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후회는 없다 - 에베레스트에서 사라진 맬러리를 찾아서
피터 퍼스트브룩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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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후회는 없댜.

 

1924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하기 위해 <조지 리 맬러리> <앤드루 코민 어빈>은 제 6캠프를 떠나 8000여 미터 언덕을 올라간다.

그 장면이 동료에게 목격된 후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 실종된 것이다.

이후 1999년 에베레스트에서 사라진 이들을 찾아 나선다.

영국의 노련한 등반대와 다큐멘터리 촬영 팀이 마침내 <맬러리>의 주검을 발견한다.

오래 전 <라인홀트 메스너>흰 고독 검은 고독이란 책에서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엔 8,000미터 급 산이 14개가 있어 14좌로 불린다는 것을, 그 중 최고봉이 에베레스트로 높이가 8,848미터로 알았다.원래 이름은 네팔에서는 사가르마타, 티베트에서는 초모랑마라고 부른다는데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당시 최고봉을 확인하고 그 책임자의 이름을 따 에베레스트로 명명했다고 하니 과히 유쾌하지 않다.

세계사에서 근대와 현대를 아우를 즈음 대영제국의 위상은 현재 최강대국 미국보다 더 했을 만한 지위였을 터. 러시아를 위시한 타국보다 먼저 세계 최고봉을 정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상에 걸 맞는 자국민의 에베레스트 정복이 지엄한 목표였다.

맬러리는 소시 적부터 어딜 오르는 걸 즐겨 했다 한다. 그러다 나중엔 크게 다쳐 두고두고 고생했다고 한다. 교사로 재직하다 1차 대전에 지원하고, 1922년과 1924년 두 차례 모두 영국 등반대 일원으로 에베레스트에 도전한다. 1922년 등반에서는 세르파 7명의 희생이 있었다. 등반대 합류를 앞두곤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마음에 망설이기도 한,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 캠프에서는 정리정돈을 제대로 못한다, 필수적인 등반도구를 결정적으로 까먹고 등반하기도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차 원정에서 맬러리가 선택한 파트너는 의외로 어빈, 원정대 막내였으며 높은 산을 등반한 경헌도 없었으나 옥스포드 출신으로 공학기술이 뛰어나고 성실했다.

2차 원정 전 맬레리는 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느냐는 질문을 받곤 그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전장에서 군인은 초개 같은 군인정신으로 목숨을 불사하고 조국을 수호하듯 등반가는 산이 있기에 모든걸 불사하고 산에 오른다는 정신! 나를 희생하여 대의를 구한다는 게 말이야 그렇지 쉽지 않은데….목표를 설정하여 나아감에는 후회 없고 결과는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것인가.

최초의 에베레스트 정복은 1953년 뉴질랜드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와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 우리나라에선 1977고상돈 대원이라고 한다.

폭염과 열대야로 범벅 되는 여름 밤에 히말라야를 엿보는 시원함이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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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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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가 부르는 나의 미카엘!

처음 펼치는 이스라엘 작가의 책이다.

한나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글을 당시 29세 남성이 썼다는 사실은 처음엔 믿지 못하여 작가연보를 확인하게끔 했다.

지금은 영 아니지만 우리의 고은 씨처럼 줄곧 노벨문학상에 랭크 되었다는데 올 가을에라도 그의 수상소식이 들리면 아는 체 할 거리는 있으렸다.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한 폭 수채화 같은 연애와 신혼 드라마 같은 게 마악 가정을 꾸린 젊은 부부나 결혼을 앞둔 연인들이 읽어보면 갈등 없이 무난한 생활하는데 도움되겠다 싶은 소설이라 짐작했는데 해설에 의하면 꿈과 현실의 이중적 설화라고 무게 있는 제목으로 전개되는 모양이 날 자책하게 이끈다. 작가는 한나를 통해 묘사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 속에서 무엇인가의 결핍으로 인한 현대인의 외로움과 절망이라고 한다는데 이 소박한 독자는 굳이 무겁게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연애와 신혼, 출산 그리고 양육과 안정기로 접어들면서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한나의 內心이라면?

