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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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방대수 옮김

 

최근 의 정원』에서 소개된 책이다. 다른 읽을거리를 제치고 읽었다.

가방 끈의 길이를 논하기 이전 정규교육을 받은 사실이 없는 자, 일곱 살에 시력을 잃고 7년 후 운 좋게 시력이 돌아와 다시 눈이 멀기 전에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읽고자 했던 자, “백치 아이라 불리어 처음으로 손에 잡았던 책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였고 몇 번씩 주위의 도움이나 본인 능력으로 한곳에 정착하여 진작 안정된 지위를 가져봄직도 했지만 거부하고 노동을 재산으로 방랑했던 에릭 호퍼의 40대에 이르기까지 자서전을 호기심 속에서 잡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슬로건과 같이 책을 스승과 벗으로 삼아 책을 통하여 자아를 발견하고 저술작업을 통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친 철학자로 주로 밑바닥 생활을 영위했지만 보수적인 인물이다.

우리 초중고교에선 에릭 호퍼의 이런 사례를 전파하여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좋겠다.

 

아직 호퍼의 다른 책은 읽지 못했지만 첫 저서이자 대표작이라고 보는 『맹신자들』에서 대중운동에 대한 그의 통찰이다. “대중운동의 맹신자는 죄의식, 실패,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좌절한 자로, 미래의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 동기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묻어버리게 된다. 자신의 무의미한 생에 의미를 부여해줄 것으로 여겨지는 운동에 열광적으로 투신하는 것이다.”

이는 머리를 아래로 하고 엉덩이를 위로 한 사유 자세이자 빈민층을 살아온 그가 마치 사회 지도층의 위치에 있는 자가 할 법한 말을 한 것인데, 밑바닥 방랑자 생활이지만 독서로 지피는 뜨거운 가슴을 지나 냉철한 가슴으로 사유하는 결정체를 보여주는 것 같다.

 

태어나서 40대 까지를 기술한 자서전 속의 호퍼는 착실하고 말쑥한 자세를 나타내는 온당한 인간이다. 오렌지 행상 때 과일상자를 청소한 후 깨끗한 종이를 깐 다음 단단한 것은 아래로, 익은 것은 위로 쌓아준 자세로 매진사례를 가져온다. 신사 자신은 모르는 구멍난 양말을 손수 기워준 답례를 사양하며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했다는 곧고 솔직한 마음이다. 어느 날 다가온 헬렌과 충분히 사랑을 잉태하고 해피엔딩도 가능했지만 그녀의 기대를 정당화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을 소비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냉철한(?) 생각도 대단하다.

특히, 이 부분은 읽는 나를 아찔하게 하고 멍하게 했다. 과연 나는….? 가치관이나 생활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개개의 관점이라 보자. 그러한 호퍼도 40대 후반 들어 이탈리아 이민출신으로 미모의 건장한 여성 『릴리 페이빌리』를 만났다.

 

짐수레에 걸터앉아 담소하는 동료들이 보이고 책을 주시하는 작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양육 받으며 자랐다면 과연 말년에 철학자의 반열에 올랐을까.

불행을 겪은 만큼 행복을 느끼듯 방랑자 생활의 경험과 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 반열의 좌석은 없었을 것이다.

 

클로즈업되는 인물이 있다. 『말콤엑스』이다. 흑인으로서 온갖 비열한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입소하고서야 책을 접하게 되고 비로소 세상에 눈을 떠 온건파 흑인운동의 대부 『마틴루터 킹』과 대조적으로 흑인의 인권을 위해 과격한 투사의 면모를 드러내고 결국 암살로 종지부를 찍은 『말콤엑스』도 책을 통한 입지적인 인물인데 이런 점에서 호퍼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대구 출신의 『장정일』을 꼽을 수 있을까.

 

앞으로 호퍼의 저서 중에서 『맹신자들』이나 『부두에서의 노동과 사색』을 추가로 읽고 싶다.

내게 다가온 『에릭 호퍼』가 주는 말이고 싶은 게 있다.

