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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방대수 옮김
최근 『知의 정원』에서
소개된 책이다. 다른 읽을거리를 제치고 읽었다.
가방
끈의 길이를 논하기 이전 정규교육을 받은 사실이 없는 자, 일곱 살에 시력을 잃고 7년 후 운 좋게 시력이 돌아와 다시 눈이 멀기 전에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읽고자 했던 자, “백치 아이”라 불리어 처음으로 손에 잡았던 책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였고 몇 번씩 주위의 도움이나 본인 능력으로 한곳에 정착하여 진작 안정된 지위를 가져봄직도 했지만 거부하고 노동을 재산으로 방랑했던 에릭
호퍼의 40대에 이르기까지 자서전을 호기심 속에서 잡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슬로건과 같이 책을 스승과 벗으로 삼아 책을 통하여 자아를 발견하고 저술작업을 통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친 철학자로 주로 밑바닥
생활을 영위했지만 보수적인 인물이다.
우리
초중고교에선 에릭 호퍼의 이런 사례를 전파하여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좋겠다.
아직
호퍼의 다른 책은 읽지 못했지만 첫 저서이자 대표작이라고 보는 『맹신자들』에서 대중운동에 대한 그의 통찰이다. “대중운동의
맹신자는 죄의식, 실패,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좌절한 자로, 미래의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 동기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묻어버리게 된다. 자신의
무의미한 생에 의미를 부여해줄 것으로 여겨지는 운동에 열광적으로 투신하는 것이다.”
이는
“머리를 아래로 하고 엉덩이를 위로 한 사유 자세”이자 빈민층을
살아온 그가 마치 사회 지도층의 위치에 있는 자가 할 법한 말을 한 것인데, 밑바닥 방랑자 생활이지만
독서로 지피는 뜨거운 가슴을 지나 냉철한 가슴으로 사유하는 결정체를 보여주는 것 같다.
태어나서 40대 까지를 기술한 자서전 속의 호퍼는 착실하고 말쑥한 자세를 나타내는 온당한 인간이다. 오렌지 행상 때 과일상자를 청소한 후 깨끗한 종이를 깐 다음 단단한 것은 아래로, 익은 것은 위로 쌓아준 자세로 매진사례를 가져온다. 신사 자신은
모르는 구멍난 양말을 손수 기워준 답례를 사양하며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했다”는 곧고 솔직한 마음이다. 어느 날 다가온 헬렌과 충분히 사랑을 잉태하고
해피엔딩도 가능했지만 “그녀의 기대를 정당화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을 소비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냉철한(?) 생각도 대단하다.
특히, 이 부분은 읽는 나를 아찔하게 하고 멍하게 했다. 과연 나는….? 가치관이나 생활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개개의 관점이라 보자. 그러한
호퍼도 40대 후반 들어 이탈리아 이민출신으로 미모의 건장한 여성 『릴리 페이빌리』를 만났다.
짐수레에
걸터앉아 담소하는 동료들이 보이고 책을 주시하는 작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양육 받으며 자랐다면 과연 말년에 철학자의 반열에 올랐을까.
불행을
겪은 만큼 행복을 느끼듯 방랑자 생활의 경험과 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 반열의 좌석은 없었을 것이다.
클로즈업되는
인물이 있다. 『말콤엑스』이다. 흑인으로서 온갖 비열한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입소하고서야 책을 접하게 되고 비로소 세상에 눈을 떠 온건파 흑인운동의 대부 『마틴루터 킹』과 대조적으로 흑인의 인권을 위해 과격한
투사의 면모를 드러내고 결국 암살로 종지부를 찍은 『말콤엑스』도 책을 통한 입지적인 인물인데 이런 점에서 호퍼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대구 출신의 『장정일』을 꼽을 수 있을까.
앞으로
호퍼의 저서 중에서 『맹신자들』이나 『부두에서의 노동과 사색』을 추가로 읽고 싶다.
내게
다가온 『에릭 호퍼』가 주는 말이고 싶은 게 있다.
이
나이에 급진적일 것 같은 생각을 말자. 한걸음 뒤로 물러나 넓게 사고하도록 노력하자.
대중, 다수에 끌려 결코 함몰되지는 말자. 합리적인 보수가 되길 바라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