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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작가는 진정 사유의 천재이다. 등장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그들이 그러한 성격을 갖게 된 개연성을 꼼꼼히 묘사하였다. 심리서적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을 4가지 분류로 나눈 데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이 책의 시작은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 지을 수 있을까?'로부터 출발한다. 개 거지같은 중반부의 섹스 중독 이야기도 결국 가벼움에 관한 이야기다. 발상이 기발하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들 모두 가볍고 싶지만 가벼울 수 없다. 다만, 그들이 '우연히' 태어난 나라와 '시대' 배경에 의해 형성된 자기 혐오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기 혐오라는 굴레 안에서 무던히도 벗어나기 위해 한 여자는 잠깐씩 정착하는 관계를 추구하고, 끊임없는 배신을 희구하며 그럴수록 자기 혐오에 갇힌다. 스스로 진정 무엇을 원하였는지는 마지막에야 혼란을 품으며 고민하게 된다.
작가가 가벼움을 언급한 것은 그것이 진정한 자유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암울한 시대에 의해 좌절하지 않고, 나의 선택으로 인생을 당당히 사는 자유를 원하기 때문은 아닐까. 인생의 본질은 독생독사(獨生獨死)라고 생각한다. (나의 개똥철학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하면 끊임없이 나의 자유를 남을 통해, 나의 사랑을 남을 통해 찾고자 한다. 테레사는 너무나 오랜 시간 고통 속에 살다가 죽기 직전에야 본인의 사랑이 구속이었음을, 소유욕이었음을 깨닫는다. 오랜 시간 외로움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누군가를 구속하며 진정한 사랑과 자아를 서로에게서 추구하던 토마스와 테레사 커플은 차에 깔려 죽지만 죽기 전에야 '여기 이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음으로서 그들은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토마스는 의사를 하지 못하게 되어 불행하지 않았다. 좌절을 통한 방황을 겪으면서 자아를 잃고 테레사를 원망하는 시기를 거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곁에 있는 테레사만이 한 순간도 저버리지 않았던 사랑임을 다시금 되새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사회적 배경이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다. 이는 소설이기에 그런 핑계를 댈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모든 개연성을 찾아야만 하니까. 우리는 다르게 사는가. 1:100 이상의 경쟁을 뚫어야 경찰 공무원이될 수 있고, 30이 되어야 직장을 얻는 세대가 결혼해 집을 얻으려면 전세비 2억은 있어야 한다. 좌절? 누구에게나 있다. 이 책이 보편적인 이유는 극단적인 배경이 등장 인물들의 숨을 조이지만 현실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약한 테레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본인과 마주했어야 하고, 사비나는 본인이 왜 자꾸 떠도는지 확인했어야 한다. 섹스 중독이었다가 마지막에 정신차리고 죽는 토마스는 그냥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지 다른 배경들을 탓할 수는 없다. 본인의 의견을 정부에 굽히지 않고 있다가 직장마저 잃고, 결국 멘탈은 한 사람만을 사랑했다 뭐 이런 포장으로 가장 그럴 듯하게 포장된 이 남자는 주변에 너무나 많은 남자들의 노골적인 인간화일 뿐이다. 일부다처제라는 사회 구조에 갇힌 그는 이게 허용되는 저 멀리 어디 떠나버렸으면 좋았겠지만 테레사에 의해 매우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일생을 마감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어쩌면 작가가 말하려던 것은 독생독사도 아니고, 지금 여기에 사랑이 있다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들로 뒤틀린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노골적으로 나 자신을 한 번 파악해 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