이 나이에 급진적일 것 같은 생각을 말자. 한걸음 뒤로 물러나 넓게 사고하도록 노력하자.

대중, 다수에 끌려 결코 함몰되지는 말자. 합리적인 보수가 되길 바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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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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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의 정원/예문

책의 만물상을 거닐다.

도서 7~8만권을 소장한 <다치바나 다카시>는 안면이 있다. <사토 마사루>는 처음 접하는 인물인데 일본 외무성 고위관료 출신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논객이라고 한다. 저서도 꽤 있을 법한데 한국에 번역된 마사루의 저서로는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있다.

 

두 사람이 책을 중심으로 의 향연을 한껏 펼치게 되는데 덕분에 읽을 거리를 발굴하는 장점이 있다. 또 지극히 간략하게 소개하는 책의 내용을 통하여 여태 몰랐던 무지를 깨닫는 소득도 있었다. 책과 씨름하여 교양을 쌓고 그 교양 너머 전문가 수준에 도달하기 까지, 그리고 저서를 남기는 데에는 100권 이상의 책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진다고 보겠다.

 

지하철에서는 스마트폰을 소지한 사람이면 죄다 이를 작동하느라 바쁜데 책은 소외 당하고 있는 현실. 그나마 e북을 보는 사람은 다행이겠는데 아주 드문 풍경에서 출판사의 어려운 운영상황은 차치하고서라도 급감하는 종이책 이용은 젊은이들로부터 인내심을 앗아가는 요인도 되면서 정신적인 풍요를 갉아먹는 기기이다.

 

나는 독서를 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사람이다.

손에 든 책은 99% 소장하는 것으로 공감하는 확연한 문장에는 밑줄 치고 별표로 마킹하기도 한다. 다 읽은 후에는 가능한 한 리뷰를 남기려 노력한다. 공감하는 책은 지인들에게 권하기도 한다.

그런데….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손 때 묻은 책을 펼치고 필기구로 표시한 페이지를 스칠 즈음에 한탄하는 것이다. 분명 읽은 문장인데 처음 보는 듯한 소감이 왠 말이라는 것인지….

건망증인지 기억력의 현저한 감퇴인지독서무용론을 대두시켜야 할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독서가 아니라 책의 활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순간 그 생각에 올인 했다 책장을 덮은 후엔 깨끗하게 내용과 이별하는 것이 아닌가.

 

뇌의 발달이 책읽기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하며 따라서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의 책읽기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 아이들의 뇌 회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는 점은 아주 중요하겠다.

일본의 태평양전쟁의 광기에 편승하게 된 단초 중 하나는 책을 읽되 그 운율에 빠져 논리가 아닌 감정에 치우치게 되었다는-독서를 통한 지적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쟁 전 올림픽 삼단뛰기에서 각각 다른 일본 선수가 연거푸 금메달을 따서는 일본이 위대한 건 변기모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양변기가 아니라 발에 힘을 주는 변기라 발에 힘을 주는 형태로 허리에 힘이 들어간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기에 서양인과 싸워도 이긴다는 엉뚱한 책도 있다.

공감하고 않고를 떠나 플라톤의 <국가>를 혹평하고 나치의 전체주의는 플라톤을 개조해서 태어난 현실 사회이다.”라는 대목에서는 솔직이 어안이 벙벙하다.

푸틴은 유도를 좋아해서 정치가로서는 달라붙어 겨루는 타입이라고, 그래서 그저껜가 뉴스에서 큰 개 두 마리를 껴 앉아 달라붙어 눈밭을 뒹구는 푸틴의 사진이 보이더라만.

현대인들의 독서능력이 갈수록 떨어지니까 정치선동적인 문장으로 가득 찬 소설이 판을 친다는 지적.

