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자본 - 1% vs 99% 누가 양극화를 만드는가
KBS <사회적 자본>제작팀 지음 / 문예춘추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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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4일에 기획재정부가 펴낸 '2011년 국가경쟁력 보고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과 한국을 비교해 이렇게 총평했다. '경제는 많이 성장했지만, 청년 고용률과 형평성, 신뢰도가 낮다'

 

사회적 자본이란 책을 보면서 가장 궁금한 건 이런 방송을 언제 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2011년 11월 29일에 첫 방송을 하였다. 얼마 전에 방송을 한 것이었는데 이런 좋은 방송을 놓쳤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도 늦게라도 책으로 엮여 나와서 너무 다행스럽다. 다만 이 책이 널리 읽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총 3가지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신뢰, 두 번째는 소통 그리고 세 번째는 협력이다. 사실 우리가 잘 아는 것이지만 실제론 실천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아주 재미난 실험을 통해 우리가 낯선 타인과 접촉하기를 꺼려 하는 것도 사실이고 처음 본 사람을 어떻게 신뢰하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타인을 믿는다는 것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것이 있었는데 그건 신용 하나로 다이아몬드를 거래하는 보석상과 파버 카스텔이라는 연필 만드는 회사다. 특히 파버 카스텔의 기업 이념은 우리 나라 기업들이 제발 본받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우리 기업들은 그저 이윤 추구가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적 환원도 없으며 직원들의 복지를 신경 쓰는 곳도 거의 없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너무 단기적 성과를 바란다. 성장이 가장 우선적인 가치가 되어 버렸는데 물론 처음엔 성장이 우선 되어야 하지만 성숙도 함께 뒤따라 가야 균형잡힌 사회가 되는데 우리는 경제 성장에만 너무 치우친 나머지 서로 간의 불신도 커져 갔다. 이러한 불신은 결국 모두를 파멸로 이끌고 말 것이다.

 

우린 이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명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서로가 서로를 믿고 신뢰할 수 있다. 이런 신뢰가 쌓일 수록 우린 더 행복해 질 수 있다. 최근 국민행복지수가 경제 지표로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우린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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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 이야기
한희철 지음 / 포이에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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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수원 교차로를 보면 아름다운 사회라는 칼럼란이 있는데 이곳에 정기적으로 한희철 목사님의 글이 올라왔었다. 짧은 글 속에 많은 생각을 담고 있어 곱씹어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 그가 시골의 작은 마을에 있는 단강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어 졸업하고 얼마 있지 않아 나도 목회자가 된다. 언젠가는 시골에서 소박하게 목회해야지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어 한희철 목사님의 작은 교회 이야기는 마치 한 목회의 선배가 내게 주는 이야기로 읽혔다. 책 속에 나와있는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정말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프고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와 대면하였을 때 나 또한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다.

 

요즘 세상에 굶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그건 정말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물음이다. 물론 예전보다 모든 사람들이 풍족해 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서민들은 끼니 걱정을 하고 있다.

 

신부가 되면 일단 먹고 사는 데 있어 그리 풍족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것들은 모든 것이 보장되는 천주교와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고 그저 맨몸으로 뛰어 들어야 하고 오히려 자신의 돈을 들여야 하는 개신교와는 출발점부터 너무나 다르다.

 

더구나 요즘은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신학대학원에서도 사명 가지고 순진하게 시골 교회로 뛰어들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나 대형 교회에서 사역하길 바라고 있다. 물론 지금도 시골 교회에서 순수하게 사명 감당하고 있을 많은 목회자들이 있다. 그들의 사역과 열정 그리고 사명이 참으로 고귀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선택한 도심의 중대형 교회의 목회자가 현실적인 문제로 그런 교회에서 사역을 한다고 무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요즘 경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야기로는 더 없이 아름다울지는 모르나 현실은 참 냉혹한 법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꿈이라 해도 기꺼이 그런 꿈을 꾸고 싶은 건 먹고 사는 것 보다 더 아름다운 인간적 가치와 삶 그리고 사랑이 있다고 믿기에 그렇다. 사람의 가장 우선적인 가치는 행복이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지금의 기독교 출판사들은 대개 큰 교회 이야기들을 많이 출판한다. 이것이 진정 아쉬운 일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신앙의 모습은 오히려 작은 교회에 있다. 이런 작은 교회 이야기가 더 많이 책으로 소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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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 이어령 바이블시학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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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책들을 처음 읽은 건 참 오래 전의 일이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가 이것이 한국이다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을 때 아마도 1990년대에 읽었으니까 말이다. 이후로 축소지향의 일본인도 읽었고 그 외에 여러 책들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이어령이 언제부터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 몰랐다. 알고 보니 신앙을 가진 게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을 해서 성경 말씀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익숙하다. 물론 모르는 것들도 무척이나 많고 전혀 생소한 이야기도 많다. 아무리 오랜 시간 교회를 다녔다고 해도 목사님들이 자주 하는 설교는 따로 있고 다루지 않는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어령의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란 책을 읽으며 역시 이어령이다 하면서 감탄에 감탄을 더 하였다. 대개의 목사님들은 성경의 말씀을 문화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직접적인 계시의 말씀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마치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각기 고유의 저자가 따로 있고 그 시대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는 역사, 문화에 관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문학 책이라고 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이어령은 이걸 제대로 읽어낸 것 같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성경 해석의 방법을 제시해 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 책이 기존 성경 해석의 틀을 과감하게 깨뜨린 것에 대한 파장도 예상할 수 있다. 분명 어느 보수적인 목사님은 이런 해석을 이단적인 해석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화적 해석이 다 좋은 건 아니고 다 정확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해석을 통한 새로운 접근을 끝없이 연구해야 함을 꼭 이야기 하고 싶다.

