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달린다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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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달리기와 철학은 언뜻 보면 별로 상관없어 보인다. 하지만 철학자는 달리기 속에서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그걸 철학과 연결시킨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 속에서도 묘한 조화로움을 찾은 것이다.

 

처음 "철학자가 달린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저 '철학자가 달리면서 삶에 대한 이야기나 하겠지' 했던 것이다. 철학적 주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철학적 질문은 결국 삶에 대한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최근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정의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 속엔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들어있는 것이다. 결국 철학은 살아야 함을 혹은 사는 것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산다는 건 어떤 행위가 동반되는 것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달리기 역시 그런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철학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린 끝없이 어떤 목적을 위해 달려간다. 그 목적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마라톤이란 것도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지만 42키로를 달린다고 해서 어떤 것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때때로 경제적으로 볼 때 아무런 가치가없는 것이 오히려 마라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나름의 목적과 의미를 부여한채 말이다.

 

얼마 전에 놀이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보면서 결국 사람은 어쩌면 놀이를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인간은 놀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라톤은 과연 놀이가 될 수 있을까? 마라톤은 궁극적으로 쾌락과 환희를 안겨줄 수 있을까? 물론 성취감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마라톤이란 건 결국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극도의 고통스러움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기에 쾌락과는 거리가 멀다. 결코 놀이로서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의 인생을 흔히 마라톤에 비유를 많이 한다. 천천히 오랜 시간 달리는 과정 속에서 여러 몸의 변화를 느껴가면서 때론 심장의 고동 소리가 빨라지기도 하며 느려지기도 하는 변화를 겪게 되고 이윽고 완주를 경험한다. 마라톤이란 긴 호흡을 통해 삶을 생각한다면 당장 앞의 변화보다는 앞으로의 남은 인생의 경주를 생각하며 한 걸음씩 힘차게 디뎌야 할 것이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삶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 속에 진지한 물음으로 배워야 함을 책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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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 - 올바른 공부의 길잡이
이이 지음, 김학주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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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을 해야 할까? 언젠가 서준식 옥중서한을 읽으면서 책을 읽을 때 착한 마음으로 읽으라고 했었다. 그리고 착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율곡도 공부를 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했으니 역시 착한 마음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격몽요결의 뜻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가르치고 이끌어 주는 확실한 방법이란 뜻이다. 율곡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다. 이 학자의 이야기가 비록 지금의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것이라고 해도 귀기울여 들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특히 그저 출세를 위해 공부를 하는 요즘 시대 사람들에겐 좋은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율곡은 공부보다는 인성을 더 강조했다. 그래서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올바른 몸가짐과 생활이 중요함을 이야기했다. 공부를 하기 전에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고 이야기 했던 것도 결국 어떤 요직을 차지하거나 출세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먼저 좋은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을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책은 공부에 그다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내용을 집어 넣었는데 어버이를 섬기는 법, 장례를 치르는 법, 제사를 지내는 법, 집안에서 생활하는 법 등 마치 도덕을 배워야 하는 가르침을 책에 실었는데 이런 것이 바로 공부라고 강조하는 율곡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부란 그저 어떤 사상에 대해 배우고 암기하는 것에 그치는 반면 율곡이 이야기하는 공부란 앎이 아니라 행동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요즘 우리가 지키기 어려운 도덕적인 면을 강조하기도 한다.

 

요즘 우리는 공부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저 많이 알면 좋은 것이라 생각하여 남보다 많이 알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도 동시에 남을 깔보고 업신여기면서 무식하다고 여긴다. 인성을 갖추지 않은 공부는 정말 위험하다.

 

옛 사람의 가르침이 우리 시대에 얼마나 큰 울림으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먼저 좋은 마음과 뜻으로 공부하기를 바란다. 그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혹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또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공부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따스함으로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하였으면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을 존경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공부를 위해서는 예가 필요하다. 이런 예를 위한 공부를 많이 한 존경할 만한 스승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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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발견 - 스스로 가능성을 여는 - EBS 교육대기획 학교의 고백
EBS 학교의 고백 제작팀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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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공부하는 양을 따지자면 아마도 우리나라가 1등일 것이다. 얼마 전에 공부하는 인간이라는 다큐를 방영했던 적이 있는데 여기서 우리나라를 비롯 동양의 국가들의 공부 양은 서양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놀래킬 정도였다. 그런데 사고하는 공부가 아닌 암기식 혹은 주입식 공부라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에서는 동양은 가족이나 공동체를 위해서라고 답한 반면 서양은 개인적인 목표를 위해서라고 했다.

