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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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자기 자신의 왕국이 매우 안전하고 견고하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믿었던 왕국은 아주 작은 균열 하나로도 통째로 무너질 수 있다. 왕국이 크고 화려하면 할수록 한 장의 사진, 기사 한줄 만으로도 우르르 몰락할 수 있다. <왕국>의 주인공인 유리카는 타인의 왕국에 균열을 내는 여자이다. 유리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왕국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없이 사는 그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자유롭고 그러기에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다.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는걸 깨달은게 언제쯤이었을까.) 한때는 친구의 아들인 쇼타를 지키기 위해 거대한 조직에 발을 담그기까지 한 그녀는 그마저 잃은 뒤 자신의 뒤를 대 주는 조직의 의뢰를 받아 하루하루 일을 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날 다른 거대세력의 함정에 빠지게 되고 매우 잔인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기자키를 만나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다. 원래 자신의 뒤를 봐주던 야다와 지금 자신의 목을 쥐고 있는 기자키 사이를 오가며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힘을 발휘해 살아남으려 애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유리카는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그때에 비로소 자신의 왕국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자기의 삶이다.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함도, 명성도, 인맥도 아닌 자기의 생명인 것이다. 왕국을 발견한 유리카는 그제야 말라있던 눈물을 쏟아낸다.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명성에 걸맞게 책은 매우 재미있고 빠르게 읽힌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고 끝을 향해 빠르게 달리는 소설이다. 다만 책을 덮고 나면 무엇을 향해 그토록 달렸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 남는다. <왕국>을 통해 적어도 나카무라 후미노리가 매우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쓰는 작가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 책의 자매와 같다는 <쓰리> 또한 읽어봐야겠다. 그런 후에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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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 사이 1 밤과 낮 사이 1
마이클 코넬리 외 지음, 이지연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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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기 전 책의 홍보를 읽었는데, 기획 자체부터 굉장히 흥미로웠다. 보통 이런 장르 단편소설 묶음집은 유명한 고전을 몇개 끌어오고 그 외의 작품들을 엮어 낡은 천과 새로운 천이 뒤죽박죽 엮인 경우가 많은데, <밤과 낮 사이>는 달랐다. 본인도 유명 추리작가인 편집자의 기획이라 그런지 기존의 장르소설단편집이 가진 단점을 잘 알고 보완한 듯 하다. 유명 작가들의 '새로운' 단편만으로 묶어 탄생한 이 책은 구색만 맞춘 얼룩덜룩한 누더기천이 아닌, 전체적인 톤은 유지하고 알록달록한 조각보를 보는 느낌이다.

  가볍게 한편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각 작품마다 완성도도 높고 생각보다 더 어두운 면도 있어 마냥 쉽게 읽지는 못한다. 거의 모든 작품들이 반전을 품고 있는데, 그 반전은 결국 인간의 양면성에 관한 것이다. 처음엔 흥미롭게 읽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회의감도 들고 질리기도 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은 단연 표제작인 '밤과 낮 사이' 이다. '밤과 낮 사이' 에 두번에 걸처 나오는 이 문장은 책을 가장 잘 요약해준다고 보인다.

 

  사람은 창졸간에 나머지 인생 전체의 방향을 결정할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 어떤 행동을 했다가 그만 영원토록 지옥의 낙인이 찍혀 저주를 받을 수도 있다. 단 한 차례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양심을 팔아넘길 수도 있다. 최선을 다하고도 일이 제대로 되게끔 하지 못할 수도 있다. p.35

 

