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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의미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평점 :
아들은 전쟁터에 나갔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스위스를 거쳐 오는 어머니의 편지는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이다. 어릴 때부터 그에게 영웅같았던 어머니, 모든 걸 희생한 어머니. 그는 마침내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훌륭한 장군이자, 위대한 작가가 되어 어머니를 만나러 온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어머니는 3년 전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에게 보내지던 편지는 어머니가 죽기 전 아들의 친구에게 한 번에 맡겨져 2-3일에 한 번씩 보내졌던 것이다.
이렇게 본인이 죽어서까지 아들을 응원하던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일까. 로맹 가리의 어머니를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어떻게 하면 싱글맘이 이토록 훌륭하게 아들을 키울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그녀는 무식하고 억척스러웠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고, 아들이 잘 되리란 걸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동네 아줌마들끼리 싸울 때에도 7살 된 아들을 앞에 보이며 "얘는 훌륭한 작가이자, 외교관이 될 거라"고 소리지르던 그녀는 아들을 한 번도 믿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암 선고를 받은 이후에도 아들 생각 뿐이었다. 전쟁에 나간 아들이 행여라 힘이 들어 모든 것을 손에서 놓을까봐, 단 한 줄의 편지라도 매일 적었을 것이다. 그렇게 200여통의 편지를 모아 아들의 친구에게 부탁했을 것이다.
지겹도록 무거운 엄마의 사랑과 기대는 후일 아들이 무의식으로 작가가 되고 군인이 되고 프랑스 대사까지도 될 수 있는 순간에 이르게 하지만 장성한 아들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엄마가 원했던 것인지 생각하고 외무부를 떠난다. 그래서 로맹 가리는 삶에 의해 살아졌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똑똑하고 사려깊은 아들은 알고 있다. 엄마가 본인을 어떻게 키웠는지,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의 소설은 따뜻하다. 여성성으로 표현된 그의 책들의 주제는 사랑이다. 그가 이토록 사랑을 절절하고 때로는 가슴 아프게 묘사할 수 있는 건 다 그의 어머니 덕일 것이다. 아들 역시 어머니를 평생 사랑하였다.
나는 내 아들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평생 믿어줄 수 있을까. 나는 내 아들이 훌륭한 외교관이 되기를, 훌륭한 작가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훌륭하다는 건 없다. 그냥 삶의 과정에 감사하는 사람, 행복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이건,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건 결국 이런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필요한 건 로맹 가리의 엄마가 보여준 사랑과 믿음이 아닐까.
그러니까 어머니가 품고 있는 내 이미지에 매달려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 식으로 어머니는, 말하자면 탯줄이 계속 작동하게 해두었던 것입니다.
장군은 나의 어머니와 더불어, 내가 지금까지도 글로써 표현하기 참으로 어려운 깊은 존경심과 애정을 품고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나를 구해주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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