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매력적인 글쓰기 - 개정판
이형준 지음 / 하늘아래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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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다고 당장 글쓰기가 술술 되고,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샘솟는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대신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를 배우게 될 테니, 글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 (11p)


"글쓰기는 생각이고, 표현이고, 자유이다."


저자 이형준은 현재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며 발령 이후 고등학교에서 매년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다.

하나의 생각이 맺어질 때마다 기록으로 남기고자 글을 쓰고 되면서 지금까지 네 권을 책을 출간하게 되었단다.

<청소년을 위한 매력적인 글쓰기>는 2018년도에 첫 출간하였으며 이번에는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

현직에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느끼고 깨닫게 된 점을 교훈 삼아 이 책을 쓰게 되었으며 글쓰기 공포증 치유와 글을 잘 쓰고 싶은 학생의 멸망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학교에서 글쓰기 대신 문법만 죽도록 외우고, 문학의 갈래와 특징만 외운 학생은 글쓰기를 잘할 수 없다. 가르쳐준 적도 없는 것을 잘하라고 윽박지르는 어른이 현명할 리도 없다. 그래서 이 책으로 정리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글쓰기는 어떻게 연습하는지, 그리고 더 좋은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지를. (10p)


가장 먼저 '못날 글'이란 어떤 글인지 그 특징에 대해 알려준다.

주제를 이탈한 글, 자아도취에 빠진 글,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글, 이 3가지를 '못난 글'의 특징으로 꼽는다.

세상을 살아갈 때도 주제 파악만 잘하면 갈등이 생기지 않는데, 글 또한 다를 바 없다.

주제를 이탈한 글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글을 쓰게 되기 때문일 경우가 많은데, 주제를 이탈하고 논리성이 부족한 글은 보는 이를 어지럽게 만들며 핵심을 찾는데 시간 낭비까지 하게 만듦으로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지적 허영심이나 자만심이 가득하거나 자아도취한 사람의 글은 불편한 감정만 초래한다.

길고 복잡하고 어려운 글은 멋있는 글이 아니다.

짧은 문장으로 쓰는 것은 독자들을 배려하는 것이며, 문장의 길이는 글의 수준과는 상관이 없다.

초등학생, 유치원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렵지 않게 쓰는 글이 좋은 글이다.


글쓰기에는 5가지의 의미가 있다.

글쓰기는 나의 생각을 풀어가는 과정으로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솔직하되 정제된 표현으로 생각을 표현하며 예의를 갖추되 자신을 낮추지 않아야 자유로운 글쓰기가 된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공감 받을 수 없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사회화의 기회를 놓치기 쉽다.

행동뿐만 아니라 글에서도 공감 가는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는데 공감이 간다는 것은 그 글에 몰입이 되기 때문이다.

좋은 공감 능력은 좋은 글쓰기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저자에게 글쓰기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단다.

글을 씀으로써 자기가 처한 현실이 왜 잘못되었는지 선명히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이 왜 분노하고 있는지도 정리가 된다.

정리된 분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으므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한다면 글을 써보라 권한다.

고민거리가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책을 자주 읽고 글을 써보라고 말한다.

학생들은 쉽게 답을 구하고 쉽게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는데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해서 저자는 쉽게 답을 구할 수 없도록 책 읽기와 글쓰기를 권한다고 한다.

"생각하지 않음, 그 자체로 죄다."

생각하는 능력은 책을 읽거나 다른 이에게 배움으로써 가능해지며, 더 나아가 스스로의 생각을 만드는 일은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더 잘할 수 있는데 바로 글쓰기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저자가 알려주는 글쓰기의 기술 중 '좋은 글의 4가지 조건'은 쉽고 짧으며 재미있고 구체성 있게 쓰인 글을 말한다.

글은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자기감정 표현조차 어려워하면서 사람들은 어렵게 써야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글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전달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소통을 위한 노력이 글에는 필요하다.

그래야 남을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문장, 불필요한 주어 생략, 접속어 남발하지 않기, 연결 어미 줄이고 단문 쓰기, 불필요한 조사 생략하기, 수식어 줄여 간결한 문장 만들기 등 문장을 짧게 쓰는 요령을 익혀두는 것도 좋다.

