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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울을 걷다
권기봉 지음 / 알마 / 2012년 10월
평점 :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산 기억은 없다. 두 살에 부산에 내려와 10살에 다시 수원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원에서 살았다. 그러니 서울은 기억에 없다. 서울은 그저 어릴 때 늘 가보고 싶은 동경의 장소였을 뿐이다.
물론 수원에 올라오면서 서울에 자주 가 보았지만 사실 학창시절에도 서울은 가까이 있지만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서울이라도 갈라고 하면 굳게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했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여의도 광장을 갔다가 이렇게 자유로운 문화적 분위기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을 정도니 비록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던 서울은 거리보다 훨씬 멀고 높게 여겨졌다.
서른 이후가 되어서야 비교적 서울을 자주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서울에 대한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서울은 참 여러가지 모습의 문화가 담겨 있다. 권기봉의 다시 서울을 걷다란 책을 읽으며 그간 들었던 서울의 문화와 역사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도 되었지만 또 새롭게 알게 된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서울에 아직 백사마을이란 달동네가 있다는 사실은 퍽이나 흥미로웠다. 어릴 때 독립문에 살았던 삼촌댁이 달동네였는데 늘 밑에서부터 참 오랜 시간 걸어올랐던 기억과 언덕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신나했던 추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또한 소공동에 차이나타운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기행문이 아니다. 역사와 문화가 아우러져 있어 왠지 하나의 역사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도 든다. 산책을 시작하며라고 여는 글을 알리고 목차도 일상을 걷다, 장소를 걷다, 의미를 걷다, 문화를 걷다라고 하면서 이 모든 산책을 끝나면 좋은 여행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평범한 기행문과는 달리 넌지시 던지는 질문 속에 깊이 있는 사고가 느껴진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 속에 단순히 서울의 지금 거리와 문화가 아닌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숨은 문화를 발견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너무나 소중한 보물 같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한 번쯤 오고 가는 도시 속에 숨겨진 다른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도시는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오랜만에 정말 좋은 책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