 독자들에게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웃음 한 조각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는 항상 선택의 폭이 좁다는 것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에겐 넉넉한 시간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미 때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수많은 레스토랑을 지나쳐 온 후 막다른 길에서 만난 음식점은 맥도날드밖에 없을 때처럼 말이다.

(P.18-19)


동화나 소설에서나 나옴직한 것들을 원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내 머릿속에는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돼.

필요 이상으로 태양 가까이 날아가면 몸이 타버리는 불행이 따를 거야.

하지만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아보는 경고의 메시지가 뿌리를 내리기 전에 모두 뽑아버렸다.

(P. 86)


당신은 한 마리 참새예요.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매 순간마다 소비해버리지요.

무지와 두려움과 당신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리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요?

당신이 진정으로 찾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은 있나요?

(P.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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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지 마, 나 좋은 사람 아니야 - 세상의 기대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자기애 수업
파브리스 미달 지음, 김도연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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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가 나쁜 말인가?

우리는 흔히 나르시시스트를 나밖에 모르고, 공감 능력이 없고, 배려할 줄 모르며, 우리 사회를 이기적인 사회로 이끄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치켜세우면 '뻔뻔한 사람'이라 치부되기 쉽고, 자신의 장점을 떠벌리면 '잘난 척한다'는 소리를 듣기 쉽다.

항상 '겸손하라'는 사회적 규범이 우리를 옭아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 이면에는 자기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며,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몰라 자기 비하에 빠지고 마는 '불행한 나'가 있다.

나르시시즘은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를 말한다.

저자 또한 나르시스를 통해 '나를 알아야 한다는 것'과 '내가 완전한 나로서 행복하게 존재할 권리를 가졌다'는 교훈을 깨닫게 되었단다.

'나르시스'라면 허영 덩어리에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기애가 강한 자를 지칭하곤 했었는데, 저자는 우리가 신화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며 책을 통해 나르시스 신화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 자신을 몰라야 산다

나르시스는 강의 신과 물의 님프 사이에서 태어나 아들로, 나르시스가 태어날 때 예언자는 " 이 아이는 자신을 몰라야 늙어서도 살 것이다."라고 예언을 한다.(P.17)

가족들은 예언대로 나르시스가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지만, 그는 자랄수록 더욱 아름다워졌고 그를 본 사람들은 한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만 나르시스는 냉담하게 거절한다.

나르시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인지를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어느 날, 샘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나르시스는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기 자신'이라는 낯선 타인을 사랑하게 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가 죽게 되고 나르시스(수선화)란 이름의 꽃으로 피어난다.

나르시스는 참된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이유도 알지 못했고, 타인에 대한 마음도 닫혀 있었을 뿐이지, 자신을 못마땅해하거나 거짓되게 포장하고 과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아름다운 꽃으로 변신(꽃으로 환생) 하게 된 사람이며,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꽃으로 부활했다는 것이다.

* 너 자신을 알라

서양철학의 기틀을 마련한 소크라테스는 철학적 진보의 길을 연 위대한 사상가이다.

그가 남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어떻게 해야 자기실현을 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라는 요청이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나와 무관한 것을 알려고 애쓰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바를 스스로 깨닫도록 이끌었다.(P.94)

소크라테스를 통해서도 나르시시즘은 이해할 수 있다.

그의 가르침으로 철학은 각 개인이 지닌 천재성을 밝혀주는 나르시스적인 앎의 시대로 들어섰지만 후대의 왜곡된 해석(이론적인 성찰과 지식 전달만 강요하는 추상적인 교육)으로 본뜻과는 다르게 전해졌다 (p.97) 고 저자는 말한다.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나르시스의 시선. 이 시선으로 우리는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무관심하기보다 호기심을 갖고서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사랑하는 건 무엇보다 우리의 어떤 요소가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주는지 아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자신을 사랑하는 건 스스로를 탐구하는 지적인 사랑이다.

또한 이 사랑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다.

P. 154


*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명상은 저자를 나르시시즘으로 이끌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맺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여러 면에서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였던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용서하고 나니, 그런 약점들이 끔찍한 것이 아니라 약한 인간의 모습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고,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그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데,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랑에 대한 명상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학습하라고 강의하고 다녔지만, 솔직히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연습한다는 게 쉽지가 않았다고 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본 적도 없었고,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금지된 사랑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느끼거나, 마음이 닫혀 있거나, 이기적인 생각이나 분노가 차 있을 때는 훨씬 더 어렵다.

부모교육을 받으러 다닐 때 이와 유사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역할극을 통해 자기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아보는 수업이었다.

놀랍게도 무척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던 한 어머니는 의외로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기며 그런 자신을 싫어했고, 자식은 자기와 다르기를 기대하며 많은 것을 강요하고 다그치고 있었다.

역할극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속 깊은 마음을 읽고 깨닫게 되면서 펑펑 우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라고 다를까... 아마 똑같았겠지.

행복의 조건은 특별하지 않다.

후회, 부끄러움, 죄책감이 없도록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하는데, 우리는 끝없이 희생하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현재의 행복을 뒤로 미루고, 결국 끝없이 만족하지 못한 채 행복만 좇으며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나일 때 가장 행복한 것임으로 두려움 때문에 숨지 않고, 다른 사람 비위 맞추지 않고, 온전한 나로 있을 때의 행복을 느껴야 한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이와 동백 엄마의 행복에 관한 대사가 떠오른다.

"나중에 말고 당장 부지런히 행복해야 해."

"행복하자고 뭘 그렇게 기를 쓰고 살아. 행복은 쫓는 게 아니라 음미야, 음미."

나를 사랑하는 것은 '용기'를 갖는 것이다.

누군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요구할 때, 옳은 일이 아닌 것을 요구할 때 거절할 수 있는 그런 '용기' 말이다.

진정한 나르시시스트는 많은 사람이 확신하는 말보다 내 의식이 말하는 것에 더 귀 기울이고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런 순간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거절할 수 결단을 내릴 수 있단다.

언젠가부터 '근자감'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을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

모두가 나를 사랑하거나 높이 평가한다는 건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괜찮다.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나는 내가 '나'이기 때문에 행복하고, 용기를 내어 '나'를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나르시스즘은 내가 나에게 집중하는 힘을 키워주었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성장하게 하는 것을 찾아 완수하는 일이며, 나를 알고 내 안의 인간성에 한 발짝 다가서는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결코 초라한 나로 만족하면 살지 않을 것이다.

p. 204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나를 사랑하기 위한 네 가지 준비 단계'라는 설문지(?)가 있다.

'나를 사랑하는 일'은 고통, 감정, 어려움의 원인을 깊이 파고들어 구체적으로 변화시키고 앞으로 나아가 자신을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과 화해하는 일이라며 '자신과의 화해'를 먼저 시작해보게 하는 설문지다.

문항은 모두 4가지로 책을 읽기 전에 작성해 보고 책을 읽은 후 다시 한번 더 작성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부록으로 '언제 어디서나 자기애를 지키는 20가지 주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일부다.(p.205~206)

- <나가기 전 거울 보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한다.

누가를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

- <직장이나 학교에서>

작은 성취에 큰 보람을 느낀다.

의견을 말할 때 '우리'라고 말하지 않고 '나'라고 말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기보다 스스로 만족할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

- <자꾸만 자책하게 될 때>

나는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자신을 대한다.

쓸데없는 의무와 기대를 스스로에게 부여하지 않는다.

- <혼자 있는 시간에>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지킨다.

나의 약점을 인정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

우선 행복하자. 행복은 성공 후 주어지는 보상이 아닌 성공을 위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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