재미있는 글은 독자에 대한 배려다.

글이 재미있으면 사람들은 읽게 되어 있으므로 작가는 재미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글을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

말이든, 글이든 사람에게서 공감과 소통을 얻으려는 호소력은 구체성에서 나오며, 구체성이 있는 글은 재미있기에 사람들이 읽게 되어있다.


꼭 기억해야 할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로 '글 고쳐쓰기'를 강조한다.

글을 고칠 때의 기준으로 재미, 공감, 분량 확인, 문법적 오류 수정, 소리 내어 읽어보기, 단어 순서 바꿔보기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좋은 글이 갖는 특징 중 하나로 '리듬'을 꼽는다.

리듬감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소리 내어 읽어보기를 권한다.

가장 좋은 리듬이 나타날 때까지.


글쓰기와 독서는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글쓰기는 출력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출력(글쓰기)이 원활히 되려면 입력(독서)이 체계적이어야 한다.

빠르게 정보를 모으고 사실을 이해하고 분야별로 정보를 쌓아두면 글쓰기 실력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글쓰기는 창조적인 작업이다.

모든 창조 과정은 어려운 일이므로 글쓰기는 어렵다.

그런 글쓰기를 편하게 하는 비결이 있으니 글쓰기를 창조가 아닌 편집으로 만들면 된다.

많은 지식을 모르고, 그 지식을 하나의 주제에 맞게 일정하게 배열만 해도 좋은 글은 탄생한다.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면 점점 생각의 크기가 커지게 되고 글을 고르는 안목과 쓰기 실력이 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글쓰기의 실제'를 통해 학생들이 활용하기에 좋은 자기소개서 쓰는 법, 독서감상문 쓰는 법, 반성문 쓰는 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딸은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전업으로 글을 쓰는 작가이기보다는 직업과 별개로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단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는 일이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책도 많이 읽을 테고 공부도 하게 될 테니 이보다 좋은 게 있으랴 싶어 적극 응원한다.


작가는 좋은 직업이다. 책을 읽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 창조이고, 글을 쓰는 것이 실천이다. 언제 어디서나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면 끄적거릴 수 있고 줄을 때까지 할 수 있다. 평생 직업이고, 저 좋아하는 일이다.

늙어서 몸이 삐걱거려도 즐길 수 있고, 다리몽둥이가 부러져 침대에 누워 있어도 할 수 있다. 어쩌면 늙어서도 잘할 수 있는 몇 개 안되는 일 중의 하나이고, 침대에 몸져누워 있기 때문에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한다. 거기다 지식 노동자이니 말도 제법 할 수 있고, 글도 제법 쓸 수 있다. 먹물이니 어디 가서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법 대접도 받을 수 있다. 제일 괜찮은 것은 남에게 고용되어 있지 않으니 제법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유, 거 얼마나 좋은 말이냐, 제 맘대로 살 수 있으니 멋진 일이 아니냐.(190P)

- 구본형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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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읽는 시간
보경 지음, 권윤주 그림 / 불광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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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스님과 탑전 고양이 냥이의 이야기는 전작인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전작이 냥이를 처음 만나고 함께 겨울을 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이번 책은 여름을 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경스님은 일체 지어낸 것 없이 그저 '관찰자'의 위치에서 냥이를 바라보며 '읽는다'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옮겨 적을뿐이다.

산중 암자의 생활은 절대 고독이 주는 무게가 크고 스님 같은 출가사문에게는 세속의 가족이라는 관념이 잘 와닿지 않는 법인데, 뜻밖에도 냥이에 대한 책임감이 스님의 삶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혼자도 좋고 둘이어도 좋은 스님의 삶에 "집에서 기다려준다"는 설렘을 일깨워준 유일한 존재가 냥이인 것이다.

스님과 냥이와의 관계는 일반적인 돌봄의 관계보다는 '‘독(獨) 대 독(獨)', 즉 존재와 존재의 대등한 만남으로 보면서, 냥이를 볼 때마다 '읽는다'는 마음으로 대한다.

방대한 독서로 다져진 글 솜씨로 다수의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으신 보경 스님은 '읽는다'는 행위야말로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씀하신다.

