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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평점 :
4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을 만났다면? 어쩌면 현실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말도 되지 않는 일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그것도 역사적으로 논쟁이 많은 인물이 먼 친척이라 하면서.....
사실 처음부터 이 소설은 판타지적 요소를 갖추고 있음과 동시에 우연치고 너무 작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언가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어딘가 맞지 않는 단추 구멍에 억지로 실을 끼운 느낌이랄까?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란 소설은 전혀 엉뚱한 축구 이야기가 등장해도 이야기의 흐름상 전혀 어색하지 않았지만 이 소설은 왠지 모르게 어색하고 낯설었다. 어쩌면 이 낯설음이 소설의 장점일까? 그래도 소설은 술술 잘 읽힌다.
소설의 시작은 만남이다. 비행기에서 만나게 되는 400년을 넘게 산 사람과 이제 20대인 만남 속에는 마치 운명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이 27살의 남자 동현은 정여립에 관한 영화를 준비하는 사람이었고 400년 전에 정여립을 가까이 보았던 먼 친척 되는 홍도라는 여자와의 만남은 이 자체로 필연적이다.
역사란 객관적일까? 물론 객관성을 확보해야 겠지만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역사란 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주관적 역사를 우리는 배우고 알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이런 역사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불어 넣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27살의 동현은 철저히 기록만으로 정여립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홍도는 다르다. 그 시대에 살았던 그래서 오히려 다른 정여립과 주변 상황을 알 수 있게 하는 존재다. 어쩌면 작가의 상상력으로 다시 재조명하는 역사가 홍도라는 인물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과연 작가는 홍도를 통해 도대체 어떤 역사관을 혹은 어떤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란 완전한 사실에 입각한 기록물이 아니라면 결국 우리가 나름 상상력을 가지고 역사를 재구성 해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관점에서 정여립과 주변 상황들의 역사를 재조명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이 눈 앞에 다시 떠오른다. 결국 다시 돌아온다. 아마 소설을 읽는다면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홍도는 400년 전에 자치기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를 사랑했다. 이것이 힌트다. 결말은 그래도 겨울날에 호호 불어 먹던 호빵처럼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