고전에 대한 정의를 깔끔하게 정리한다. “고전은 모든 지식의 기반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과 어떤 주제를 놓고 이야기할 경우 전제나 배경이 되는 지식이 없으면 내실 있는 논의가 불가능한데 그때 전제나 배경이 되는 것이 바로 고전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교육이 위험한 수준까지 떨어졌고, 최근 경제파탄은 지적 파탄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 더욱 문제는 키에르케고르의 말 중 <비본래적 절망>이라는 것이 있는데, 절망적인 상황이 있는데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며 일본 이전의 한국적인 상황이야 말로 교육, 경제 측면의 파탄지경에 점입가경인 듯한 정권의 현주소에서 <한국의 비본래적 절망>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이다.

항공모함 기술을 알기 위해 해군과 별도로 육군이 항공모함을 만드는 나라인 일본-자기식 행정 편의주의의 모델이다.

이스라엘에서 게임마니아인 청소년들을 집단 육성하여 게임하듯 무인기를 조종하도록 시켜 적국을 공격하여 살상행위를 하게 하는 사실은 뉴스를 통해 접하지 못한 내용인데, 이는 일본보다도 천편일률적인, 서구관점의 언론매체가 득세한 한국의 사정 때문인가?

스탈린은 그루지야 출신으로 러시아인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고 러시아어에도 능통하지 못했다고, 러시아에는 유라시아주의 사상이 있다는 것에도 금시초문.

독일과 이탈리아는 신성로마제국 부흥이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고, 영국의 해군력을 제어하고 러시아를 견제할 필요에서 일본이 필요했고, 일본은 독일의 기세에 현혹되어 버스에 늦게 올라타지 않으려는생각만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전쟁에 편승한 역사도 나에겐 새롭게 조명된다.

형액형과 성격을 결부시키는 논의가 의미 없는 것으로 검정까지 되었다는데 혈액형 성격테스트 책이 나온다는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 하지만 유럽에서는 혈액형과 성격을 결부시키면 금세 나치즘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도 처음 듣는 말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범위나 깊이 측면 모두 알차다.

거듭 밝히지만 두 사람의 대화에서 전혀 문외한인 나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고 다방면에서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걸 절감한다. 독서량도 아주 적지만 그나마 불교관련, 심리, 문학, 에세이 류에 치중하여 균형 있는 독서와는 동떨어져 있음을 시정해야겠다.

 

다치바나의 목록에서 건진 책이다.

<에릭 호퍼 자서전>. 평생 막노동을 하면서 최고의 정치철학서를 펴낸 자로 그의 자서전을 읽고 싶다. 길 위의 철학자라는 칭호를 받는 그의 경로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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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에서 천산까지
김호동 지음 / 사계절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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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에서 천산까지/김호동 지음

 

한번씩은 독자리뷰를 찾아 리뷰의 을 참조하여 도서를 고르는 것도 괜찮다.

소지하게 된 책은 1999년판인데 좋은 재질에 내용도 알차 매우 만족하였다.

 

김호동 교수도 이 책을 통하여 처음 알게 된 분인데 우선 역사학자로서의 소명이 확실한 분 같다.

우리 내면에 권력에의 의지가 꿈틀거려 곧잘 강한 자와 강한 민족의 역사에 매료되는데 <진정한 강자는 약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는 인식으로 단지 오늘날 중국을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황하를 따라 짓눌려온 민족들의 역사를 독자들에게 에세이 형식으로 무겁지 않게, 그러나 우리 이웃의 민족에 대해 비교적 자상하게 들려준다.

 

몇 편의 리뷰 중에서 어느 독자는 한국의 역사교육을 나무라기도 한다.

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세계사> 과목에서 이런 내용을 언급하지 않고 뭘 가르쳤을까.

이 책이 아니었다면 동아시아를 무대로 전개되는 네 민족(?)의 흥망성쇠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지냈을 것이다. 물론 티베트에 대해서는 불교와 연관되고 14대 달라이라마의 저서도 꽤 많아 약간 알지만 섬서성과 감숙성을 본거지로 <마명심>이란 인물을 통해 본격적인 중국판 이슬람이 발흥하게 되고 오늘날 카자흐와 키르키즈에 이들의 후예가 있어 둥간으로 불린다는 내용은 금시초문이었다.