어쩌면 세상의 수많은 오해와 그로 인한 불행들은 '읽기'에 서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스님 곁으로 다가온 냥이를 정성으로 '읽으며' 깊어진 스님의 사유를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내 안의 나, 그리고 타인, 자연과 세상의 이치를 바르게 읽는 법을 이야기해 주신다.

냥이를 통해 배운 '바라보기'와 '기다리기'는 시간을 살아야 하는 관점에서 많은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고 한다.

스님에게 냥이는 어떤 존재인가란 물음에 '성가시다'하고 말씀하신다.

스님이 말씀하신 성가심은 사랑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단 하나의 이유는 다른 존재를 사랑하기 위해서이고 사랑은 행복한 만큼 성가신 것이다.


스님 집사가 터득한 <이럴 때 고양이 처방전 9>

1. 새끼 고양이는 어미 고양이의 방식을 따른다.

- 세상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렴. 그 길은 내 앞에 수없이 많은 이들이 이미 갔던 길이니까.

2. 고양이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온다.

- 관계를 맺는 첫 번째 조건, 상대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해.

3. 고양이는 어딘가를 보고 있는 듯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 가끔은 생각이 내 몸을 통과하게 놔두렴. 우린 생각보다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

4. 아무리 궁금해도 고양이 마음은 다 알 수 없다.

- 나도 내 마음을 모르는데 어떻게 상대를 다 안다고 자신하는 거지?

5. 고양이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햇볕 아래서 '식빵'을 굽는다.

- 주위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렴.

6. 고양이의 하품도 역사가 될 수 있을까.

- 누군가의 사소한 흔적으로 인류의 시원을 가늠해보잖아. 우리 삶도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간다고.

7. 고양이는 물방울, 복잡한 물건 사이를 걸림 없이 지나다닌다.

- 무슨 일이든 하나씩 차례차례, 마음이 앞서 나가지 않도록 하렴.

8. 고양이는 있는 그대로 완벽한 존재이다.

- 사실 고양이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보는 내 눈과 마음 때문이야.

9. 고양이는 다 다르다. 세상에 같은 고양이는 없다.

- 사람도 마찬가지야. 그냥 그 사람 있는 그대로를 보면 돼.


생각지도 않은 새끼 고양이의 탄생을 보면서 만물은 제각기 익는 시기가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자연은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가을에 갈무리하여 긴 겨울의 휴면기에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중요한 것은 절대 순서를 건너뛰거나 생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일은 순서가 있다. 또한 삶의 고준한 진리는 매사에 때가 있다는 것이다. 기다릴 땐 기다리고 잡을 땐 잡아야 한다.

인생은 없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갔던 길이고 누군가 꿈꿨던 길이다.

새끼 고양이 가족에게 뭐가 더 필요하랴. 뭐든 먹고 기운 차려서 건강하게 살아가길 빌었다. 이곳은 불살생의 도량이니 사람을 너무 무서워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고양이는 고양이의 방식대로 살아가면 된다. 어미 고양이 너는 모르겠지만 네가 지금 너의 새끼들에게 하는 방식으로 너의 어미도 그렇게 했고, 너의 새끼들도 너의 방식을 따라 행동하고 익어갈 것이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기를.(32~34p)


강의 그런 흐름처럼 세상을 물 흐르듯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우선적으로 떠올린 한 가지는 '들쑤시지 않기'다.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남에게도 가만히 있지 못하게 자꾸 거느려 불편하게 한다. 행복을 지루해하는 것만큼 큰 불행도 없다. 이미 행복의 정원에 있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루해한다.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불을 지필 때도 그랬고 절에서 아궁이에 장작 넣을 때도 항상 듣는 말이 잘 타고 있는 장작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괜한 궁금증이 자신에게서 멈추면 좋은데, 한가해지면 시선은 바깥으로, 남을 향한다. 갓 출가한 스님들이 배우는 <초발심자경문>에 '억지로 남의 일을 알려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있다.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대중생활에서는 가볍게 넘길 말이 아니다. 나는 왜 시비가 많을까, 하는 사람은 무의식중에 남의 일에 간섭하고 자극하는 행동이 많기 때문이다. (51p)