 

우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공부를 우리는 잘 하지 못한다. 스스로 자신을 가능성을 믿는다기 보다 누군가의 관심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에서 나온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 사실 우린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 그냥 흘려 보내곤 한다. 공부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공부만큼 아니 어쩌면 공부보다 더 중요한 놀이에 대해선 노는 시간에 공부라도 더 하라며 다그친다. 이 놀이야 말로 자기 주도성 공부를 하는 것인데.......

 

결정권을 아이에게 주어야 한다. 부모가 모든 걸 결정하고 그 뜻대로 하기를 원한다면 아이는 결코 자존감이 높아질 수도 없으며 자기 주도성 학습을 할 수도 없다. 의존성만 강해져 결국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스스로 배울 수 있게 그리고 스스로의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면 아이는 공부라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러 인상적인 실험들 중에서 특히나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였고 이걸 보면서 결국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림은 볼 수 없어도 그릴 수 있다는 이야기에 결국 나 역시 볼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림을 그릴까 하고 생각했기에 솔직히 편견 가운데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린 공부를 잘 하고 못함에 따라 평가 받는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획일화된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도와주면서 새로운 가능성과 비범함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바로 어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 비교를 하기 보다 새로운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프레이리가 말한 것처럼 교육은 희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대의 많은 어머니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그리고 아이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아이들이 스스로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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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류행 - 건축과 풍경의 내밀한 대화
백진 지음 / 효형출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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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단순하게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풍경을 건축에 비추어 이야기 하겠거니 생각했다. 책의 제목은 풍경류행이었고 부제로 건축과 풍경의 내밀한 대화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 건축과 풍경이라기 보다 풍경과 우리 삶에 대한 대화라고 해야 할까?

 

물론 건축이 이야기의 중심이긴 하나 말이 건축이지 건축이 본질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삶이 본질이다. 삶과 풍경이 얼마나 조화로움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건축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예술을 다 아우른다. 마치 한 권의 좋은 수필을 읽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책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삶이 보이는 풍경, 마음이 보이는 풍경, 어울려 사는 풍경, 지속하는 풍경 이렇게 네 가지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는 주제에서 벗어났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순환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묘하게 어울림을 가진다. 어쩌면 전혀 다른 이야기도 이렇게 조화로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수필 같은 느낌이 든다고 이 책이 결코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어떻게 본다면 듣도 보도 못한 듣보잡 같은 생각들이지만 또 다르게 보자면 통찰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기하고 신비롭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풍경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저 단순하게 자연의 풍경이나 도시의 풍경이 아닌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풍경을 말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도 결국 조화로움을 이야기한다. 생각과 생각들이 함께 어우러짐을 통해 공동체가 태어나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 새로운 풍경과의 만남으로 어떻게 하면 삶과 풍경이 어우러지며 우리가 함께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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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산이 울렸다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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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찬란한 태양이란 소설로 할레드 호세이니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저자의 출생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바로 소설 때문이다.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그저 스치는 뉴스 속에서나 아프가니스탄을 알았을 것이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아프가니스탄이란 나라와 굴곡있는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졌는데 우리와도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느껴진 국가라고 할까.

 

할레드 호세이니의 새로운 소설이라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읽었는데 역시나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두꺼운 페이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져 들어가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느껴졌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여인들의 이야기라면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남매의 이야기다.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이 운명을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함께 그렸다.

 

소설에서 처음 동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 동화처럼 슬픈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물론 천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이미 아픔의 역사와 작은 희망을 보여준 것처럼 반드시 동화 이야기가 어쩌면 이 소설의 포인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동화 속의 아버지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아들을 악마에 맡기고 떠나는데 소설에서도 사부르 역시 그의 사랑하는 딸 파리를 부자에 맡기기 때문이다.

 

파리에겐 압둘라라는 오빠가 있는데 어머니가 계시지 않아 파리를 돌보았던 건 오빠 압둘라였다. 이 남매의 애틋한 이야기가 소설의 출발이지만 소설은 마치 연작 소설 같은 느낌이다. 서로 다른 9개의 이야기가 시대를 넘나들면서 펼쳐진다. 물론 주인공도 다르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연작 소설 같다.

 

하지만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압둘라와 파리 남매 이야기다. 어릴 때 헤어졌던 이 남매는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는데 어쩌면 분단 상황에서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우리 현대사의 한 장면 같았다.

 

가족이란 뭘까? 다양한 이야기 끝에 찾아온 만남이라 그런지 더욱 가슴이 먹먹하다. 그러나 새로운 희망은 또 작은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이런 희망 하나 가슴 속에 간직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그리움을 가지고 살았던 압둘라와 오빠라는 존재가 있으나 없는 것 같았던 파리에겐 떨어져 지냈던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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