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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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한마디로 기내식 같은 여자였다. 별로 당기지는 않는데 안 먹으면 왠지 손해일 것 같고, 그래서 억지로 먹기는 먹되 막상 먹으려고 보니 뭔가 복잡하고 옹색하기만 하고, 까다로운 종이접기를 하듯 조심스럽고 겨우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기억도 잘 안나고, 식후에 구정물 같은 커피를 마시다 보면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갖출 건 다 갖춘 것 같은데 왠지 허전하고, 결국 포장지만 한 보따리 나오는 그런 여자였다. 그녀의 얼굴엔 언제나 ' 안전벨트를 매주시겠습니까, 손님?' 이라고 쓰여 있었다-185쪽

헌신적으로 나를 보살피는 캐서린을 지켜보며 나는 한 인간의 삶은 오로지 이타적인 행동 속에서만 완성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돌보고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내어주는 삶...... 거기에 비추어보면 나의 삶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삶이었던지.-263쪽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고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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