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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후회는 없다 - 에베레스트에서 사라진 맬러리를 찾아서
피터 퍼스트브룩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그래도, 후회는
없댜.
1924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하기 위해 <조지
리 맬러리>와 <앤드루 코민 어빈>은 제 6캠프를 떠나 8000여
미터 언덕을 올라간다.
그 장면이 동료에게 목격된 후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 실종된 것이다.
이후 1999년
에베레스트에서 사라진 이들을 찾아 나선다.
영국의 노련한 등반대와 다큐멘터리 촬영 팀이 마침내 <맬러리>의 주검을 발견한다.
오래 전 <라인홀트
메스너>의 ‘흰 고독 검은 고독’이란 책에서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엔 8,000미터 급 산이 14개가 있어 14좌로 불린다는 것을, 그 중 최고봉이 에베레스트로 높이가 8,848미터로 알았다.원래 이름은 네팔에서는 ‘사가르마타’로, 티베트에서는 ‘초모랑마’라고
부른다는데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당시 최고봉을 확인하고 그 책임자의 이름을 따 에베레스트로 명명했다고 하니 과히 유쾌하지 않다.
세계사에서 근대와 현대를 아우를 즈음 대영제국의 위상은
현재 최강대국 미국보다 더 했을 만한 지위였을 터. 러시아를 위시한 타국보다 먼저 세계 최고봉을 정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상에 걸 맞는 자국민의 에베레스트 정복이 지엄한 목표였다.
맬러리는 소시 적부터 어딜 오르는 걸 즐겨 했다 한다. 그러다 나중엔 크게 다쳐 두고두고 고생했다고 한다. 교사로 재직하다
1차 대전에 지원하고, 1922년과 1924년 두 차례 모두 영국 등반대 일원으로 에베레스트에 도전한다. 1922년
등반에서는 세르파 7명의 희생이 있었다. 등반대 합류를 앞두곤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마음에 망설이기도 한,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 캠프에서는 정리정돈을 제대로 못한다, 필수적인 등반도구를 결정적으로
까먹고 등반하기도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차 원정에서 맬러리가 선택한 파트너는 의외로 어빈, 원정대
막내였으며 높은 산을 등반한 경헌도 없었으나 옥스포드 출신으로 공학기술이 뛰어나고 성실했다.
2차 원정 전 맬레리는 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느냐는 질문을 받곤 “그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전장에서 군인은 초개 같은 군인정신으로 목숨을 불사하고
조국을 수호하듯 등반가는 산이 있기에 모든걸 불사하고 산에 오른다는 정신! 나를 희생하여 대의를 구한다는
게 말이야 그렇지 쉽지 않은데….목표를 설정하여 나아감에는 후회 없고 결과는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것인가.
최초의 에베레스트 정복은 1953년 뉴질랜드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와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 우리나라에선 1977년
故고상돈 대원이라고 한다.
폭염과 열대야로 범벅 되는 여름 밤에 히말라야를 엿보는
시원함이 없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