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종교 이야기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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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교이야기에서 역사가 보인다.

저자가 저술하게 된 동기와 목적은 머리말 그대로이다.

 

한 뿌리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로 나뉘어 지금까지 그 갈등은 증폭되어 전세계적으로 평화를 위협하는 현실은 기상이변과 함께 현대가 풀어야 할 난제이자 과제이다.

역사를 보면 정치든 사상이든 관용과 포용을 앞세우면 융성했고, 반목과 대립의 결과는 어김없이 쇠퇴했다고 한다. 12세기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한 이슬람근본주의가, 11~13세기 카톨릭 교황이 주도했던 십자군전쟁이 가장 대표적이다.

유대교의 율법, 기독교의 복음, 이슬람의 코란, 불교의 다르마, 힌두교의 요가, 도교의 도, 인간에게 올바르게 사는 길을 제시하는 종교의 궁극은 한 길인데 나만 옳고 너희들은 틀렸다그 종교의 절대적 진리만을 강조하는 근본주의(교조주의)는 결코 옳지 않다.

세 종교 모두의 경전인 <시편>122 6절은 예루살렘을 위해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고 말하고 있다는데 인간들이여! 다시 한번 쿠오바디스인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기약 없는 아랍권과의 전쟁, 이스라엘의 후견인격인 미국과 영국, 아랍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러시아가 아랍권을 지지하고, 이도 부족했는지 아랍권 내에서도 시아파 수니파로 나뉘어 총부리를 맞대고, 양아치 같은 탈레반과 IS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까지 테러를 수출하고, 이를 피해 난민들은 유럽으로 몰려들고 최근엔 제주도까지 난민들이 오게 되고….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 협박하고 시리아는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기독교의 구약과 이슬람교의 경전이 같고 한 뿌리였다는 사실을 알고 믿기 어려웠다.

마침 서점에서 이 책을 구하여 본다는 게 한참 후에 읽게 되었다.

전문학자도 아닌 일개 직장인으로 퇴직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꼼꼼하게 짚어주는 종교를 뛰어넘는 고대 중세 현대사에선 감탄사가 나온다.

 

알고 보면 세계문명의 발현은 수메르 문명이라고 한다.

수메르 문명의 중심도시 우르 주민 아브라함이야말로 원초적인 씨앗이다.

수메르 문명부터가 선사시대를 마감하고 역사시대를 도래하는데 척박한 지역에서 도전과 응전의 원리로 바퀴를 사용하고 문자, 화폐, 음악이 있었고 성스러운 수인 십이진법을 사용했는데 동양에서의 십이지간지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아난나 여신에서 출발하여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로마의 비너스가 맥을 함께하며, 헤로도토스의 지적대로 신전매춘이 성행하였고 신전을 통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 것이자 동시에 불쌍한 남성을 위로한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종교적 의무로서의 신전매춘은 더욱 나아가 성행위를 통해 생산된 아기가 가장 고귀한 제물이 되었고, 아브라함이야말로 아들을 하느님의 제단에 바치려 한다?

아담에서 10대가 흐르자 세상은 타락하고 선택된 노아, 노아의 세 아들 중 큰아들 셈의 후손이 곧 아브라함으로 수메르 문명이 우상숭배와 음란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해 순수한 광야 - 가나안으로 보낸다.

아브라함의 처 사라에게서 자식이 없어 하녀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은 후, 늦게 사라가 이삭을 낳게 되는데 이스마엘은 아랍인이 되고 이삭은 유대인의 시작이 된다.

어느 날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물로 바쳐라 하여 아브라함은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려 하나 믿음을 본 하느님은 중단시키고 양을 바치게 한다.

여기서 번제물로서 바쳐진 아들이 이스마엘이냐 이삭이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이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로 연결되는 것이 기독교와 유대교의 시각이다.

유대교는 아브라함과 모세, 바빌론 유수기의 선지자들에 의해 민족종교로 자리잡았다.