계단을 내려오다 미끄러지는 여학생을 잡아주는 남학생, 인연이 되어 작전이 개시된다.

(첫 미팅 떄 남포동 찻집을 거쳐 태종대 자갈마당을 걷는데 여학생이 넘어지고, 난 다친손목에 일일반창고를 매어주고 그녀의 가방을 들어준다. 허나 애프터 약속도 잡지 못하고 꽝 이었다)

나한테 입맞추려고 몸을 숙이기 전에 머릿속으로 셋까지 세고 있었던…….

(첫 휴가 마지막 날 늦어가는 밤 야통이 있었던 때, 용두산공원 벤치에 앉아 사랑의 증표로서 뽀뽀는 해야 하는데 실행할 엄두가 나지 않아 마음 속으로 몇 백 번을 헤아렸던가..

그러다 얼떨결에 성공은 했다)

슬며시 떠오르는 젊디젊은 시절이 오버랩, 묵은 추억이 반갑게 달려오는 이런 것도 독서가 주는 유익함이겠다. 또한 연애의 감정은 만국공통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신혼에서 중년을 넘나드는 이들 부부에서 한나는 생략하기로 하고 미카엘의 경우 절제되고 순화된 언행거지와 아내를 배려함에 주저치 않으며 그의 실수가 없음에도 먼저 사과하는 일관된 매너를 보여준다. 당시 그 무렵 난 어떻게 생활했을까 되돌아보면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젊은 여성의 묘한 심리 나는 그의 자제력을 사랑했다. 그것을 깨부수고 싶었다 이런 심리를 간파하는 남자라면 그 가정은 평화로울 확률 100%.

꿈을 통해 펼쳐지는 한나의 몽상이자 환상 역시 초 중등시절 주로 바람 매섭게 불던 겨울 밤을 떠오르게 한다. 멀리 개 짖는 소리, 세숫대야 날아가고 고양이는 울고 거의 무서움에 바둥대던 어린 시절이었다.

사실적인 묘사와 그에 돛 단 듯 상상의 나래를 구사하는 은유는 역시 작가다운 면모로 무척 감탄하게 된다.

뒷 표지에 실린 <아서 밀러>의 품평으로 마무리하자.

감동적인 러브스토리이자 아름다운 서정시로서 나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젊은 부부, 예비부부가 반드시 읽고 참조해야 할 소설이다.

나의 미카엘, 나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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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교 이야기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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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교이야기에서 역사가 보인다.

저자가 저술하게 된 동기와 목적은 머리말 그대로이다.

 

한 뿌리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로 나뉘어 지금까지 그 갈등은 증폭되어 전세계적으로 평화를 위협하는 현실은 기상이변과 함께 현대가 풀어야 할 난제이자 과제이다.

역사를 보면 정치든 사상이든 관용과 포용을 앞세우면 융성했고, 반목과 대립의 결과는 어김없이 쇠퇴했다고 한다. 12세기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한 이슬람근본주의가, 11~13세기 카톨릭 교황이 주도했던 십자군전쟁이 가장 대표적이다.

유대교의 율법, 기독교의 복음, 이슬람의 코란, 불교의 다르마, 힌두교의 요가, 도교의 도, 인간에게 올바르게 사는 길을 제시하는 종교의 궁극은 한 길인데 나만 옳고 너희들은 틀렸다그 종교의 절대적 진리만을 강조하는 근본주의(교조주의)는 결코 옳지 않다.

세 종교 모두의 경전인 <시편>122 6절은 예루살렘을 위해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고 말하고 있다는데 인간들이여! 다시 한번 쿠오바디스인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기약 없는 아랍권과의 전쟁, 이스라엘의 후견인격인 미국과 영국, 아랍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러시아가 아랍권을 지지하고, 이도 부족했는지 아랍권 내에서도 시아파 수니파로 나뉘어 총부리를 맞대고, 양아치 같은 탈레반과 IS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까지 테러를 수출하고, 이를 피해 난민들은 유럽으로 몰려들고 최근엔 제주도까지 난민들이 오게 되고….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 협박하고 시리아는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기독교의 구약과 이슬람교의 경전이 같고 한 뿌리였다는 사실을 알고 믿기 어려웠다.

