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심리학 - 나의 잠재력을 찾는 생각의 비밀코드
김경일 지음 / 진성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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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접할 때만 해도 그저 그런 심리학 책이겠거니 싶었다. 최근 대중적인 심리 도서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읽어 보니 그간 대중적으로 나왔던 심리에 관한 책과는 다르다. 학문적이면서 동시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인지심리학을 소개한다.

 

인지심리학은 네이버 지식 백과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환경과 자신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는가, 그러한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여 각종 생활 장면에서의 과제들을 수행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심리학의 한 분야"라고 한다. 요즘 뇌과학에서 마음이 뇌에 있다고 하니 결국 뇌가 어떤 지식을 가지고 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느냐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2002년 월드컵에서 박지성을 가리켜 멀티플레이어라고 했다. 월드컵 인기에 힘입어 사회에서도 소위 멀티가 가능한 것이 마치 유능한 사람으로 포장되었다. 이 책을 읽으니 우리는 절대 멀티플레이어가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책의 이야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동기에 관한 부분을 많이 이야기했는데 동기엔 접근과 회피가 있다고 한다. 이 두 가지가 다른 만큼 충분히 이해하여 실생활에서 잘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잘 몰랐던 부분이기도 한데 자세한 설명으로 이젠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아는 만큼 바로 실행이 되면 좋겠지만 시행착오도 조금 겪으면서 성장해 가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 행복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우린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더 많은 돈을 벌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더 좋은 집과 자가용을 사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결국 행복은 비교하지 않고 작고 소소한 부분이라도 느낄 수 있는 정서가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긍정적 정서를 가지기 위해선 후천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저자는 강조했는데 앞으로 행복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책을 덮으며 한 가지 나와 약속한 건 일기 쓰기다. 얼마나 오랜 시간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좋은 정서를 위해서라도 나를 돌아보면서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조금씩 기록해 볼 것이다. 지혜의 심리학에서 배운 건 바로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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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 이어령의 첫 번째 영성문학 강의
이어령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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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고 하는 이어령 교수의 신작 소설로 떠나는 영성 순례가 출판되었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그는 이미 누구나 알다시피 기독교인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지성인이 아닌 영성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소설로 떠나는 영성 순례에는 소설 다섯 작품이 등장한다. 그 중 내가 읽은 건 카라마조프 형제들과 말테의 수기다. 물론 어린 시절에 장발장 이야기도 읽었다. 지금처럼 5권으로 된 완역본이 아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냥 소설에만 집중했을 뿐 이것을 영성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어쩌면 이런 시도조차 못했다고 해야 옳다.

 

문학 작품을 읽는 건 독자다. 독자가 어떤 방식으로 읽느냐도 그 독자 나름의 몫일 뿐 저자의 의도가 개입할 수가 없다. 물론 소설이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 만약 이것이 시대적 배경이라면 역사를 알고 소설을 읽는 것이 더 풍요로운 소설독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역사를 모르더라도 소설을 읽고 나름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상상해 보는 것도 독자에 따라 달린 것이다.

 

탕자 돌아오다는 소설 자체가 성경에서 가져온 것이라 그리스도인의 영성 순례에 꼭 필요한 것 같지만 실제론 성경과는 다른 내용이라 과연 얼마나 이 소설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성 순례로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레미제라블 같은 경우도 우리가 찾으려면 이미 찾을 수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을 과연 얼마나 발견했을까?

 

다섯 가지 문학작품은 모두 소위 고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세계문학전집에 빠지지 않는 작가들의 소설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분명 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어령 교수가 전문가이기 떄문에 소설로 떠나는 영성 순례를 쓸 수 있겠지만 우리도 충분히 문학 작품을 통해 영성 순례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교회에서 성경과 기도 그리고 제자 훈련이나 두 날개 같은 이런 훈련도 필요하지만 시나 소설 속에서 발견하는 예수 그리스도란 주제로 문학 작품을 읽고 영성을 키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소설로 떠나는 영성 순례가 이번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째 세 번째도 기대하고 싶은 건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여 오직 기도와 말씀만 아는 한국 교회에 지성과 영성과 감성을 고루 갖출 수 있는 출발이 바로 이 책이기에 그렇다. 한국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과 영성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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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터의 고뇌 꿈결 클래식 3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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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어린 시절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소설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로테란 이름만 들어도 함께 설레임을 갖기도 할 만큼 당시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흔들었다. 물론 소설이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한 여인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빼앗기엔 충분한 소설이었다.

 

20년이 지난 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제목이 바뀌어 젊은 베르터의 고뇌로 다시 만났다. 사춘기 시절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는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오랜만에 만나니 로테의 사랑스러움보다 베르터는 왜 자살을 해야 했을까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읽었다. 소설은 지금은 흔치 않은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소설을 서간체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이 편지로 되어 있다 보니 인물의 내면을 조금 더 깊숙하게 느낄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가독성은 떨어진다.