  비단 '밤과 낮사이' 뿐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모든 작품들이 이 문장으로 표현된다. 아내의 옛 남자에 대한 질투로, 가난을 이기기 위한 순간의 결심으로 주인공들의 인생 전체가 뒤틀린다. 아이러니한건 그 뒤틀리는 순간을 결정하는 주인공들은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 모든 끔찍한 사건과, 피와, 눈물은 결국 인간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밤과 낮 사이에 있기에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밤과 낮 사이에서 서성이며 균형을 유지하며 산다. 그러나 절박한 단 한번의 순간에,그 균형은 깨어지고 모든것이 무너진다. <밤과 낮 사이>에서 적어도 우리는 밤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당신이 창졸간에 내릴 결단은 밤이 될 것인가 낮이 될 것인가. 나의 밤은 어떠할지 생각해보면 <밤과 낮 사이>를 읽으며 몇번이나 그랬듯 뒷목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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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돌콩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0
홍종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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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무스름한 씨앗이 참 작기도 하다. 씨앗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어렵게 어금니 위로 옮겼다. 그리고 지그시 힘을 주었다. 시큰한 느낌이 어금니에 느껴지면서 씨앗이 깨졌다. 단단했다. 입안 가득 비릿한 날콩 맛이 퍼졌다. 돌콩도 콩은 콩이었다. p. 112


  시큰하고 비릿한 맛, 청소년기를 미각적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런 맛이 아닐까. 청소년기는 풋풋하다 못해 비릿하다. 동시에 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의 무게가 그들의 몸에 비해 너무 무거워 보고 있자면 코 끝이 시큰해 온다. <달려라 돌콩>은 청소년들 중에서도 유독 몸집이 작고, 짊어져야 하는 짐의 무게는 큰 ‘오공일’이라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159센티미터의 키에 몸무게는 46키로. 오공일은 또래 중에서도 무척 작고 왜소하다. 학교에서도 작은 몸으로 인해 괴롭힘을 받고 충동적으로 무면허 차량절도라는 엄청난 범죄까지 저지르고는 학교를 자퇴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서 많이 부족한 오공일에게 딱 맞는 기회가 있었으니 바로 기수학교였다. 그의 왜소한 몸도 기수학교에서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체격이었고 악바리 같은 면모도 말을 모는 것에는 도움이 된다. 오공일은 기준 미달의 미숙한 아이가 아니라, 자신에게 알맞은 기준이 필요했던 것 뿐이었다. 돌콩 또한 마찬가지다. 크고 매끈한 다른 콩들처럼 식용으로 쓰이지 못해 길가의 잡초 취급을 받지만, 우공일에게는 완벽한 간식이다. 돌콩도, 오공일도 주변부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작가는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을 기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끌어안아 주인공으로 빛나게 한다.


  비단 오공일뿐만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사회에서 애매한 위치에 서 있다. 그들이 더 성숙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임을 작가는 오공일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있다. 오공일이 기수학교 졸업을 위해 한발씩 나아가는 과정은 그 좌우충돌의 이야기가 너무도 풋풋해 비릿하다. 또한 오공일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전봇대에 소주를 붓는 장면을 비롯해 그가 조금씩 자신의 상처를 보고 보듬어가는 과정은 시큰하다. 단단하지만 작다. 그러나 돌콩이 콩은 콩인 것처럼 오공일은 오공일이다.


  오공일이 제주도에서 말을 타고 시원하게 달리는 장면을 읽으며 얼마 전에 보았던 <특별한 배달> 속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방방 위에서 힘껏 뛰는 장면이 겹쳐보였다. 비릿하며 시큰한 그들의 삶은 그것이 말을 타는 왜소한 소녀와 소년이건, 오토바이를 타는 소년 소녀이건 응원 받아야 한다. 건강한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 시원한 바람을 가슴 가득 들이마신 듯 청량해진다. 그런 느낌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달려라 돌콩>은 상쾌한 바람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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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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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단단하게>서평.


1. 낮과 밤, 지상과 지하, 적과 황.


  <물처럼 단단하게>는 중국에서 출판되자마자 ‘적색(혁명)과 황색(性)의 금기를 모두 어겼다’는 이유로 중국 최고 상부기관으로부터 ‘지명’ 당했다고 한다.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국판 <물처럼 단단하게>의 표지에는 붉은색과 황색이 강렬하게 파도치고 있다. 표지 디자인의 블랙유머가 꽤나 영리하다는 것이 이 책의 첫인상이었다.


