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돈 공부 - 나를 잃고 싶지 않아 처음 시작한
이지영 지음 / 다산3.0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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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자라기 전에 좋은 데로 이사 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돈만 벌고 있었더랬다. 그러다 보니 내가 돈벌레가 되었나. 집에 와서는 뭐가 이렇게 힘이 드나. 아기랑 놀고 아기 자면 멍 때리고 티비만 보고 또 그런 나에게 죄책감을 갖고, 다음날 일터에서 또 일만 하고 퇴근하고 아기랑 놀다 자는 하루들이 반복되었더랬다. 내가 왜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앞으로 10년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20년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에서 시키는대로 꿈을 적어보라길래 적었고, 감사 일기, 성공 일기, 미래 일기를 써보라길래 써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삶에 조금씩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이유는 아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는 걸 조금은 오래 잊고 있었다. 나는 아기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내 기쁨을 위해, 내 자유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내 삶 안에 당연 아기를 위한 시간과 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목표가 생겼다. 일기를 쓰면서 내 꿈이 망상이 아니라 정말 이뤄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구체적인 것을 끄적거리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게 된 것 같다. 내 삶의 주인이 나라는 주체의식도 다시 생겼다.

물론 또 다시 멍 때릴 때도 있고 이유 없이 우울할 때도 있고 삶이 버거울 때도 있다. 그러나, 일기장을 손에 쥘 때면 밭에 물을 주는 기분이 들면서 용기가 조금씩 솟아 오른다.

이 책은 돈 욕심에 대한 죄책감도 약간 덜어주었다. '노동 이즈 베리 임폴턴트' 한 세상이지만 평생 노동으로 하루 8시간 이상을 채워가면서 집에 와서 한숨 쉬는 삶은 상상하기 싫었다. 반면, 건물주는 왠지 '갑'이란 이미지, 불노소득을 취하는 불한당같아 자신있게 건물주가 되고 싶다고 스스로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작가는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알차게 꾸리고, 부피가 커진 돈을 다른 이들을 위해 쓸 것이라 예쁘게 말한다. 나도 저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을 리뷰하며 빚 생각에 강팍했던 마음이 살짝 말랑해졌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 20%를 나를 위한 계발비로 쓰지도 못하고 있지만 리마인드를 2-3일에 한 번씩 하다 보면 내 인생도 그 만큼은 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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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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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항상 특별한 얘기를 쓰는 건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증명한다. 꼭 소설이 그래야 하는 건 아니라고. 무던한 나와 내 친구들의 삶이 소설이 되었다. 그리고 책의 부분부분에서 갑자기 뭉클한 것들이 올라와 당황하게 했다.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게 맞는걸까?

난 어릴 때 모든 사람들에게 착하다고 칭찬 받는 아이였다. 항상 내 동생을 잘 돌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없을 때 내 동생을 문과 벽 사이에 넣고 문을 힘껏 누르다가 어떤 아저씨에게 '못된 아이'라는 말을 듣고 울었던 것이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착하다는 아이는 왜 뒤에서 못되게 굴었을까. 상황이 싫었지만 누구에게도 말을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장손이라고 집에서 모두가 동생만 예뻐하는 게 싫었다.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제대로 말을 못 했다. 집안 형편이 빤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냥 참고 사는 게 어릴 때 부터 내 습관이었다. 엄마, 아빠의 삶도 팍팍했기에 제대로 요구를 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많이 그렇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그런 상황일 때 답답함을 느낀다는 것을 인지하는 정도는 되었다.

난 그냥 이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상황은 변할 수 없고 행복은 내 마음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니까 내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에서 지영이를 보고 난, 지영이의 마음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분명 사회의 부조리가 있는데 너무나 익숙해져서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남자들의 성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결혼 후에도 남자들의 바람은 필 수도 있는 것이니 참아야 하고, 여자가 바람을 피면 세상에 둘도 없는 미친년이 된다. 온갖 미디어들은 죄책감도 없는지 사명감도 없는지 온통 화면을 여자들 가슴으로 채우기 바쁘다. 도대체 이게 옳은 것인가.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람을 바라봐 주면 안 되는 건가.