베르터는 왜 자살 했을까? 물론 사랑의 감정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다고 해도 혼자 사랑하는 것에 그치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바로 하지 말아야 할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베르터 역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해도 사랑 앞에선 모든 이성과 합리성이 무너진채 오직 감성 하나만 가지고 넘지 말아야 할 사랑의 경계선을 넘어버린 건 아닐지 모르겠다. 경계선을 넘어 이제는 소유하지 못할 사랑의 대상에 대한 깊은 좌절과 절망 그리고 인생의 즐거움을 잃어버려 결국 자살을 한 것이 아닐까? 보다 근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베르터는 주변의 모든 상황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태양계가 태양을 중심으로 모든 행성이 움직이듯. 그러니 당연히 로테 역시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았을까? 물론 로테도 베르터를 좋아한 건 사실이나 이건 이성의 끌림이 아니다. 단지 좋은 친구로 좋아한 것이다.

 

사랑은 결국 일방적 감정이 아닌 상호간의 소통이다. 이건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흔히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 이성적으로 끌린다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랑이 격정적 감정만 가지고 할 수는 없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정말 아름다운 사랑이 탄생하듯 우리의 모든 삶도 비극적 결말이 아닌 조화로움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다. 이런 면에서 베르터는 지금의 나 또는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조금씩 더 성숙해야 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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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中庸 - 공존과 소통 그리고 인성을 세우는 진리
자사 원작, 심범섭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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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경전은 종류가 많다. 가장 기본적으로 알려진 건 바로 사서 삼경이지만 시대에 따라 경전은 변화되었다. 이런 이유로 시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삼경(시경, 서경, 역경)은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는 뒤늦게 경전에 합류하게 된다.

 

이 책을 펼치자마자 편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주역을 알아야 중용을 이해할 수 있다"(P.4). 주역은 삼경에 속해 있다. 즉 유교 경전의 기본이 바로 시경, 서경, 역경(주역)이며 이것이 모든 유교 관련 서적에서 반복되어 나온다고 해야 하나 암튼 그렇게 등장한다. 주역을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주역은 기본적으로 음과 양의 조화로움을 만물의 이치로 삼고 있음을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용 역시 조화로움을 이야기한다. 중용을 중용 답게 만드는 건 바로 하모니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용의 원 저자는 공자의 손자로 알려진 자사다. 그래서 그런지 중용에는 공자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논어를 읽으면 굳이 중용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런 정도로 많은 내용은 논어 뿐 아니라 기존의 유교 경전에 실린 내용과 비슷한 것이 많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도라는 것은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p.36). 이 내용은 도덕경에 나오는 첫 번째 이야기인 "도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도가 아니다."와 너무나 비슷하다.

 

해 아래 새 것은 없다란 말이 있다. 중용도 인,의,예,지 즉 사람이 가져야 할 네 가지의 마음 가짐에서 벗어남이 없다. 이건 결국 중용도 삼경과 사서의 흐름 가운데 하나란 것이며 이미 기록된 경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앎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책에서도 강조한 것처럼 실천해야 한다.

 

처음 중용을 읽을 땐 뭔가 새로움을 기대했다. 이런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일까. 차라리 도덕경이나 논어나 맹자를 한 번 더 읽는 것이 좋겠다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굳이 사서 가운데 하나로 중용을 넣어 오래도록 전해왔다면 분명 중용 만의 매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번 읽고선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기회가 닿으면 또 한 번 들추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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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정원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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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엔 너무 어렸다. 초등학교 시절이니 아무것도 몰랐다. 90년대 대학에 입학하고서야 80년대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책을 통해서..... 주로 소설을 통해 알게 된 80년대 대학생들의 사회를 향한 치열한 고민을 90년대 대학생인 내가 한 편으론 존경스럽다고 여긴건 새로운 신세대인 X세대가 비록 새로운 문화의 바람을 몰고 온 건 사실이지만 어쩐지 사회를 향한 정의의 외침과는 거리가 있어 80년대 대학생들의 뭔가 영웅적인 모습이 사실 부럽기도 했다.

 

최영미의 청동정원은 주인공 이애린이 과거를 회상하며 쓴 추억 소설이다. 소설이 비록 허구적 이야기가 하더라도 작가 자신이 경험한 일을 쓰게 마련이다. 왜 굳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임을 밝힙니다"라는 걸 써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독자들이 이런 걸 모르고 읽을까? 물론 가끔 소설을 읽다가 너무나 생생한 인물 묘사에 실존 인물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진정한 소설의 맛은 가공의 인물이지만 살아있을 법하거나 혹시 살아있었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니라 실제 살아있는 인물이거나 살았던 인물 같은 느낌일 때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애린 역시 마치 살아있는 인물 같았다. 물론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마음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자전적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창조된 인물이다. 이애린의 회상 속엔 80년대의 기록이 있다. 80년 서울의 봄, 광주의 이야기 그리고 87년 민주화 운동과 노태우 대통령 당선까지 이 많은 이야기를 한 권의 소설에 담겨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단지 80년대 대학생들의 영웅담만 그리지 않은 것이 오히려 소설의 멋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마음 속엔 마치 형이상학적인 거대 담론을 가지고 투사가 되어 운동을 하더라도 삶에 있어 미숙한 면을 드러내는 것이 이애린의 남자친구인 동혁을 보며 느꼈던 것이다. 동혁은 사람을 대할 줄 몰랐던 너무나 미성숙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읽었다. 정이현의 안녕 내 모든 것이란 90년대의 젊은이들 이야기보다 오히려 80년대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건 90년대는 공감을 할 수 있으나 80년대는 공감하지 못해 오히려 신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은 앞으로 어떤 정원을 만들어 갈지 과거의 추억 속에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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