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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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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상영 시간이 길어 재미없단 얘기를 얼핏 들었던 적이 있어서일까. 읽어 보고는 싶었지만 지루할까봐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액션 장면 하나 없는 이 책에 빠져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또는 차선책을 선택하는 우리가 있을 뿐이다. 우리 의지가 아닌 일이 갑자기 나에게 폭풍이 되어 닥치면 "왜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마땅히 다른 누군가가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옳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나에게 누군가가 벌을 내린 것만 같아 인생을 되돌아 보고 그래도 벌 받을 만한 일을 특별히 한 것이 떠오르지 않으니 원망할 대상을 찾으며 "왜 나에게" 라는 생각을 반복하게 된다.

 나 역시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벌을 받나 생각하며 그래도 잡을 희망이 신앙 밖에는 없어서 그 분을 찾았더랬다. 그렇게 시간이 좀 흘렀다. 어느 순간 운전 중에 그 분이 내 손을 잡고 계심을 느꼈다. 나도 안다. 지극히 주관적임을. 그러나 그 순간 그냥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냈고, 최선인지 차선인지 모를 선택을 하여 여기까지 왔다.

로드리게스 역시 그러하였을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희생이 수십년 째 진행되는 것일까. 과연 그 분은 계실까. 말미에 그는 주님이 곁에 계심을 알았다. 그리고 밟혀진 성화에서 그 분을 알았다. 그 분은 그냥 옆에 계셨다. 처음부터 옆에 계셨다. 그리고 그의 선택을 지지하였다.

나는 세상을 오랫동안 이분법적으로 봤다. 어릴 적부터 믿은 신앙 속에서 세상은 선과 악으로 상과 벌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이분법적 사고가 분명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였음을 이제야 안다.

인간은 틀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신은 틀 안에 갇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은 소설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지금 너에게 성화를 밟아도 좋다고 말한 것처럼 유다에게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라고 말했던 것이다. 네 발이 아픈 것처럼 유다의 마음도 아팠을 테니까."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 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오늘까지의 모든 시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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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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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보고 생각했었다. 소설을 시처럼 쓰는 사람이 있구나. 글이, 문장이, 단어가, 감성이 아름답구나. 이런 사람에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작가가 궁금하여 고른 책이 '흰' 이었다. 삶과 죽음과, 고통 속에서 나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주인공은 방황하였다. 주인공은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엄마를 보내드렸다. 이토록 세상에 아름다운 것을 많이 나열할 줄 아는 사람도, 나처럼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른 채 일상에, 시간에 매몰되어 때때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처럼, 죽음을 생각하는 구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보다 백배는 더 예리한 관찰력을 갖고, 그것들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니, 아름다운 것이 많은 만큼 슬픈 것도 많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읍내에 나오는 구절 중 하나가 있다. 너무나 아름다워 미처 그 진가를 알지 못했던 세상이여 안녕. 드라마 마더에도 나온 영신의 대사. 내가 인생의 겉만 알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파트 한 채 마련해 보겠다고 발을 구르는 시간 속 무수히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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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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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평생 미쳐서 죽은 화가로 기억했을 것이다. 편지를 통해 그의 영혼을 볼 수 있었다. 순수에 대한 동경, 그림에 대한 열정, 생계를 맡긴 것에 대한 죄책감 등이 모두 나타나 있다. 그는 동료를 존중하고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선의와 지적 수준은 놀라웠다. 그는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마치 미래를 예견하듯 자신의 그림에도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쳐갔고, 몸은 허약해 졌다. 동생에게는 매번 미안했다. 평생 빚에 대한 부담감에 눌려 있는 고흐를 보며 후반부는 마음이 아팠다. 그런 그에게 너무나 따스한 말투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동생은 고흐에게 유일한, 정말 유일한 안식처였을 것이다. 동생이 아니었다면 평생 879점이나 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겠는가.

 

매 페이지마다 줄을 긋고 싶은 부분이 나타났다. 책을 덮고 나니 고흐는 주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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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최초의 모호한 생각을 다듬어 감에 따라 그리고 덧없이 지나가는 최초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위대한 일이란 그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이루어진다.

 

늙고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너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될 수 있으면 아주 많이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생의 마지막에는 진정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거창한 전시회보다는 소박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그림을 그리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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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엮어준 분께 감사함을 느끼는 건 책을 읽고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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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6862@naver 2018-07-1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동입니다. 고호를 제대로 알고 계시네요.
 
그 안에 사랑이 있었다 - 당신 곁에서 뜨겁게 울어줄 신부님들의 이야기
차동엽 외 지음 / 마음의숲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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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신부님 강론의 요지는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 왜 이런 잘못을 저질렀지?"라고 묻지 않으시고, "얼마만큼 진정으로 사랑을 베풀면서 살았는가?"라는 단 하나의 물음을 던지실 것이라는 이야기였지요.

 

고통을 동반한 수행 없이 참 사랑은 잘 생겨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에 대한 두려움만 더 커지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빈손으로 태어난 존재이지만 빈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어떤 두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여러 가지 외적인 것으로 치장에 치장을 거듭합니다. 대개는 경제적인 능력과 학위, 권력이나 명예 등으로 자신을 실제보다 더 아름답고 위대해 보이도록 만들고 싶어 합니다.

 

물질적인 것에서 벗어나려면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를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두려움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은 단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깨달음을 얻게 되면 내적인 자유와 기쁨을 체험할 수 있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내적인 진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진통의 과정에서는 영적 수행을 통해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영적 수행을 통해서만이 두려움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에세서 사랑의 에너지를 받으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일생을 통한 삶의 과정입니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오로지 사랑할 수 있는 힘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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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프란치스코 교황 & 에우제니오 스칼파리 외 지음, 최수철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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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친구를 전도하고 싶었다. 내가 열렬한 신자도 아니고 신자로서 모범적으로 산다고 자부할 수도 없지만, 내 친한 친구가 수 많은 경험 속에서 힘들어 하는 것이 싫었다. 친구가 신앙 안에 진리를 찾고 그 안에서 자아가 튼튼해 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도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는 말했다.

"나는 주(酒)님을 믿어."

할 말이 없었다. 그 친구도 한 때 가톨릭 신자였고, 수 개월 전에는 이사한 집에 십자 고상을 두더니, 그 사이 친군 또 변덕을 부려 이렇게 말했다. 그 후, 나는 전도의 의지를 깨끗이 접었다. 그런데 교황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신앙은 함께하는 삶 속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가운데 성장한다. 신자는 거만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진실이 그를 겸손하게 만든다. 신자는 우리가 진실을 소유한다기 보다는 진실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 아이를 존중했을까. 그 아이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줬을까. 함께 성장할 생각을 했을까.

나보다 아래로 보고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내가 창피했다. 나는 친구로, 함께 길을 걸을 사람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길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오만이다. 주님을 믿는 것 하나로 나는 진리를 안다고 자부하며 오만했다. 아직도 나는 오만하다. 그러나 알고 있다. 주님은 나를 겸손과 온유의 길로 안내해 주실 것이다. 내가 끈을 놓지 않는다면 주님은 나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왜 나는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신앙은 함께하는 삶 속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가운데 성장한다. 신자는 거만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진실이 그를 겸손하게 만든다. 신자는 우리가 진실을 소유한다기 보다는 진실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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