그래도 긍정적인 건 엄마의 삶보다는 내 삶이 좀 나아졌고, 내 딸의 삶은 나보다 나아지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삶이 지금은 그냥 엄마의 삶이 되었지만, 다시 본인을 찾는 날이 올 것이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집에 오면 가족들과 도란도란 서로의 삶을 나누는 저녁을 맞이하는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반드시 인구 절반의 희생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건 아니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p. 123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p. 149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p. 174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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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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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진정 사유의 천재이다. 등장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그들이 그러한 성격을 갖게 된 개연성을 꼼꼼히 묘사하였다. 심리서적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을 4가지 분류로 나눈 데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이 책의 시작은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 지을 수 있을까?'로부터 출발한다. 개 거지같은 중반부의 섹스 중독 이야기도 결국 가벼움에 관한 이야기다. 발상이 기발하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들 모두 가볍고 싶지만 가벼울 수 없다. 다만, 그들이 '우연히' 태어난 나라와 '시대' 배경에 의해 형성된 자기 혐오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기 혐오라는 굴레 안에서 무던히도 벗어나기 위해 한 여자는 잠깐씩 정착하는 관계를 추구하고, 끊임없는 배신을 희구하며 그럴수록 자기 혐오에 갇힌다. 스스로 진정 무엇을 원하였는지는 마지막에야 혼란을 품으며 고민하게 된다.

작가가 가벼움을 언급한 것은 그것이 진정한 자유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암울한 시대에 의해 좌절하지 않고, 나의 선택으로 인생을 당당히 사는 자유를 원하기 때문은 아닐까. 인생의 본질은 독생독사(獨生獨死)라고 생각한다. (나의 개똥철학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하면 끊임없이 나의 자유를 남을 통해, 나의 사랑을 남을 통해 찾고자 한다. 테레사는 너무나 오랜 시간 고통 속에 살다가 죽기 직전에야 본인의 사랑이 구속이었음을, 소유욕이었음을 깨닫는다. 오랜 시간 외로움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누군가를 구속하며 진정한 사랑과 자아를 서로에게서 추구하던 토마스와 테레사 커플은 차에 깔려 죽지만 죽기 전에야 '여기 이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음으로서 그들은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토마스는 의사를 하지 못하게 되어 불행하지 않았다. 좌절을 통한 방황을 겪으면서 자아를 잃고 테레사를 원망하는 시기를 거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곁에 있는 테레사만이 한 순간도 저버리지 않았던 사랑임을 다시금 되새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사회적 배경이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다. 이는 소설이기에 그런 핑계를 댈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모든 개연성을 찾아야만 하니까. 우리는 다르게 사는가. 1:100 이상의 경쟁을 뚫어야 경찰 공무원이될 수 있고, 30이 되어야 직장을 얻는 세대가 결혼해 집을 얻으려면 전세비 2억은 있어야 한다. 좌절? 누구에게나 있다. 이 책이 보편적인 이유는 극단적인 배경이 등장 인물들의 숨을 조이지만 현실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약한 테레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본인과 마주했어야 하고, 사비나는 본인이 왜 자꾸 떠도는지 확인했어야 한다. 섹스 중독이었다가 마지막에 정신차리고 죽는 토마스는 그냥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지 다른 배경들을 탓할 수는 없다. 본인의 의견을 정부에 굽히지 않고 있다가 직장마저 잃고, 결국 멘탈은 한 사람만을 사랑했다 뭐 이런 포장으로 가장 그럴 듯하게 포장된 이 남자는 주변에 너무나 많은 남자들의 노골적인 인간화일 뿐이다. 일부다처제라는 사회 구조에 갇힌 그는 이게 허용되는 저 멀리 어디 떠나버렸으면 좋았겠지만 테레사에 의해 매우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일생을 마감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어쩌면 작가가 말하려던 것은 독생독사도 아니고, 지금 여기에 사랑이 있다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들로 뒤틀린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노골적으로 나 자신을 한 번 파악해 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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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 개정판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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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로 너무나 유명한 작가의 책을 선물받았다. 제목은 순례자다. 내 나이 60에는 야고보길 순례를 가는 것이 인생 목표 중 하나여서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 그런데... 시작이 이상하다. 람의 의례란 뭐고, 검을 찾으러 간다는 게 다 뭔 말인가. 평범한 이들의 비범한 일상에 대한 성찰을 한다더니, 주인공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예수를 들먹거리다니 이단인가 싶어 불쾌해 지기 시작했다. 손톱 밑을 찌르며 고통을 주는 훈련 장면은 너무나 유치해서 웃어버렸다.