삶의 중요한 자세는 싫고 좋음에 있어서 적절한 속도와 균형을 제어하는 것이다. 선종에서 '하파부주(下坡不走)라 하여 내리막에서는 달리지 말라고 한다. 그냥 가도 빠른 길인데 사람들은 좋다 싶으면 가속페달을 밟는다. 세상의 문제라는 것이 대부분 호시절에 간과했던 업보들이다. 그리고 멀쩡한 일을 들쑤셔서 없던 일을 새삼 만들기도 한다. (52p)


단순한 삶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정직하기 때문이다. 정직한 마음이 없으면 단순함의 힘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마음의 정원에 어떤 물이건 생명수로 끌어들여야 한다. 물이 중요하지 그 물이 어떤 물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밤이 지나가길 기다리면 아침이 밝아 오고, 탁한 물도 기다리면 맑아진다. 좀 기다리고 지켜보면서 살아가면 좋지 않은가. (72p)


냥이와 내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같이 잘 지낼 수 있는 비결은 냥이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냥이와 살아가는 첫째 원칙이 냥이가 오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아직 고양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냥이가 원하지 않는 일을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냥이의 마음을 알아내기가 보다 수월해진다.

<논어>에 공자와 자공의 대화가 있다.

자공이 물었다. "한마디로 평생 지키고 행할 수 있는 말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바로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恕'는 용서다. 만약 어떤 사람의 잘못을 두고 그건 너만이 저지르는 일이다, 하면 그 사람은 죄책감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잘못이니까 반복하지만 말라, 하고 기회를 준다면 그는 바른길로 갈 수 있다. (84~85p)


지금 나에게는 냥이가 유일한 식구라면 식구이지만 먹는 것을 함께 할 수는 없다. 내가 냥이의 사료를 먹을 수도 없고 냥이가 김치나 김을 먹을 수 없으니 우리는 한 지붕 밑에 살지만 엄밀하게 한 식구는 되지 못한다. 냥이도 가끔 문밖에서 혼자 공양하는 나를 바라보기도 하지만, 나 또한 적어도 하루 한 번이라도 냥이가 꺼끌꺼끌한 물기 없는 알갱이 사료를 먹는 시간이면 되도록 옆에 쪼그리고 앉아 지켜봐 주려고 한다. 많이 먹어, 천천히! 하면서. (124p)


남은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스스로를 아는 사람은 밝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고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

족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하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을 가진 것이다.

제자리를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가고 죽어서도 잊히지 않는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이다. (127p)

노자 <도덕경>


사람이란 처음엔 일을 끌고 가지만 조금 지나면 일이 사람을 끌고 간다. 일의 삼매, 자신이 하는 일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나는 작금의 이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도 삶의 탄력을 잃지 않으려 주의한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이 생각부터 한다.

하루가 시작될 때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이 반드시 어디 먼 곳으로의 떠남과 돌아옴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몸을 돌리고 생각을 바꾸는 순간순간이 큰 여행이다.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있으며 계속해서 길을 가야 하는 지구별의 여행자다. 진정한 삶의 여행자는 몸과 마음이 아무리 고달파도 머무르려고 타협하지 않는다. 태양이 떠오르면 그대로 길을 나설 뿐이다. (173p)


뙤약볕 아래서 식빵을 굽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한마디 하게 된다.

“냥이, 익다 못해 타겠어!”

일단 냥이를 보고 나면 흐뭇하고, 비로소 다음 일을 한다. 땀에 젖은 옷을 세탁하고 아무리 더워도 차를 뜨겁게 우려내 한 사발 마신다. 뜨거운 차를 마시면 갈증이 가시기도 하지만 몸이 편안해진다. 여름에 뜨거운 음식을 잘 먹으면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더울수록 몸을 따뜻하게! 냥이가 햇볕 아래서 식빵을 굽는 것도 같은 이유일지 모르겠다. (177p)


생명을 존귀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행동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실천은 항상 용기가 따른다. 흔히 우리의 의지 너머의 일이라 해도 그것이 과연 할 수 없는 것인지 하기 싫은 것인지에 따라 성격이 전혀 달라진다. <초발심자경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다만 하지 않을 뿐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옛사람이 이르길 도가 사람을 멀리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멀리하는 것이다."