 

또한 징기스칸을 떠올리는 몽고가 남북으로 나뉘어 한 쪽은 중국의 지배하에 있게 되는 역사 역시 전혀 아는 바 없었다. 유목생활로 계절 따라 이동하는 그들의 생활을 측은하게 여기는 우리지만 그들의 생각은 정주생활 하는 농민들을 가축처럼 불쌍한 존재로 생각한다는 측면에서, 토지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민으로서 무한한 긍지를 느꼈다는 몽고의 민족에서는 어안이 벙벙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유목 기마민족에 대한 시야에 백내장 현상 아니었을까.

 

중앙아시아의 이슬람화 과정에서 위구르인들이 처음에는 불교를, 그러다 서서히 이슬람으로 바뀌게 된 신강위구르자치구인데 지금에도 툭하면 폭동이 일어나 漢族과 대치하고 소수민족의 독립요구를 틀어막는 중국의 입장에서 큰 난제인 이곳의 역사, 즉 과정을 모르고 그 동안 뉴스만 보아왔다. 1864년 청조의 지배가 완전히 붕괴되어 13년 동안 독자적인 이슬람 국가를 세웠지만 <야꿉 벡>의 한 순간 잘못 판단으로 지금까지 중국의 통치하에 놓이게 된 안타까운 과거가 있었다.

특히 위구르인의 역사는 소수민족 사이에서도 업신여김을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칼막크(몽골), 중국인(한족?), 솔론(만주)인 등으로부터 필사의 탈출을 하려는 여인의 처지를 읊은 <노주굼>이라는 민요는 그들의 쓰라린 역사를 충분히 대변한다.

위구르인들은 외모부터 서양인과 비슷하여 짐작으로는 유럽방면에서 이주한 민족쯤으로 여긴 그동안 나의 생각은 전혀 아니었다. 9세기인가 몽골인을 피해 중앙아시아 쪽으로 이주한 것이다.

 

김호동 교수-역사학자로서의 자세는 확고하다.

“~그들에 대한 연구가 나 자신의 밥벌이를 위한 방편이나 지적인 탐구 자체로 끝나 버린다면 거기에 무슨 생명이 있을까. 역사학이 과거 인간들의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거기서 주체가 되는 인간에 대한 공감이 없는 역사학은 결국 논리의 왕국 안에 쌓아 올린 거대한 신기루 궁전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흘러간 역사라는 빛을 관찰하면서 인간이라는 프리즘으로 사실을 규명하고 그 본질을 인간학으로 보는 역사학자의 곧은 자세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이 분의 다른 저서도 준비해 보고 싶다)

 

질곡을 거쳐 현재에도 질곡의 세월일 수 있는 이들 4민족의 무대는 중국이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지배를 당했겠지만 중국의 한족 역시 지난 2000년의 거의 절반을 이들 소수민족들의 지배 아래 신음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되씹어야 하겠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는 소수민족과 더불어 수많은 漢人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일부분에서는 이미 미국을 능가하는 중국, 하지만 시한폭탄일 수도 있다.

미래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위구르가, 또는 티베트가 피를 동반한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면 도미노 현상으로 거대중국은 침몰할 가능성이 충분히 보이며, 또한 그 영향은 한반도에도 격동을 예고할 것이다. 여러 소수민족을 다스려야 하는 중국의 지도부는 과제 보따리를 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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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도의 악몽 - 소설보다 무서운 지구온난화와 환경 대재앙 시나리오
마크 라이너스 지음, 이한중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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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도의 악몽 / 마크 라이너스 지음

 

올 봄 서울 근교 꽃나무들의 개화가 전년에 비해 1주일 당겨진다는 뉴스를 들었다.

여기 송정으로 오르는 달맞이 벚꽃나무 길은 지난 주말부터 만개하였는데 중부지방과 마찬가지로 작년보다 최소 1주일 이상 빠른 걸 실감한다.