마침 서점에서 이 책을 구하여 본다는 게 한참 후에 읽게 되었다.

전문학자도 아닌 일개 직장인으로 퇴직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꼼꼼하게 짚어주는 종교를 뛰어넘는 고대 중세 현대사에선 감탄사가 나온다.

 

알고 보면 세계문명의 발현은 수메르 문명이라고 한다.

수메르 문명의 중심도시 우르 주민 아브라함이야말로 원초적인 씨앗이다.

수메르 문명부터가 선사시대를 마감하고 역사시대를 도래하는데 척박한 지역에서 도전과 응전의 원리로 바퀴를 사용하고 문자, 화폐, 음악이 있었고 성스러운 수인 십이진법을 사용했는데 동양에서의 십이지간지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아난나 여신에서 출발하여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로마의 비너스가 맥을 함께하며, 헤로도토스의 지적대로 신전매춘이 성행하였고 신전을 통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 것이자 동시에 불쌍한 남성을 위로한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종교적 의무로서의 신전매춘은 더욱 나아가 성행위를 통해 생산된 아기가 가장 고귀한 제물이 되었고, 아브라함이야말로 아들을 하느님의 제단에 바치려 한다?

아담에서 10대가 흐르자 세상은 타락하고 선택된 노아, 노아의 세 아들 중 큰아들 셈의 후손이 곧 아브라함으로 수메르 문명이 우상숭배와 음란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해 순수한 광야 - 가나안으로 보낸다.

아브라함의 처 사라에게서 자식이 없어 하녀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은 후, 늦게 사라가 이삭을 낳게 되는데 이스마엘은 아랍인이 되고 이삭은 유대인의 시작이 된다.

어느 날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물로 바쳐라 하여 아브라함은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려 하나 믿음을 본 하느님은 중단시키고 양을 바치게 한다.

여기서 번제물로서 바쳐진 아들이 이스마엘이냐 이삭이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이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로 연결되는 것이 기독교와 유대교의 시각이다.

유대교는 아브라함과 모세, 바빌론 유수기의 선지자들에 의해 민족종교로 자리잡았다.

전반적인 과정과 율법을 기록한 것이 <모세오경> <토라>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계는 하나다라는 세계시민주의를 지향하는 헬레니즘 문화인 반면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에 근거한 차별성을 갖는 문화이다 보니 곳곳에서 부딪쳤다.

유대왕국의 헤롯은 메시아의 출현을 두려워하여 두 살 이하의 아기를 모두 죽이려 했으나 아기 예수는 이집트로 피난하여 살았고, 하느님의 축복은 유대인에게만 유효하지 않고 사람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고 신의 사랑은 무한하다는, 상선벌악도 아닌 신의 은총이 가르침의 핵심이라고 설파했다. 당시 바리새파가 주도하는 유대교는 신앙의 본질인 사랑보다는 율법의 형식에 매여 있었다. 이는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이에 예수는 유대인들에 의해 정치범으로 처형되나 부활한다.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예수를 신의 아들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예수를 이스라엘민족을 인도하기 위해 신이 보낸 중요한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경한다.

예수의 여러 사도 중 바울에 의해 유대교의 관행을 버리고 체계화된 기독교로서 에게 해  지역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스토아 자연철학, 로고스, 플라톤 등의 사상과 접목되어 보편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또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다. 또한 황제는 325년 니케아 공회의에서 삼위일체(하느님 예수 성령)를 기독교의 기본골격으로 확립하여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유대교는 몰락한다.

종교개혁은 1517년 로마 카톨릭 사제였던 독일의 마틴루터가 당시 로마 카톨릭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고, 스위스의 츠빙글리, 칼뱅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기독교는 개신교 그리고 로마 카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로 구분되었다. 당시 카톨릭은 문맹을 권하는 종교로 평신도의 성경읽기가 금지되어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중세사회에서 글을 아는 결속된 유대인들이 상업과 교역을 주도하여 덕을 보게 된다.