  문화혁명을 열망하는 아이쥔은 그와 마찬가지로 혁명에 대한 열정과 미색을 겸비한 홍메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혁명 노래를 배경으로 처음 만난 둘은 서로에게 탐닉하듯 빠져들고 뜨거운 혁명에 대한 열정과 이성에 대한 흥분이 뒤섞여 혁명 동지가 되고 사랑을 한다. 그러나 아이쥔과 홍메이에게는 가족들이 있기에, 또한 흠집 없는 완전한 혁명의 성공을 위해서는 둘의 사랑은 철저하게 감추어져야 한다. 완벽한 비밀과 마음껏 사랑을 나누기 위해 아이쥔은 2년여에 걸쳐 자신의 집과 홍메이의 옷장 사이에 긴 땅굴을 판다. 땅굴이 완성된 후, 둘은 지하의 ‘신방’에서 만나 지하를 뒤흔드는 사랑을 나눈다. 낮에는 지상에서 청년의 뜨거운 열정으로 혁명을 꿈꾸고, 밤에는 지하에서 뜨거운 사랑을 한다. 그러나 두가지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혁명의 원동력이 되고, 혁명은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혁명 노래가 들리는 라디오가 있어야만 아이쥔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사랑과 혁명의 관계가 결코 별개일 수 없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잠시 책 표지 이야기로 흘러가자면, 붉은 색이 위에, 황색이 아래에서 물결치는 책의 표지는 낮에는 지상에서 혁명을, 밤에는 지하에서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정말 심플하게 축약시켜 나타냈다.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마냥 예쁘고 화려한 표지들이 쏟아지는 요즘, 이토록 책의 내용을 잘 반영하고 위트까지 있는 표지가 또 있을까. 거기다 새파란 물결의 띠지까지 더해 감히 완벽하게 미니멀리즘한 표지라고 말하고 싶다.

 


 

2. 사랑으로 혁명을, 혁명으로 사랑을.


  ‘문화 혁명에 관한 책’이라는 것이 <물처럼 단단하게>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기다. 그래서 절반 정도 읽었을 때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조선 혁명가 김산의 삶을 그린 <아리랑> 같은 책을 상상했는데 아이쥔과 홍메이의 사랑이야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두 사람이 사랑을 하는 이야기의 묘사가 꽤나 적나라하고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어갈 때쯤에는 그 당혹스러움과 ‘과연 이 두 사람이 혁명을 하는 게 맞나.’는 의문은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그조차도 결국 혁명이기 때문이다.


  몇 년만에 면회를 온 아이쥔의 부인인 청구아즈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 당신을 찾아왔다고 말하고, 얼굴과 몸을 어루만지는 아이쥔에게 ‘건달’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청구아즈가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라, 아이쥔이 살던 마을과 사람들의 분위기가 모두 이러했다. 경직된유교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 마을에 아이쥔은 거침없이 땅굴을 파고, 마을의 지하를 가득 둘의 사랑의 소리로 울린다. 둘이 사랑을 하는 그 행위 자체가 이미 혁명인 것이다. 또한 문화혁명으로 인해 사회 분위기는 경직되었고 개인의 자유와 감정은 억눌렸다. 낮에는 그런 혁명을 논하며 밤에는 혁명노래를 틀어놓고 다분히 행위인 개인적인 사랑과 쾌락을 마음껏 누리는 두 사람의 행위는 그 자체로 또 다른 혁명이다. 혁명 사무실에서, 혁명을 위한 작전에서, 또 권위 있는 누군가의 앞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은 단순한 쾌락행위가 아니라 혁명인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의 키스는 책 전체를 통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나타내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와 희생을 억압하는 모순에 대해 두 사람은 떨어지지 않는 입맞춤으로 저항하고 개인의 자유를 온몸으로 외친다. 그들은 사랑으로 혁명을 하고, 혁명으로 사랑을 한다. 아무리 중요한 이념과 혁명이라도 밟히지 말아야 하는 것, 억압받지 말아야 하는 것. 작가는 그런 것들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그리고 중국정부는 <물처럼 단단하게>를 ‘지명’함으로 작가가 정확한 곳을, 혹은 그 이상을 명중시켰다는 것을 입증했다. 문화혁명 때보단 나아졌지만 아직까지도 개인의 창작물과 표현에 대해 억압하고 검열하는 중국 정부의 압박 앞에서도 옌롄커는 ‘물처럼 단단하게’ 흘러갈 것이다. 그런 그의 붉은 열정이 <물처럼 단단하게>에서 적색과 황색의 물결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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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프레임 - 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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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마녀는 더 이상 두렵고 악한 존재가 아니다. 마녀에 대해서는 각종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영향으로 장난을 많이 치지만 친근하고 도움을 주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우가 더 많고 해리포터의 여파로 심지어 마녀, 마법사를 동경하고 그들이 되고 싶어하기도 한다. 중세인의 눈으로 본다면 바로 저잣거리에 걸려 화형당할 생각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마녀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감에도 불구하고 마녀사냥은 아직까지 우리의 아주 가까운 곳에 남아 있다. 