인간 의지의 한계를 가늠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 그 자체가 하나의 벽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심리적인 벽은 결국 물리적인 벽으로 나타한다. 도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나이라 사람이 도를 멀리한다고 했다. 이것이 인간의 병폐다. (203p)


몇몇 고양이들과 한 산중에서 마주치며 살아가는 나는 관찰자로서 가능하면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는 자세로 지낸다. 바라봄, 그리고 최소한의 돌봄이 내가 세운 원칙이다. 어찌 이곳 야지의 고양이뿐이겠는가. 먹을 것을 찾아 마당까지 내려오는 한겨울의 멧돼지와 고라니 무리, 빈 하늘을 빙글빙글 도는 까마귀들, 빈 사료 그릇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개미 떼, 비바람에 이파리가 뜯긴 뜰의 화초들…. 그 모든 곳에 내 마음이 가닿아 있기를, 그러다 어느 순간 적절한 개입이 필요한 순간에 내가 용기를 낼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전에 반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은 생명의 고결함과 아울러 그 들의 처절한 생존에 대한 무지일 터. 하물며 사람의 일이야 더 말할 것이 없다. (2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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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
심용환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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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한국사 관련 책들 중에서 매우 신박한 책을 읽게 되었다.

'한국사=시험'이라는 연결고리를 끊을 수가 없어 한국사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한숨부터 내쉬는 아이들에게도 쉽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하루 10분만 투자해서 1페이지만 읽으면 된다.

물론 365일 1년 동안!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는 매일 다른 7가지(사건, 인물, 장소, 유적·유물, 문화, 학문·철학, 명문장) 주제로 분류한 내용을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구분 없이 자유롭게 담고 있다.

구구절절 장황한 설명보다는 핵심적인 사실만 똭! 짧고 간결하게 담고 있다.

너무 간단 명료하다고 생각되거나 재미있는 주제를 읽다가 더 알아보고 싶어지면 다른 관련 도서를 읽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지식을 확장해보며 스스로 공부해보는 것도 유익한 공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365개의 주제를 읽으며 한국사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거나, 공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친절한 안내서로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요일에 따라 7분야의 주제로 나눠 있으니 관심 있는 분야나 주제부터 읽어도 좋고 처음부터 차례로 읽어도 좋다.

한 번엔 몽땅 읽을 필요도 없고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한국사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나 다시 공부하고 싶은 사람, 기초부터 차근차근 교양을 쌓고 싶은 사람이나 시험을 대비하는 사람 모두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는 '한국사'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세종대왕, 김구 등 역사 속 위인들뿐만 아니라 도깨비, 저승사자,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담고 있어 쉽게 한국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매일 1페이지씩, 글은 짧고 쉽게 쓰였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간결하지 않으니 어려운 역사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365일 수업용, 교양용, 시험용 도서로 활용해보길 바란다.

매일 10분 정도만 투자해 보자.

아침 독서용, 출퇴근용, 잠자리 독서용으로 잠시 잠깐 읽어보는 용도로 강추한다.


월요일(사건) : 한국사 기원부터 현대까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담았다.

화요일(인물) : 한국사에 큰 영향을 미쳤거나 인상적인 인생을 살다간 인물을 담았다.

수요일(장소) :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지역, 장소, 공간을 담았다.

목교일(유적, 유물) : 선사 시대부터 조상들이 남긴 문화적 성취를 담았다.

금요일(문화) : 우리 민족의 생활문화와 문화예술을 담았다.

토요일(학문, 철학) :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적 영향을 끼친 철학과 학문을 담았다.

일요일 (명문장) :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 남을 시대의 명문장을 담았다.


1페이지 한국사를 설명하기 위해

첫 번째, 주제와 관련된 카테고리가 있다.(요일과 카테고리 확인)

두 번째, 주제

세 번째, 주제에 대한 설명을 담았다.

네 번째, 주제와 관련된 인용문이나 이미지 자료를 첨부하고 있다.

다섯 번째, 주제와 관련된 짧은 지식을 담았다.