무함마드는 아라비아 반도 교역로의 중심인 메카에서 장사하던 무역상으로 자기민족을 위한 올바른 종교가 절실하여 610년경 이슬람교를 창시하였다.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문맹이었지만 계시를 받아 외운 것을 추종자들이 기록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 코란이다.

무슬림이란 복종하는 사람이란 뜻이고, 이슬람의 뜻은 평화롭게 되는 것, 신에게 귀의하는 것으로 평화와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샬람이라고도 하는데 히브리어의 샬롬과 같아 절대 원수 지간인 이슬람과 유대민족은 형제민족이라 하니 웃고픈 현상인가?

유대인과 기독교도들은 무함마드를 거부하고 성경에 관한 무함마드의 무지를 비웃어, 유대교에 근거를 둔 무함마드는 유대교에 대해 적대적으로 돌변하게 되었다.

이슬람은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약속은 이삭이 태어나기 전의 것으로, 이스마엘이 약속의 아들이고 아브라함의 합법적 상속자임을 내세운다. ‘이스마엘의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말한 대로 아랍민족이 예언자 무함마드를 배출한 위대한 민족이 되었다고 한다. 무함마드가 승천한 예루살렘 성전산의 황금 돔 사원은 원래 솔로몬 성전이 있는 곳이자 예수가 부활 승천한 곳으로 세 종교 모두의 성지이다.

아랍어 코란을 원칙적으로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고 한다. 번역은 곧 변질을 동반한다나. 불가피하게 번역된 것은 코란의 해설이란 뜻으로 타프시르라 한다.

내면의 성찰을 통한 참회로서의 투쟁인 큰 지하드, 민족과 종교에 대한 탄압과 억압에 저항하는 작은 지하드가 있는데 작금의 지하드란 본말이 전도된 것이리라.

무함마드에서 아부바쿠르, 우마르, 오스만 이후 알리로 게승되는 시아(맹주국 이란), 무아위아로 계승되는 수니(맹주국 사우디)로 오늘에 이르게 된다.

6세기 우마르 때부터 급성장한 이슬람은 유럽을 침공하나 정복지의 이교도에 대해 관용을 베푼다. 720년경 이베리아 반도 프랑크 왕국이 이슬람의 수중에 떨어졌다면 이후 유럽의 역사는 이슬람교가 주도하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세계역사에서 이슬람 문화는 고대와 중세의 다리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세 종교의 공통점은 유일신을 믿는 일신교라는 점.

다른 점은 유대교는 율법에 의한 구원, 기독교는 믿음에 의한 구원’, 이슬람교는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한다.

금요일은 이슬람, 토요일은 유대교, 일요일은 기독교의 안식일이다.

유대교에는 선교활동이 없고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반목과 갈등의 역사편으로 물론 대상은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이 고대로부터 박해를 받은 것은 종교적 마찰 때문만은 아니었다.

특히 중세 유럽에서부터  유대주의가 준동하게 된 요인은 교리상의 차이, 유대인만의 폐쇄적인 생활태도, 으뜸인 경제력이었다.

근 현대사의 유명인의 말을 빌리자면, <볼테르>: 유대인은 한마디로 약탈민족이다. <마크트웨인>: 유대인의 인생목표는 돈이다. 그리고 현대 유대인 박해의 일등 공신(?)인 히틀러….

독자로서 부끄러운 고백이다.

나치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근본이유는 우수한 게르만민족의 혈통보존에 유대인은 열성종자라 원천적으로 도태시켜야 하기에 대규모 학살을 감행한 것으로 알았다.