  책의 첫번째 장(마녀사냥과 인쇄술)에서 작가는 중세말기에 마녀 사냥이 강화된 이유로 그 당시 사회 분위기와 인쇄술의 발달을 말한다. 


중세 말기를 뒤덮은 희망이 부재하는 상황과 염세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세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모두 마녀들과 악마의 탓으로 돌리게 했따. 그리고 이런 믿음을 확산하고 더욱 강화한 것은 놀랍게도 당시 첨단 테크놀로지인 인쇄술이었다. p.57


  이 문장에서 중세 말기를 현 현국사회로, 인쇄술을 인터넷으로 바꾸면 소름끼칠 정도로정확히 요즘의 한국의 사회와 일치한다. sns에서 단어 하나라도 잘못 말하면 바로 캡쳐되어 몇년이 지나도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고, 인터넷 공간이 아닌 오프라인에서의 일도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올라와 당사자에 대한 '신상털이'가 시작된다. 잘못을 했으니까, 욕 먹을만 하니까 신상을 털고, 돌은 던진다고 항변하는 네티즌들은 과연 누군가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과연 그것이 정의구현인가. 정작 자신은 그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중세 말기에 있던 마녀 사냥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마녀프레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녀프레임>이라는 제목만 보았을 때는 책이 꽤 두껍고 방대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손에 들어온 책은 200쪽이 다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거나 어려울 수 있기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책을 읽어갔는데 의외로 책은 쉽게 읽혔다.그러나 책이 가볍거나 허술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작가는 한시도 '마녀사냥의 프레임' 일는 중심을 잃지 않고 마녀 사냥의 역사와 원인, 근대 유럽에서 현재 한국사회까지를 빠르게 훑는다. 중요한건 '마녀'가 아니라 마녀사냥의 '프레임'임을 책을 다 읽어갈때쯤이면 깨닫게 된다. 작가는 마녀프레임에 말려드는 사람들이나, 마녀프레임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마녀프레임의 원리와 현상에 대해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서술할 뿐이다. 그러나 그 설명을 읽으며 마녀프레임의 위험성에 대해 깨닫게 될 떄, 독자는 비로소 마녀프레임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된다. 마녀프레임은 근대의 잔제가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위험한 수단인 것이다. 


마녀는 언제나 자본-민족-국가라는 삼위일체를 유지하기 위한 예외상태로 남아있다. 이것이 바로 마녀프레임을 여전히 작동하게 하는 원천이다. 예외적 존재야마로 근대 국가를 위한 희생양이다. p.142


마녀는 언제든 공동체가 위기에 처하면 호출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누구라도 공동체가 필요로 할 때 마녀가 될 수 있는 조거이야말로 근대 사회가 갖는 특징일지도 모른다. 이런 까닭에 마녀는 끊임없이 현재로 귀환하는 유령같은 존재이다. p.160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책을 쓴 목적에 대해 '마녀는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책을 쓴 까닭은 이 사실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마녀프레임>을 다 읽고 나면 굳이 작가의 취지를 생각하지 않아도 마녀와 마녀프레임에 대해 고민과 생각을 하게 된다. 마녀프레임은 여전히 우리의 곁에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사이에 마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마녀프레임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 마녀프레임을 벗어나길 원한다면 우리는 사유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마녀프레임>을 읽어야 한다.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마녀는 다시 사유되어야만 한다. 그 사유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현재를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내면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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