그리고 <365일 체크리스트>도 담고 있으니 다 읽은 페이지를 체크하면서 365일을 채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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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교양 지적대화 걸작 문학작품속 명언 600 - 헤밍웨이 같이 사유하고, 톨스토이처럼 쓰고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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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교양 지적 대화 걸작 문화작품 속 명언 600>의 저자 김태현은 세상에 존재하는 현명한 지식과 그 방법을 찾아 끊임없이 사유하고 탐구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인문학자이자 지식 관련 빅데이터를 모으고 있는 지식 큐레이터다.

그는 지식 큐레이션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삶에 좀 더 긍정적이고 통찰력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한다.

독서량이 점점 줄어드는 이 시점에도 세계 명작은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전해져 내려오고는 있지만, 다수의 고전 소설들 중에는 책장 넘기기가 버거울 정도로 두꺼운 두께의 작품들도 있다.

바쁜 현대인들이 읽고 싶어도 쉽게 읽히지가 않아 곤란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이 책을 통해 엑기스만 쏙쏙 뽑아 익혀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훌륭한 문학작품들은 훌륭한 철학서 못지않은 파급력을 지니고 있어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다면 상당히 아쉬울 수도 있다.

시간과 여건이 허락해 모든 책들을 다 읽어보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문학 걸작 60선과 그 속 명문장 600개를 엮어만든 이 책을 통해 대문호들의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지혜, 통찰력, 언어 예술의 명언들 만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많은 작가들은 책을 쓸 때 자신이 깨달은 삶의 지혜를 녹여 내거나 소중한 경험을 담는다고 한다.

또한 문학은 인간과 세상에 관한 치열한 고민과 사유 끝에 창조되는 예술이라고 하니, 이 책에 소개된 60선의 문학작품을 통해 나의 깨어있는 의식이나 나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다 보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작품을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문학작품에 대한 소개가 다소 간단한 편이라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 아쉬움은 원작을 읽어보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꿈(성장), 반항(인간 내면 탐구), 연인(사랑), 칠전팔기 백전백승(용기), 문학(마음 위로), 21세기 이후(미래), 문학의 정수(세계의 명시) 등으로 나눠 60선의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600개의 명문장과 작가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

각 작품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단어나 문장을 뽑아 #(해시태그)를 달아 놓기도 했다.

책 속에 소개된 작품들은 당시 최고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였거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작품 속 가장 유명한 명문장들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제목처럼 지적인 대화와 지적인 교양을 위해 소개하는 60선의 작품들은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 책 <지적 교양 지적 대화 걸작 문화작품 속 명언 600>을 통해 엑기스만 쏙쏙 알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듯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간단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즉석밥을 먹다 보면 편해서 좋기는 하지만, 엄마의 정성 어린 손길이 가득 담긴 집밥이 더 간절해지는 느낌이다.



003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데미안>

008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

011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 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연금술사>

040 난 새가 아니에요. 어떤 그물로도 날 가두지 못해요. 난 독립적인 의지를 지닌 자유로운 인간이에요. <제인 에어>

054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라, 다른 사람을 재판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재판하는 게 훨씬 어려운 법이니라. 네가 자신을 훌륭히 재판할 수 있다면 너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니라. <어린 왕자>

056 예를 들어, 만약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난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행복을 느낄 거야. 4시가 되면 이미 흥분되어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넌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게 되겠지! <어린 왕자>

058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비밀이지. 그것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본질적인 것은 눈에도 보이지 않거든. <어린 왕자>

060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

062 큰 도둑은 언제나 훌륭한 신사를 가정하고 있는 법입니다. 흉악한 얼굴을 가진 자들은 오히려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지 않으면 안 되지요. 안 그러면 당장 체포될 테니까요. 하지만 신사인 체하는 놈들이야말로 낯가죽을 벗겨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

063 지금은 우리를 비껴간 행운이 마지막 순간에 다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

076 젠장, 그렇게 조바심 내지 마라.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어려운 일과 마주한다. 그리고 그것이 앞을 막아도 그냥저냥 살게 되기 마련이란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102 사람이란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서는 항상 과장된 생각을 품는 법이다. <이방인>

