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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
얀네 S. 드랑스홀트 지음, 손화수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1월
평점 :
<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의 저자 얀네 S. 드랑스홀트는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다.
노르웨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어보는데, 서문에서부터 노르웨이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유머란 찾아볼 수도 없고 묵직하고 어둡다고 말하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예술은 항상 진지하고 가치 있어야 한다는 노르웨이 풍의 문학적 성격에서 벗어난 작품으로, 코미디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출간되기 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 모았고, 노르웨이의 인기 코미디언 배우가 영화 저작권을 선점하기도 한 작품이라기에 더욱 흥미롭게 여겨졌다.
시시각각 찾아오는 불행마저도 멋지게 집어삼킨 최강의 '웃픈' 아줌마, 잉그리 빈테르는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라지만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좌충우돌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그녀는 노르웨이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며, 변호사 남편인 비외르나르와 딸(엡바, 제니, 알바) 셋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며 항상 미소를 짓는 가정적인 사람이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일상은 갖가지 걱정거리와 직장 내에서의 갈등,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하고 있는 일마저도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아 속을 졸이는 것으로 일관된다.
그렇다고 그녀의 삶이 불행한 것은 아니고, 다만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집이 좁아 조용히 쉴 공간이 부족한 것 같고, 직장에서는 약아빠진 동료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학부모회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사소하지만 성가신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신경 쓰이게 한다.
이사를 결심하고 부동산 매물을 찾던 중 그녀는 꿈에 그리던 집을 발견하게 되지만, 100년도 더 넘은 집이라 수리까지 생각하면 예산을 초과할지도 모를 가격에 남편 동의를 얻는 게 쉽지가 않다.
끈기 있게 남편을 설득해 오픈 하우스를 다녀온 후 남편의 동의를 얻게 되고 적정 가격선(725만 크로네)을 정한 뒤 입찰을 보기로 약속하지만, 집을 꼭 가지고 싶은 욕심에 예상 금액을 훨씬 초과한 금액(820만 크로네-10억 6천만 원 정도)으로 낙찰받게 된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부동산 시장에 먹구름이 끼면서 앞으로는 부동산 거품이 빠질 것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부동산 가격은 10~20% 하락하게 될 것이라는 뉴스가 연일 나오고, 새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 내놓은 현재의 집은 보러 오는 사람도 없고 가격마저도 내려야 상황에 처하게 된다.
살고 있는 집을 팔아야 하고, 새 집으로 이사 갈 준비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데, 대학에서는 학부 개편과 구조조정 압박과 함께 그녀를 러시아 국립대학과의 자매결연을 위한 사절단으로 떠나라고 통보한다.
그녀는 감당하기 벅찬 불행(?)들 속에서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져 심근경색, 방광염, 스트레스성 암, 메니에르병(현기증과 이명, 난청을 동반하는 귓병)까지 걸린 듯 힘들어하다 결국 응급실까지 실려가게 된다.
그렇게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러시아로 출국하게 되는데...
약아빠진 직장 동료 잉빌과 페터와의 러시아에서의 일정 또한 만만치가 않다.
과연 그녀의 불행은 끝은 어디까지 일까?
테홈.
'거대한 심연' 또는 '끝없이 깊은 구렁, 깊고 깊은 해저'를 의미함과 동시에 '휘젓다, 뒤흔들다, 말살시키다, 파멸시키다' 또는 '혼돈을 야기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단어.
성경의 가장 첫머리인 창세기 1장 2절에도 나와 있는 단어.
어둠이 황폐하고 텅 비어 있는 심연을 덮고 있다고 했던가.
어둠이 덮고 있었던 것은 바로 테홈이다.
(P. 69)
완전한 어둠 속에 존재하는 그 무엇.
항상 그곳에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그 무엇.
마치 지구를 감싸고 있는 지붕창과 같은 그 무엇.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올 혼란 또는 완벽한 무의 상태가 이 땅을 지배할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태홈에서는 시간을 찾아볼 수 없다.
질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선과 악을 가늠하는 잣대로 없다.
그것은 단지 테홈일 뿐.
테홈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고 두려운 것이라 할 수 있다.
(P. 70)
잉그리 빈테르는 '테홈'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왜 테홈을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되었는지는 잘 이해할 순 없지만, 어쩌면 자신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였거나,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과 직접적으로 부딪혀보겠다는 시도였을지도 모르겠단다.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말한다.
주인공인 잉그리 빈테르가 겪는 일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들이다.
우리 삶을 이루는 것에 진지함과 비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머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우리는 웃음으로 세상의 어려움과 역경에 굴하지 않음을 표현할 수 있다.
웃음은 세상이 단지 정의와 도덕만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현실화하는 방법이며, 언젠가는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미미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웃음은 세상의 진실된 얼굴을 보여주는 방법이며, 동시에 우리는 웃음을 통해 역경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웃음과 코미디가 필요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P. 9)
저자는 책을 읽는 독자들이 주인공에게서 스스로의 모습을 반추해내며 함께 민망해하거나 소리 내어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주인공 잉그리 빈테르를 통해 독자들에게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웃음 한 조각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는 항상 선택의 폭이 좁다는 것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에겐 넉넉한 시간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미 때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수많은 레스토랑을 지나쳐 온 후 막다른 길에서 만난 음식점은 맥도날드밖에 없을 때처럼 말이다.
(P.18-19)
동화나 소설에서나 나옴직한 것들을 원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내 머릿속에는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돼.
필요 이상으로 태양 가까이 날아가면 몸이 타버리는 불행이 따를 거야.
하지만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아보는 경고의 메시지가 뿌리를 내리기 전에 모두 뽑아버렸다.
(P. 86)
당신은 한 마리 참새예요.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매 순간마다 소비해버리지요.
무지와 두려움과 당신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리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요?
당신이 진정으로 찾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은 있나요?
(P. 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