전반적인 과정과 율법을 기록한 것이 <모세오경> <토라>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계는 하나다라는 세계시민주의를 지향하는 헬레니즘 문화인 반면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에 근거한 차별성을 갖는 문화이다 보니 곳곳에서 부딪쳤다.

유대왕국의 헤롯은 메시아의 출현을 두려워하여 두 살 이하의 아기를 모두 죽이려 했으나 아기 예수는 이집트로 피난하여 살았고, 하느님의 축복은 유대인에게만 유효하지 않고 사람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고 신의 사랑은 무한하다는, 상선벌악도 아닌 신의 은총이 가르침의 핵심이라고 설파했다. 당시 바리새파가 주도하는 유대교는 신앙의 본질인 사랑보다는 율법의 형식에 매여 있었다. 이는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이에 예수는 유대인들에 의해 정치범으로 처형되나 부활한다.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예수를 신의 아들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예수를 이스라엘민족을 인도하기 위해 신이 보낸 중요한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경한다.

예수의 여러 사도 중 바울에 의해 유대교의 관행을 버리고 체계화된 기독교로서 에게 해  지역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스토아 자연철학, 로고스, 플라톤 등의 사상과 접목되어 보편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또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다. 또한 황제는 325년 니케아 공회의에서 삼위일체(하느님 예수 성령)를 기독교의 기본골격으로 확립하여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유대교는 몰락한다.

종교개혁은 1517년 로마 카톨릭 사제였던 독일의 마틴루터가 당시 로마 카톨릭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고, 스위스의 츠빙글리, 칼뱅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기독교는 개신교 그리고 로마 카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로 구분되었다. 당시 카톨릭은 문맹을 권하는 종교로 평신도의 성경읽기가 금지되어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중세사회에서 글을 아는 결속된 유대인들이 상업과 교역을 주도하여 덕을 보게 된다.

무함마드는 아라비아 반도 교역로의 중심인 메카에서 장사하던 무역상으로 자기민족을 위한 올바른 종교가 절실하여 610년경 이슬람교를 창시하였다.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문맹이었지만 계시를 받아 외운 것을 추종자들이 기록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 코란이다.

무슬림이란 복종하는 사람이란 뜻이고, 이슬람의 뜻은 평화롭게 되는 것, 신에게 귀의하는 것으로 평화와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샬람이라고도 하는데 히브리어의 샬롬과 같아 절대 원수 지간인 이슬람과 유대민족은 형제민족이라 하니 웃고픈 현상인가?

유대인과 기독교도들은 무함마드를 거부하고 성경에 관한 무함마드의 무지를 비웃어, 유대교에 근거를 둔 무함마드는 유대교에 대해 적대적으로 돌변하게 되었다.

이슬람은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약속은 이삭이 태어나기 전의 것으로, 이스마엘이 약속의 아들이고 아브라함의 합법적 상속자임을 내세운다. ‘이스마엘의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말한 대로 아랍민족이 예언자 무함마드를 배출한 위대한 민족이 되었다고 한다. 무함마드가 승천한 예루살렘 성전산의 황금 돔 사원은 원래 솔로몬 성전이 있는 곳이자 예수가 부활 승천한 곳으로 세 종교 모두의 성지이다.

아랍어 코란을 원칙적으로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고 한다. 번역은 곧 변질을 동반한다나. 불가피하게 번역된 것은 코란의 해설이란 뜻으로 타프시르라 한다.

내면의 성찰을 통한 참회로서의 투쟁인 큰 지하드, 민족과 종교에 대한 탄압과 억압에 저항하는 작은 지하드가 있는데 작금의 지하드란 본말이 전도된 것이리라.

무함마드에서 아부바쿠르, 우마르, 오스만 이후 알리로 게승되는 시아(맹주국 이란), 무아위아로 계승되는 수니(맹주국 사우디)로 오늘에 이르게 된다.

6세기 우마르 때부터 급성장한 이슬람은 유럽을 침공하나 정복지의 이교도에 대해 관용을 베푼다. 720년경 이베리아 반도 프랑크 왕국이 이슬람의 수중에 떨어졌다면 이후 유럽의 역사는 이슬람교가 주도하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세계역사에서 이슬람 문화는 고대와 중세의 다리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세 종교의 공통점은 유일신을 믿는 일신교라는 점.