150 창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은 돼지를 한 번 보고 인간을 바라보았고, 다시 인간을 한 번 보고 돼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동물농장>

153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 <달과 6펜스>

154 난 과거를 생각하지 않소. 나에게 중요한 것은 다만 영원한 현재뿐이요. <달과 6펜스>

156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말에 대한 감각이 없어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함으로써 그 말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달과 6펜스>

161 오만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봐 주기를 원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거야. <오만과 편견>

165 개인을 옹호하기 위해서 삶의 원칙과 고결함의 의미를 바꿀 수는 없어. 이기심을 신중함으로 미화하고, 자신의 위험에 대한 무감각함을 행복에 대한 확신으로 말하는 건 언니 자신과 나를 속이는 일이야. <오만과 편견>

166 남에게 일부러 상처를 주거나 불행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없다고 해도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건 그 사람의 책임이야. 그건 다른 사람의 감정에 무관심하고 배려하지 않았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해서 생긴 결과야. <오만과 편견>

169 어떤 사람을 지독히 싫어하게 되면 천재성이 발휘되고 위트가 샘솟거든. 올바른 말은 한마디도 안 하면서 누군가를 계속 비난할 수는 없어. 하지만 어떤 사람을 계속 비웃다 보면 가끔씩 재치 넘치는 말이 얻어걸리기도 하는 법이거든. <오만과 편견>



600개의 명문장들을 다 열거할 순 없을 듯하다...ㅠㅠ

간단하게 훑고 지나갈 수 있는 책으로 활용하며 가볍고 얕은 지식(지적 교양과 지적 대화를 위한)을 쌓는 것으로 활용해도 좋겠지만 이 책을 읽게 된 기회로 문학작품을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향유자로서의 삶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인간은 다른 사람처럼 되고자 하기 때문에 자기 잠재력의 4분의 3을 상실한다" (274p)

남과의 경쟁에만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막상 자신을 보는 눈이 흐려지게 된다.

오랫동안 많은 사랑은 받아온 문학작품들을 읽으며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순간을 깨닫기를, 문학을 즐기고 향유하며 진정한 자기계발을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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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장미 인형들
수잔 영 지음, 이재경 옮김 / 꿈의지도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 너도 저 소리 들려?

- 무슨 소리?

- 장미들. 있잖아, 꽃들은 살아 있어. 모두 다. 자세히 들으면 한데 얽힌 뿌리 소리가 들려. 뿌리는 하나야, 공동의 목적. 장미는 아름답지만, 그게 장미의 전부는 아냐.

- 나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려. 그저 조용한 만족감?

- 꽃들은 만족하지 않아. 기다리는 거야.

- 뭘 기다려?

- 깨어나기를.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사립 여학교다.

최근에 아카데미는 과목 수와 훈련량을 늘리며 교육과정의 강도를 높였고, 열두 명의 소녀들은 상향 조정된 기준에 따라 선발된 최정예(아카데미가 배출한 졸업생 가운데서도 최고의 재색을 잦춘 소녀들)로 소녀들은 학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학교는 소녀들을 과보호하며 일 년 내내 교정에 가둬 집중 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방학 때도 집에 가지 않는다.

그곳의 소녀들은 장미처럼 완벽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다 가진 재력가 집안의 엘리트들이다.

소녀들은 성공적인 미래(결혼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고, 중요한 행사에 부부동반으로 참석해 남편을 자랑스럽게 해주는 것)를 위해 장미 화원의 장미처럼 배양된다.

철저한 통제 속에서 생활해야만 하고 소유욕과 지배욕이 넘치는 사감은 소녀들을 함부로 대하는데, 기분 나쁜 신체적 접촉도 서슴지 않는다.

이 학교에서는 여성을 성 상품화하는 남성 중심적인 시각의 성차별이 만연하며, 소녀들의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말살하고, 성추행과 성적 비하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 착한 소녀들은 규칙에 순종해.

- 수치심은 최고의 스승이다.

- 요즘 여자애들은 외모를 중요시하지 않아. 하지만 너희는 자나 깨나 외모를 뽐내냐 해. 어떠한 예외도 없어.