 

책은 아주 흥미로왔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꼭 추천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다만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이런 방법만 있는 건 아니니 좀 더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장님 된 사람을 가리켜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건 자신의 죄나 그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한다고 했다. 전혀 다른 시각이다. 이처럼 성경을 해석할 때 전통적인 해석과 전혀 다른 시각을 통한 해석이 함께 어우러질 때 진정한 말씀이 시작되리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많은 걸 알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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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제, 그 자매 - 누군가에게 사랑 고백을 받는 것처럼 설레고 행복한 것은 없다
고형욱 지음 / 두란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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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짝을 찾고 싶어한다. 크리스찬이라면 자신의 반쪽 즉 나의 아담은 어디에 있는지 혹은 나의 하와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말이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는 방법을 일러 주거나 그런 사람이다 라고 확실한 사인을 준다면 모르겠는데 이러한 경우보다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고형욱 목사님의 그 형제 그 자매를 읽으면 크르스찬 형제 자매들이 어떻게 하면 자신의 반쪽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을 상당 부분 풀어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도 역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반경 얼마 이내에 반쪽을 만날 확률이 높다지만 그래서 이런 확률을 가지고 반쪽을 찾아야 겠지만 그래도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그런 확률만 가지고 만날 수는 없다. 확률이 높다 해도 만남이 갖지 못할 수도 있고 확률이 거의 없다 해도 만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확률보다 그저 기도함으로 자신도 여기 저기 만남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만남도 인연임을 알고 기다려야 하는 부분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가꾸는 일일 것이다. 그건 외모 즉 보여지는 것 뿐 아니라 내면 또한 가꾸어 나가야 한다. 아무리 외모를 많이 보는 사회라 해도 누군가는 자신의 내면을 보아줄 사람을 만날 수 있고 확률로 인생을 아니 평생 함께 할 배우자를 만나기엔 너무나 위험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만의 멋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더 좋게 보여진다. 책에서 인용한 것처럼 너무나 황당한 기도 제목이나 형제들은 대개 아무런 기도 제목이 없거나 있어도 예쁜 자매가 등장하면 모조리 다 잊어 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고형욱 목사님이 말씀하신 배우자를 위한 기도 몇 가지 정도는 정해서 꾸준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형제든 자매든 정말 꼭 필요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말이다

 

이 책이 좋은 취지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가벼운(물론 일부러 그렇게 썼다고 생각하지만) 내용을 담고 있어 읽기엔 쉬웠으나 읽고 난 뒤에 별로 남는 것이 없다. 하지만 가볍게 읽기엔 좋다. 그렇다고 가볍게만 보지 말 것은 목사님께서 청년들을 만나면서 경험한 많은 사례들이 있기에 이것이 좋은 본보기가 될 수도 있기에 결코 쉽게 흘러 지나쳐서는 안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결론은 이 책이 비록 깊이 있게 이야기 하지 않아도 좋은 지침서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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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의 재발견 - 불온한 과학자들의 우연하고 기발한 발견들 딴짓의 재발견 1
니콜라 비트코프스키 지음, 양진성 옮김 / 애플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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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쓸모없는 생각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생각한다는 것 자체는 우리 머리를 회전시킨다. 아무짝에도 쓰임새가 없는 생각이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하는 교육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영국 초등학생들이 조금은 다른 교육을 받는 것이 부러웠다는 건.... 그리고 한동안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핀란드의 교육도 사실 우리와는 다르게 학생들이 마음껏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사고 속에서 상상력이 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니콜라 비트코프스키의 딴짓의 재발견이란 책을 보면 불온한 과학자들의 우연하고 기발한 발견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파팽은 어느 날 냄비에 물을 끓이다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 뚜껑이 들썩거리는 것을 보고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했다. 그 에너지를 이용해 증기 기계를 만들었고, 그로부터 얼마 후 스코틀랜드의 기술자였던 제임스 와트가 이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한다.

 

“사소한 경험이라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조금 유치해 보이는 경험이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린 아이들의 놀이도 철학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자연주의 철학자 로버트 보일이 남긴 것이라고 한다. 사실 우린 사소한 경험은 무시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유치해 보이는 어린 아이들의 놀이는 그저 애들이 노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아예 연구하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특히나 아이들의 사고는 어른과는 달리 유연하다. 예전에 아이가 나와서 단어를 적고 그 단어가 무엇인지 어른들이 맞추는 티비 프로가 있었는데 그 프로를 보면서 아이들은 어른 보다 상상력이 훨씬 뛰어난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른이라면 그저 정형화된 설명과 답변을 들을 수 밖에 없겠지만 아이들이라 그런지 때론 정말 기발하다고 생각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았다.

 

어쩌면 기발한 발견을 했던 과학자들은 어린 아이와 같이 호기심과 상상력이 풍부하였을 것이다. 딴짓의 재발견이란 책은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담으려고 하다 보니 서둘러 끝을 맺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은 더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은 절대 엉뚱할 수 없다는 걸 다시 마음에 두고 싶었다. 공상도 잡스러운 생각도 많이 하다 보면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바로 상상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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