다른 점은 유대교는 율법에 의한 구원, 기독교는 믿음에 의한 구원’, 이슬람교는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한다.

금요일은 이슬람, 토요일은 유대교, 일요일은 기독교의 안식일이다.

유대교에는 선교활동이 없고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반목과 갈등의 역사편으로 물론 대상은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이 고대로부터 박해를 받은 것은 종교적 마찰 때문만은 아니었다.

특히 중세 유럽에서부터  유대주의가 준동하게 된 요인은 교리상의 차이, 유대인만의 폐쇄적인 생활태도, 으뜸인 경제력이었다.

근 현대사의 유명인의 말을 빌리자면, <볼테르>: 유대인은 한마디로 약탈민족이다. <마크트웨인>: 유대인의 인생목표는 돈이다. 그리고 현대 유대인 박해의 일등 공신(?)인 히틀러….

독자로서 부끄러운 고백이다.

나치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근본이유는 우수한 게르만민족의 혈통보존에 유대인은 열성종자라 원천적으로 도태시켜야 하기에 대규모 학살을 감행한 것으로 알았다.

히틀러는 유럽의 主敵은 국제적인 유대인 집단으로, 국제적 금융자본주의와 국제적 사회주의가 유럽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았다. 1차 세계 대전 후 패전국으로 독일경제가 위축된 것과 반대로 독일 유대인들의 경제력은 더욱 강해져 점차 독일인들의 강한 반유대 정서가 표출된다. 히틀러는 이를 정치에 이용할 목적도 분명히 있었고, 또 러시아를 뒤흔든 이론가 레닌과 트로츠키가 유대인이었고 독일혁명 역시 유대인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에서 히틀러는 유대인은 곧 좌익이라는 등식으로 그가 주도하는 유대인 박해가 1933 1 30일 총리가 된지 1개월 만에 시작하여 다섯 단계의 과정으로 시작되었다. 단계마다 그 강도는 강화되었다. 1941년 소련침공의 목적도 소련 내 500만 명의 유대인을 수중에 넣어 유대-볼셰비키 지식계층을 박멸함이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과 러시아의 유대인 1100만 명 중 약 600만 명이 히틀러에 의해 학살되었다. 중세부터 시작된 유대인 박해는 홀로코스트(대학살)만큼 그 규모나 잔혹성이 두드러진 적은 없었다.

당시 폴란드의 한 랍비가 로마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한 서신을 보냈지만 교황청의 답변은 소름 끼친다. 이 세상에 무고한 유대인 피란 없다. 모든 유대인의 피는 죄악이다. 당신들은 죽어야 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 때문에 당신들은 이러한 형벌을 받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아랍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맥마흔 선언>, 역시 유대인들에게 독립국가를 세워주겠다는 <밸푸어 선언>으로 이중플레이를 행한다.  이 결과가 오늘 날 중동을 화약고로 만든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은 기원전 63년 망한 지 정확히 2011년 만에 기적적으로 나라를 되찾게 된다. 1948년 국가를 선포하고 인구 80 6천명으로 출범하였다.

이후 팔레스타인과 가자 지구, 아랍 등등 하면 쉽게 떠올리는 단어는 시위, 폭동, 전쟁이다. 피압박 민족이었던 이스라엘은 현재 세계평화를 깨트리는 악의 축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한다. 한 뿌리에서 태동한 세 종교라지만 특히 신교로서의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서로 용서하고 화해해야 마땅하다. 미래 후손을 위해서라도 평화공존의 관계를 정착시켜야 한다.

올 여름 들어 가장 덥다고 느껴지는 부산의 밤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전 지구적으로 폭염이라는데 자꾸 이런 기후가 지속된다면 예사스럽지 않다.

사족, 우리의 태극기부대(자금부족으로 조만간 소멸하겠지만)는 앞으로 성조기보다는 나치 문양 하켄크로이츠를 드는 게 온당하지 않을까? 빨갱이 잡는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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