- 아름다움은 우리가 가진 최고의 자산이니까요.

- 순응은 훌륭한 자질이야. 사람들은 너희 의견을 반기기 않아. 입다물고 듣기만 해, 이것이 젊은 여자들에게 필요한 교훈이야.

- 너무 많은 생각은 미모에 해로워. 오직 아름다운 것만이 가치가 있어.

- 넌 항상 다리를 내보여. 다리가 네 최고의 자산이야.

- 드레스가 아주 잘 받는구나. 굳이 보태자면 더 내려 입어도 좋을 뻔했다.

- 참석자들에게 여러분의 가치를 내보여야 한다. 아름답고 순종적인 소녀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보여주어라. 입은 다물고, 눈은 많이 깜박여라. 미소를 짓고 얌전하게 굴어라.

- 너희는 아름답고, 정숙하고, 순결하다는 거야. 마지막 걸 빼면 너희는 특별할 게 없어. 그저 흔한 매춘부일 뿐.

- 정조는 소녀들의 필수야

- 남자들은 너희처럼 아름다운 소녀들 앞에서는 자제력을 잃는 법이야.

- 미래의 남편을 위해 자신을 순결을 지켜. 그들에겐 그걸 가질 자격이 있어. 그들의 권리야.


매일 밤. 사감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타민이라 불리는 약을 먹고 잠을 자는 소녀들.

선생님들은 비타민이 소녀들의 균형을 유지해 준다고 말한다.

계도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판단될 때 받게 되는 충동 억제 치료는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치료가 끝나면 기억은 알아서 지워지고 없다.

오픈 하우스가 시작되던 날 파티 준비를 할 때 갑자기 울기 시작하던 레논로즈가 사라져 버린다.

학교에서는 스스로 자퇴를 한 거라 둘러대지만 소녀들은 믿지 않고, 사라진 레논로즈의 침대 밑에서 <가장 날카로운 가시들>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발견된다.


소녀들은 학교에 다녔다.

거기는 세상의 규칙이 뒤집힌 곳.

소녀들은 거짓을 배웠고,

무지가 유일한 과목이었다.

수학이 환상에 밀려나자

소녀들은 방법을 찾았다.

막대기를 모아 수를 세며

나름의 수학을 익혔다.

그다음에 그들은 막대기를 날카롭게 깎았다.

이들 소녀들이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와

아비들을 계단 아래로 밀어버렸다.

아비들이 잠들었을 때

그들의 머리를 망치로 박살 냈다.

아비들이 안에 있는 채로

집에 불을 질렀다.

그다음에 이들 날카로운 막대기를 든 소녀들은

학교를 물로 쓸어버렸다.

건물에서 거짓된 발상들을 없애버렸다.

<날카로운 막대기를 든 소녀들> 중에서.


이 엄청난 시집으로 소녀들은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다.

소녀들은 밤마다 사감이 나눠주는 비타민 약(분홍색과 녹색, 그리고 노란색 약)을 더 이상 먹지 않는다.

그 약을 먹으면 잠을 잘 자게 만드는 진정 효과가 있고 기억이 지워지고 조작(마인드컨트롤)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소녀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으며 모든 거짓에 분노하기 시작하면서 수상한 학교의 끔찍한 비밀들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진실을 깨닫기 시작한 소녀들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의 삶과 미래,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다소 황당한 설정이긴 해도 실제로 이와 유사한 고통을 당하며 투쟁해온 소녀들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런 소녀들을 위한 책이며 그들과 함께 싸우겠다는 다짐을 밝힌다.


우리의 기억이 그들이 의도치 않는데 쓰였다. 투쟁에 나서기. 복수와 응징을 갈망하기, 나아가 사랑하기,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 치열하게. 전적으로. 우리는 서로 보호한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서로를 더 강하게 했고, 우리 뿌리는 함께 자랐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삶의 욕망을 주었다.

"너는 이제 자유야."

"너희에게 더는 규칙이 적용되지 않아."

"너의 몸은 이제 오로지 너희 소관이야. 더는 너희를 만든 남자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 더는 얌전하지 않아도 돼."

"이제는 너희가 행동에 나설 때야."

(403~4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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