히틀러는 유럽의 主敵은 국제적인 유대인 집단으로, 국제적 금융자본주의와 국제적 사회주의가 유럽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았다. 1차 세계 대전 후 패전국으로 독일경제가 위축된 것과 반대로 독일 유대인들의 경제력은 더욱 강해져 점차 독일인들의 강한 반유대 정서가 표출된다. 히틀러는 이를 정치에 이용할 목적도 분명히 있었고, 또 러시아를 뒤흔든 이론가 레닌과 트로츠키가 유대인이었고 독일혁명 역시 유대인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에서 히틀러는 유대인은 곧 좌익이라는 등식으로 그가 주도하는 유대인 박해가 1933 1 30일 총리가 된지 1개월 만에 시작하여 다섯 단계의 과정으로 시작되었다. 단계마다 그 강도는 강화되었다. 1941년 소련침공의 목적도 소련 내 500만 명의 유대인을 수중에 넣어 유대-볼셰비키 지식계층을 박멸함이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과 러시아의 유대인 1100만 명 중 약 600만 명이 히틀러에 의해 학살되었다. 중세부터 시작된 유대인 박해는 홀로코스트(대학살)만큼 그 규모나 잔혹성이 두드러진 적은 없었다.

당시 폴란드의 한 랍비가 로마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한 서신을 보냈지만 교황청의 답변은 소름 끼친다. 이 세상에 무고한 유대인 피란 없다. 모든 유대인의 피는 죄악이다. 당신들은 죽어야 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 때문에 당신들은 이러한 형벌을 받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아랍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맥마흔 선언>, 역시 유대인들에게 독립국가를 세워주겠다는 <밸푸어 선언>으로 이중플레이를 행한다.  이 결과가 오늘 날 중동을 화약고로 만든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은 기원전 63년 망한 지 정확히 2011년 만에 기적적으로 나라를 되찾게 된다. 1948년 국가를 선포하고 인구 80 6천명으로 출범하였다.

이후 팔레스타인과 가자 지구, 아랍 등등 하면 쉽게 떠올리는 단어는 시위, 폭동, 전쟁이다. 피압박 민족이었던 이스라엘은 현재 세계평화를 깨트리는 악의 축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한다. 한 뿌리에서 태동한 세 종교라지만 특히 신교로서의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서로 용서하고 화해해야 마땅하다. 미래 후손을 위해서라도 평화공존의 관계를 정착시켜야 한다.

올 여름 들어 가장 덥다고 느껴지는 부산의 밤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전 지구적으로 폭염이라는데 자꾸 이런 기후가 지속된다면 예사스럽지 않다.

사족, 우리의 태극기부대(자금부족으로 조만간 소멸하겠지만)는 앞으로 성조기보다는 나치 문양 하켄크로이츠를 드는 게 온당하지 않을까? 빨갱이 잡는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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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거라 - 어니스트 헤밍웨이 장편소설 열린책들 세계문학 199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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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유명한 작가 헤밍웨이는 올 7월에야 비로소 내게 왔다.

짧은 분량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고, 이어 <무기여 잘 있거라>를 들었다.

그것도 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단지 실수로 끓는 물을 발등에 쏟아 화상병동에 입원할까 하다 통증이 가라앉아 통원치료 받으며 장마와 월드컵시즌에 헤밍웨이를 비롯하여 몇몇 세계명작과 조우하였다.

혈기왕성하고 정의로운 헨리는 미국청년으로 이탈리아 의무대에 자원 입대한다.

역시 자원 입대한 영국인 간호사 캐서린과 만나게 되고 어수선한 전쟁의 분위기 속에서 믿고 의지할 목적이 되는 거침없는 사랑이 구원처럼 다가온다.

후퇴하는 중에 아군의 즉결처형을 피하여 탈영에 이르고 연인과 보트를 이용하여 스위스로 망명길에 성공한다. 고진감래남은 것은 장밋빛인데 님은 피안의 세계로 가셨다.