작가가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중반부터 잘 나오는 것 같다.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열정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말은 알겠으나, 자기계발 서적에 흔히 나오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마음 속의 악마와 상의를 하라는 둥, 이상한 훈련등을 하라는 둥, 그러면서 마스터와 주인공은 계속 특별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 모순이라 생각했다.

작가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글을 쓴 것이라면 작가 역시 착각에 빠져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특별한 모임의 일원이 되어 특별한 사람인 것도 아니고, 아침에 일어나 평범하게 직장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여 밥먹고 자는 일상을 펼치는 사람이 평범한 것도 아니다. 오전 7시면 일어나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따스한 사람이라면 주변의 누군가에겐 특별한 사람이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티비를 볼 지라도 본인에게 죄책감을 갖지 않고, 자려고 누웠을 때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물론 가슴 속의 열정을 깨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열정으로 다 불타야 할 필요는 없다. 겸손과 온유 안에서 하루를 감사히 보내고 주말 하루 즘은 본인이 좋아하는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느끼고, 목표를 가지고 외국어 공부 하나 즘 해주면서 버킷 리스트 중 하나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본인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존감이기 때문이다.

자기계발 서적에나 나올 법한 내용을 특별한 사람의 입장에서 거창하게 써내려 간 것은 나와는 맞지 않았다. 다만 예수의 광야의 40일에서 만난 악마를 그의 마음 속 악마로 표현한 것이나, 다소 우스꽝스러우나 신성하게 묘사된 훈련법을 자세히 기술한 것은 그의 작가로서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나 역시 작가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람의 의례 없이도, 람의 훈련을 받지 않고도 주님 안에서 평화를 추구하고 감사하며 하루하루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세상을 움직인다는 1% 역시 순례 중 검을 찾아 특별한 사람들이 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본인의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걷다 보니 목표에 가까워진 것이다.

내가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한 후에 깨달은 것은 인생이 뜻대로 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변명일까. 아니다. 인생의 섭리다. 열정을 가지고 깨어 있되 이를 다 남에게 강요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작가의 말 처럼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책을 읽고 자기 점검 한 번 하면 작가의 말을 이해한 것일 것 같다. 다 쓰고 나니 이 책이 내 인생의 잘못된 타이밍에 만나 너무 폄훼 당한 것 같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했습니다. 마스터!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사랑의 위대함을 느낀 후, 나는 다시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삶의 위협과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개가 아니라 당신 안의 두려움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배신한 유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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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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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는 나에게 이순신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기개와 감정을 너무나 멋있는 필체로, 간결한 문장으로 써내려간 그는 나에게 처음으로 필사의 유혹을 느끼게 한 사람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약간은 가슴이 떨린다. 문장에 군더더기는 전혀 없고, 소위 edge 가 있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개에 감정을 이입하여 엄마 젖을 무는 장면을 묘사하고, 정겨우나 구질구질한 시골 마당을 자세히도 묘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읽는데 오래 걸렸다. 개가 주인공인 책에 나같이 상상력이 없는 사람이 빠져들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개가 이순신을 닮은 것이다. 묵묵히 다가오는 인생을 뚝심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분명 사나운 개는 피할 수도 있건만 피하지 않았고, 할머니가 때리면 눈물을 삼키며 맞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개가 너무 가여웠다. 코를 킁킁 거리고 발바닥에 힘을 주어 땅을 경쾌하게 디디며 세상을 익힌 강아지가 자라서 늠름한 개가 된 것이다. 그 순간부터 개는 조금씩 가여워졌다. 고된 삶을 살던 주인의 죽음을 목도해야만 했고, 사랑했던 영희가 손을 흔들며 이별을 명시할 때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훔쳐만 보던 개가 너무나 무섭게 죽어나가는 모습에서는 개라는 종족 자체가 모두 불쌍했다. 머리를 맞은 상태로 주인이 부르니 꼬리를 흔들며 달려간단다. 이 충직함이란, 이 순수한 마음씨란... 이런 마음씨에 다정한 목소리로 대응하는 인간은 손에 몽둥이를 쥐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 개도 가족들과 이별을 한다. 그러나 개는 받아들인다. 주인과 헤어질 수도 있다는 걸. 다른 말로 버려질 수도 있다는 걸. 이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또 땅을 디딘다.

이런 멋진 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니 무척이나 개에게 미안하다. 책을 뒤져 다시 찾아보니 개의 이름은 '보리'다.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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