근래 한국은 계절구분 없이 대체로 가문 날씨였다가 불규칙적으로 비가 오면 엄청 내리는 편이고 겨울엔 폭설로 바뀌어 종잡을 수 없는 변덕스런 기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안다.

바다는 어떤가. 명태는 이미 식탁에서 구경하기 어렵고 흔하던 오징어도 예전보다 훨씬 귀한 편이다. 수년 전부터 우리 동해바다의 백화현상이 점점 두드러져 어획량의 감소를 시작으로 바다가 죽어간다는 가사를 본 기억도 있다. 해류온난화로 인해 남해와 동해바다의 해수욕장에서 대형해파리의 출몰로 피서객들이 곤욕을 치렀다는 뉴스는 여름 단골뉴스로 자리잡았다.

 

비단 이 책을 열거하지 않아도 한국이 아열대의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해도 과언 아닐 것이다.

영국(?)에서 2007년 출판, 한국에선 2008년에 출판되어 지금부터 5년 전에 기록한 지구상황에 비해 이미 악화된 현실이어서인가?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기에 스티븐슨이 발명한 증기기관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지금도 지구에 잔류, 순환하여 지구온난화에 기여한다는 것인데 그 동안 인간은 하나뿐인 지구를 혹독하게 사용한 결과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류의 책은 거의 읽지 않았다.

매장을 지나치다 호기심에서 선택, 차를 운행하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할 때 읽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다. 결론은 매우 선택을 잘한 책이라는 거다.

나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폐해를 조금은 과학적인 접근에 의해 알게 되었고 이산화탄소의 감소해야 하는 절박한 시점임을 알고 아주 미약하나마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의식적으로 궁리해볼 것이다. 내 아들의 자녀-손주-2070년 정도에도 생존해있을 것인데 책에 의하면 지구는 현재보다 3~4ºC 정도 온난화가 진행되었을 텐데 과연 어려움 없이 일상을 지내게 될까?

교토의정서’, ‘탄소배출권등의 단어도 검색하여 보다 자세히 알게 되었다.

상대적으로나 절대량으로나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는 선진국이고, 이로 인한 온난화의 피해로 생존의 위협에 먼저 직면하게 될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후진국은 억울하기만 하다.

여기에 부시정권 당시 미국이 쿄토의정서 협약을 거부한 사실은 세계경찰을 자임하고 세계평화를 수호한다는 미국이 실은 자신의 국익만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일 뿐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인구대국인 중국과 인도 역시 산업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탄소배출량 억제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다.

 

히말라야, 안데스, 알프스 등 고산지대의 설빙이 고갈되어 물 부족 현상이 농업, 공업용수뿐 아니라 식수까지 부족하게 할 무렵이면 도시들은 황폐화될 것이고 안전지대를 찾아 이주해야 하는데 이는 중국이 러시아를, 미국이 캐나다를 침공하는 시나리오를 작성하기에 충분하다.

북극 빙하가 녹아 동토가 농지화되어 경작면적이 증가하는 장점이 있다고 하지만 해수면상승에 따른 경작면적의 감소분을 역전하기엔 역부족이고, 도리어 드러난 동토를 활용하여 화석연료를 채굴하는 것은 이산화탄소 방출을 더욱 촉진시키고 지구온난화의 가속 역시 심화되는 것이다.

 

자연의 생물은 어떤가.

1천년에 걸쳐 2ºC가 상승하면 10년마다 0,02ºC가 올라가는 것으로 대부분 생물종이 적응할 수 있는 변화속도이나, 이런 변화가 50년 만에 일어난다면 그 영향은 파멸적이어 지구온난화가 이런 상태로 지속된다면 다음 세기는 황폐해진 지구에 거의 인간만이 남는 고독의 시대가 될 수 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탄소배출이 당장 중단된다고 해도(가능성은 0 이겠지만) 온도는 0.5~1ºC 상승하여 알프스 방하는 구제받지 못하고 북극은 티핑포인트에 도달, 2040년엔 여름에는 얼음이 사라질 것이라 한다.