불 같은 사랑을 하였으되 쓸쓸하게 돌아서야 하는 남성들은 헨리이고 <개선문>의 라비크이다. 속전속결의 대화체가 시원시원하게 페이지를 넘기게 하고 음산한 전쟁과 함께 사랑은 뜨거운 만큼 비극은 예정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마주하는 사안에서 줄기가 보인다고 할까. 누렸던 쾌락만큼 상응하는, 반대급부로서 고통이 수반하는 것이며 플러스 마이너스 합이 0 으로 귀결되더라는 거다. 불행을 겪은 자가 행복의 참 맛을 음미한다는 것처럼. 헨리와 라비크는 동일인인양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추억은 존재하지만 후회는 결코 아닐 것이다.

우리의 헨리는 이후 묵직한 삶을 살아가리라.

헤밍웨이와 부친이 권총자살로 마감했다는 것, 이 소설의 모델이 된 여성이 연하 헤밍웨이보다 나은 조건의 남성을 택해 유명인 배우자를 걷어찬 격이 되었고, 노벨상을 수상한 그가 걸 맞는 대작을 써야 한다는 강박과 경제난을 걱정하여 정신병원의 신세를, 위상을 고려하여 병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퇴원 이틀 후 자살, 사후 거금의 재산을 미망인에게 남겨놓았다는 사실은 모두가 凡人이라는걸 보여준다.

헤밍웨이도 헨리도 독자인 나도 평범한 사람이고, 지금엔 헨리도 시대를 거슬러 이미 고인이리라. 나두 꽤나 세월을 넘겼기에 이런 사랑은 풍경화로 남기자.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사무직을 버리고 책을 읽거나 리뷰를 작성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틀을 지었기 때문인데 지나간 세월은 담을 수 없고 형체 없는 공백은 무의미와 비례하였다.

책을 읽고 흔적을 남기도록 부단한 노력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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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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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를 읽다.

저녁에 지인을 만나 삼계탕을 곁들여 술을 마시고 귀가.

그래도 밤이 깊을수록 체감하는 더위에 낮에 잡았던 책을 계속 읽게 되었다.

참신한 소재인지, 다소 환상적인 배경이다.

연동하는 1/8mm 입자의 모래가 사구를 이루고 전방위적으로 집을 에워싸고 거주자들을 속박한다. 계략에 빠져 줄사다리를 타고 하루 숙박을 위해 내려간 것이 발단이다.

그래도 남자의 로망은 있어 젊은 여자 앞에선 잠깐 설레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론 실종의 시작- 인생 조졌다.

애향의식으로 뭉쳐 마을을 지키기 위한 협업에 의식주가 매몰되어도 불평불만 없이 생활할 수 있었을까. 모래의 여자는.

부업을 통하여 라디오, 그것도 할부로 구입하고자 하는 꿈을 이루고 남자와의 관계에서 임신을 하고 평범한 가정생활을 희망한다.

탈출을 위해 여자의 시선을 돌리려 치밀한 계획하에 성대한 섹스를 감행하고 모래 위로 올랐으나 모래 늪에 빠져 죽음을 앞두고 원수 같은 주민들에게 구조된다.

다시 줄사다리를 타고 여자에게 귀순한 남자. 이후 제대로 된 가장생활이다.

일견 체념했겠지만 희망의 끈은 놓지 않은 보람이 있어 까마귀를 생포할 목적으로 설치한 덫에서 우연히 물을 발견하고 기회를 마련하는가 하는데 여자의 임신, 그리고 위급상황에서 병원으로 가는 여자를 위해 내려진 사다리가 제거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이 장면이야 말로 열려라 참깨! 아닌가?

비상한 제 머리를 자랑할 대상이 없어 도망치지 않는 남자의 마음을 누가 알까?

탈출이라는 목적이 있어 남자는 미치지 않으며 부삽으로 모래를 파고 사랑도 나누었고

애향의식이라는 목적이 또렷이 자리잡은 모래의 여자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남자와 소박한 일상을 가꾸고자 하였다. 차라리 무난한 출산으로 남자의 목적이 탈출에서 가장의 도리로 각인되어, 외부세계와는 격리되기에 복잡다단한 현대인의 고뇌 등등은 별천지로 치부하며 알콩달콩한 사구아래 생활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입하고 5년 이상 방치된 책을 한 여름 밤을 벗하여 시원하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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