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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번째 레인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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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삶을 직면하는 가장 인상적인 방법이 이 소설에 있다.”
– 데니스 세크, ARD 방송국
주인공 틸다는 20대의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그녀가 짊어진 삶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알코올 중독으로 무너진 엄마, 아무 말 없이 사라진 아빠, 그리고 어린 여동생 이다까지. 그녀가 책임져야 하는 가족들과, 틈틈이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틸다의 일상 속
유일한 도피처이자 안전한 공간은 수영장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스물두 번 레인을 돌고, 마지막으로 깊은 숨을 몰아쉰다.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잠수를 한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소설은 1인칭, 틸다의 시점으로 쓰여 있는데,
읽다 보면 틸다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문장은 단조롭지만 섬세하며, 틸다의 억눌린 감정을 보여주듯 잿빛을 띤다. (이런 이유로 초반엔 집중이 잘 되지 않았어요.)
“누군가 죽고 나면 다들 그러듯, 계속 삶을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단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걸 수도 있다. 어떤 말을 하든 틀리고, 어떤 말도 맞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틀린 말이나 맞는 말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p.34)
친구였던 이반의 사고사 이후,
하지만 그들은 그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나 – 졸업하면 어쩌면 떠날지도 모른다고 말했지.
엄마가 이렇게 안 좋아질 줄 몰랐어.
마를레네 – 하지만 너도 언젠가는 두 사람을 떠나서 네 삶을 살아야지. 이다는 잘 해낼 거야. 사람은 자기 업무와 더불어 성장하니까. (p.39)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 채,
그저 보기 좋은 충고(?)와 오지랖을 피우는 친구.
오히려 읽는 내가 더 불편했던 부분이다.
“나는 이다가 언제나 구원의 순간을 그렸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p.56)
이다는 이다만의 방식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가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갈 때면,
함께 겪었던 소소한 작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의 관계는 그가 이곳에 더는 살지 않게 되었을 때,
그 작별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같은 말도, 그 뒤에 붙는 작은 물음표도 없다.
작별에 익숙한 내가 느끼기에, 이것은 진짜 마지막이다.
나는 내내 이곳에 남았다.
나는 내내 이곳에 있었다.
(p.101~102)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다가 눈물을 닦아준다.
“난 울지 않아.”
그렇게 말했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아버지와 엄마, 평범한 어린 시절 등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
안전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책은 남는다는 것.
아무도 이 이야기를, 다시 말해 내가 도망칠 수 있는 이 세계를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키고, 상처 입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p.149)
이다, 이제 두려워하면 안 돼.
두려워하는 널 더는 보고 싶지 않아.
너는 강하고 똑똑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제대로 말해야 해.
엄마에게도, 바깥세상의 사람들에게도. (p.165)
레인을 스물세 번이 아닌, 스물두 번 수영한다.
그런 다음 깊은 곳까지 잠수해, 바닥에 앉아 풀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한다.
(중략)
15일 만에 빅토르가 나타났다. (p.177)
나 – 이건 작별이야?
빅토르 – 아니, 오히려 반대지.
나 – 작별의 반대가 뭔데?
빅토르 – 도착?
나 – 왜 물음표가 붙어?
빅토르 – 어쩌면 너에게 하는 질문이기 때문에?
아니면 내가 더 나은 말을 떠올릴 수도 있으니까?
나 – 너에게 하는 질문이라면, 내 대답은 ‘응’이야. (p.282)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이다.
틸다와 빅토르의 작별은 ‘새로운 도착’을 의미하고 있으며,
각자의 도착이 자신만의 것임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슬프지만 행복한 틸다와 이다의 이야기!
<스물두 번째 레인>
🍀
이 리뷰는 다산초당으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원고료,
그리고 책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귀한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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