단적으로, 중장기적인 목표치로 2ºC 상승이라면 온실가스의 배출이 2015년까지 절정에 달하고 그 후부터는 꾸준히 떨어져야 하며, 2030년까지 60%, 2050년까지 85%를 줄여야 하는데 아주 어려운 수치이다.

쿄토의정서와 상관없이 지금도 계속되는 하던 대로 하자는 경향은 2100년이면 4ºC~6ºC까지 온도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함은 무시무시한 시나리오이다.

휘발유 1갤런(3.78리터)는 식물성 재료 90톤이 투입되었고, 1년마다 사용하는 화석연료는 100만년에 걸쳐 만들어졌다는 설명은 탄소배출과는 별개로라도 아껴야 하겠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채취하는 화석연료는 석탄에서 시작하여 석유, 그리고 가스 순인데

고갈을 앞두고는 대륙붕의 메탄하이드레이트를 찾는 것으로 계속 탄소배출에 열을 올

리는 한 지구온난화라는 시한폭탄을 제거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방안으로 풍력 조력 태양열 발전이 있고 원자력을 이용하는 방안도

있으나 탄소 배출을 줄이는 가장 쉽고 유익한 방법은 열대림의 벌목을 중단시키는 것이

라 한다. 한편 옥수수 등을 이용하는 바이오 연료는 최악의 방법이라고 한다.

 

어느 나라이든 자국의 경제를 우선하는 입장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국제협약은 空約

일 수 밖에 없다. 인류생존이 막장 환경에 치달을 때 깨달으면 뭐하랴.

소박한 방법 중 하나는 산불조심도 되겠고 차량운용도 조금씩 줄이면 좋겠다.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주제로 논술고사나 입사시험에 거론하고 특히 행정고시 등에 출제

하여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도 좋은 방안일 것이다.

각종 물자도 아끼고 난방이나 취사용 가스사용과 덥다고 켜는 에어컨도 절제하여 가정경

제와 탄소 배출 억제에 기여하는 생활습관을 키우는 것이 최소한 이 책을 읽은 자의 자

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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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 바다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스티븐 캘러핸 지음, 남문희 옮김 / 황금부엉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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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류 /스티븐 캘러헨 지음

 

76일 동안 망망대해라는 무대에서 의식주 모든 면에서 위태로운 상태에서 혼자뿐인 현실을 지낼 수 있을까. 100% 저자의 경험담이니 경탄할 따름이면서 삶으로 귀환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책 말미에 그의 독백이 담겨 있다.

일단, 패닉에 빠지지 말자. 패닉에 빠지지 말자!” 이다.

 

예기치 않았던 일을 당하여 일반적으로 당황한다. 위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대책마련은 생각지도 못하고 머리 속은 캄캄하며 절망하거나 분노한다. 감정이 앞서 섣불리 내딛는 행동은 더욱 사태를 악화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할 수 있다…….

 

우리의 저자는 선박 설계사로 일하며 바다와 관련된 일에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고 직접 항해도 하여 일반인과는 다른 처지이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 혼자 야간항해 중 큰 물체(고래?)에 부딪쳐 모선을 버리고 보잘 것 없는 구명선에 의지하여 표류한다.

바람과 조류 따라 흘러가는 구명선의 속도를 추측하고 별이나 임시기구를 만들어 방향도 파악하는데, 또 증류기가 준비되어 있어 최소한의 식수를 만들 수 있어 일반인에 비해 생존확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일반인이라면? 당장 음용할 물이 없어 갈증으로 죽...

이런 책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재미가 있다.

다른 일을 제쳐놓기도 하고 늦게 자면서까지 경험담을 읽는, 끌리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미포 바닷가로 내려갈 일이 있었고, 잠깐 바다를 응시해보았다.

마침 날이 흐렸고 바람이 꽤 불어 예전 한국콘도 앞 코앞이 육지인 해변이 넘실대었다.

멀리 수평선의 경계는 모호하여 바다와 하늘이 구분되지 않아 다소 쓸쓸한 듯한 감이 왔다.

희망은 가지되 기약 없이 바다라는 벽 아닌 벽에 갇혀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저자의 삶으로 향한 정신과 육체를 존경할 만 하다.

 

바다에서 머무를 때 알아두면 긴요한 상식을 아는 묘미도 있었다.

-바닷물을 마시게 되면 당장은 갈증해소에 도움되겠지만 지나친 나트륨 섭취로 인해 신체조직에서 수분이 고갈되어 소변이 말라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러다 결국엔….)

-굶주림은 마녀이며, 갈증은 그녀의 저주라는 절박한 환경이다.

-물고기를 마비시키려면 눈을 눌러야 한다.(바둥대는 물고기를 바로 죽일 수 있다는 것)

-표류 중 먹은 것이 너무 없어 30일간 변을 보지 못한 사례를 저자는 일고 있었지만 본인은 31일째 되던 날 피가 섞인 거품과 적은 양의 설사를 했었단다.(한달 가량이나 변을 보지 않아도 생존?)

-철분을 섭취해서 빈혈증세를 경감시킬 요량으로 캔에 붙은 녹을 긁어서 물에 타 마신다.

 (비상시엔 이렇게 철분섭취를 해도 되나?)

 

절대 절명의 76일을 맞이하기까지 저자가 밝힌 마음이다.

-몸이 불만을 토로할 때 이성은 고귀한 참을성에 갈채를 보내고, 내 몸이 만족할 때 이성은 고귀한 참을성에 불평을 해댄다.(결국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과 같겠다)

-궁핍한 생활은 참으로 기묘하고도 소중한 풍요를 내게 선물했다. 고통, 좌절, 굶주림, 갈증 또는 외로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참으로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되는 것이다.(그러니 겪어봐야 알지!)

-지옥의 내 좌석에서 불구덩이로 내동댕이쳐질 순간에 다다른 기분이다.

-선과 악, 미와 추 사이의 뚜렷한 차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그저 경계가 불명확한 순간일 뿐이며, 더 깊은 피로와 고통으로 계속 이어질 뿐이다.

-내 이성적 자아는 끊임없이 방황하며 때로는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다가도 순식간에 주정뱅이처럼 횡설수설 갈팡질팡한다.

 

저자는 표류하기 전부터 생활에서, 인간관계에서부터 표류했었다고 고백한다.

현실과 부합되지 않을 때면 현실에서 도피했고, 사람들을 수용하지도 못한 편이었다.

그러다 예기치 않았던 표류에서 바다는 그의 약점과 절망을 테스트한 것이라 한다.

그는 삶의 질은 말한다.(분명한 건 살아남았기 때문에 자신을 가지고 하는 말이렷다!)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일 때 자신의 영혼을 세상과 얼마나 많이 나눌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평화롭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거라 한다.(, 존엄사의 본질을 말하는 자체는 옳다지만 왠? 혹 번역에 문제가 있나?)

 

저자는 <매일 구명선의 상태, 몸의 컨디션, 식량과 물 저장량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그날 할 일에 우선순위를 매겨 대처한다.>고 하듯 아마 능동적인 위기대응력에서 생사의 기로를 넘겼다고 보겠다. 패닉에 빠져 당황하지 말자고 한 다짐과 함께 살아남은 구체적인 방법이었다고 보겠다.

 

표류. 주어진 세월과 세월을 구성하는 시간을 낭비하는 어리석음, 보통사람들 일상일 수 있다.

영화 <빠삐용>에서 스티브 매퀸은 꿈 속에서 재판을 받는데 罪目은 포괄적이자 양심의 문제이다.

<젊음을 낭비한 죄>를 들어 꾸짖고, 그는 지옥 같은 감옥 행이다.

보통사람들 이전, 나 스스로 되묻고 부끄러운 마음을 보자.

생활을 배반하는 표류를 관두고 제대로 돌아가는 육지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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