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그림 - 나카노 쿄코 '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이상한 힘이 있는 것 같다. 내 생애 마지막 그림이라는 이 책 역시 제목에 이끌려 선택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이라고하면 왠지 좀 더 의미있고, 좀 더 특별한 것을 남겼을까? 하는 마음도 있고....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분들의 설명을 듣다보면 화가의 마지막 생은 정말 다양하다. 죽는 순간까지 당대 최고의 화가로 칭송받으며, 부와 명예 모두를 누리며 살다간 이도 있고, 찢어지게 가난 삶,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한채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이들도 많다.


이 책은 그런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들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간략하게 그들의 삶, 그들의 대표작들도 몇가지 소개가 되어 있었다. 아쉬웠던 점부터 밝힌다면, 다수의 화가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 화가당 상당히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으며, 그림이 크게 2페이지에 걸쳐서 들어갈 경우, 제본으로 인해 그림이 찝혀 있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그림을 주제로 한 책인만큼 좀 더 온전하게 그림이 들어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다수의 화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화가는 밀레였는데, 책의 후반부에 실려 있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그 화가에 대한 사전지식이 가장 풍부했기 때문이다. 밀레에 대해서는 책을 따로 읽은적도 있었고, 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기도 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한 화가당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었기에, 미리 사전 지식이 있는편이 좀 더 화가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마지막 그림을 감상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밀레의 경우, 노동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화가답게 이삭 줍기, 키질하는 사람 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당시에는 이런 농업을 하찮은 일, 비천한 일로 취급했지만, 밀레는 그런 노동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고 작품으로 남긴 화가.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마지막 그림은 야간의 새 사냥이었다. 이 새 사냥은 밤에 나무에 앉아 있는 들비둘기에 횃불을 비춰, 빛 때문에 놀라 당황하며 멤도는 비둘기를 몽둥이로 때려 숨통을 끓는 것을 말하며,그의 작품에는 이런 사냥꾼(?)과 숨통이 끊어진 비둘기를 줍는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었다.


이 책의 본문에는 그리고 이렇게 적혀 있다. 노동의 성스러움을 줄 곧 그려온 화가는 가축을 도축하는 것과는 다른 사냥의 한 측면도 그림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일까? 이 또한 농촌의 현실이다라고.... 사실 야간의 새 사냥이라는 작품의 설명만 들었을 때는 잔인한 장면이 떠올랐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들비둘기의 시체, 피, 들비둘기를 때리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의 험악한 표정... 등 그렇기에 매우 당황하기도 했는데, 막상 그 작품을 본다면 조금 생각이 달라진다.


잔인한 주제임에도 노랗게 빛나는 횃불... 그 노란 빛은 왠지 성스러운 빛과 같이 묘사되었으며, 사냥꾼들은 그 빛에 눈이 먼듯 달려들며, 비둘기를 줍는 이들은  필사적으로 빛에 손을 뻗는 듯 보인다. 마치... 구원의 빛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밀레는 마지막에 이런 주제로 그림을 그린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그 횃불이 이렇게 따스하게 느껴지는 걸까.... 


정말 책의 본문 내용처럼 이 또한 농촌의 현실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이 또한 사냥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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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무새 죽이기 - 하퍼리 '

 앵무새 죽이기, 유명한 작품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성경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1위 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1960년 출간 직후 미국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지금까지 40개 국어로 번역되어 4천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또한 현재까지도 미국에서는 매년 1백만 부 이상씩 팔리고 있는 스테디 베스트셀러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그냥 앵무새 죽이기, 제목이 참 특이하다. 앵무새라는게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동물이니까 ​무작정 타인의 말, 소문을 믿고 퍼트리는? 약간 그런 사람들을 경고하는 작품인가? 나름대로 제목만 보고 줄거리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를 상상하며 책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처음 시작은 어린아이들이 등장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카웃, 젬 오빠, 딜, 이렇게 3명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떠도는 래들리 가(家)에 대한 무성한 소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들은 래들리 가(家)를 무서워 한다. 마을사람들의 래들리 가문 사람들을 둘러싼 어두운 소문들은 아이들까지 퍼져있고, 아이들은 래들리 가의 근처에도 다가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저 아이 3명은 몰래 래들리 가의 집 주변에 다가 가기도 하고, 심지어 어른들 몰래 래들리 가문 사람을 흉내내는 연극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저 3명이 래들리 가를 무서워 하지 않는 건 또 아니다. 그렇게 처음은 부 래들리에 대한 편견과 소문, 아이들의 이야기로 천천히 진행되어서, 살짝은 지루 할 수도 있겠지만, 책의 중, 후반부터 이야기는 급격한 물쌀은 타고 내려간다.

강간과 인종차별 자칫 무겁고 한 없이 우울하게만 진행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따뜻하게 잘 풀어 내고 있다. 아마 스카웃과 젬오빠를 통해 어른과 아이의 시선의 차이, 인식의 변화 같은걸 함께 엿볼 수 있는 성장소설같은 느낌도 들어서 인듯하다.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을 고려해서 자세한 책의 내용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은 1960년도에 출판된 작품이다. 하지만 그 때와 과연 무엇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물질적으론 좀 더 풍요롭고, 편리한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앵무새 죽이기기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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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는 대화 습관 - 노구치 사토시​'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타인과의 대화가 점점 더 어렵다고 느껴진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아무리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어느 순간 크게 다가올 수도 있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이 말은 빼고, 이 말은 피하고, 이 말은 숨기고' 너무 많은 말을 가려서 하게 되었고, 자연히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려워졌다.

하지만 타인과 공존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대화하는 것을 언제까지 피하고, 어려워 할 수는 없다. 거기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 처럼 타인과의 관계에서 대화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타인과 올바르게 대화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올바른 대화 습관의 방향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데, 만약 한 번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급속도로 증가시킬 수 있는 획기적이고, 기발한 방법을 기대한다면 아마 실망할 것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사소하게 놓칠 수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음에도 잘 지키지 않는 것들을 한 번 더 짚어 준다는 느낌이다.

한 예로, 타인과의 대화에서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아마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잘 듣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말을 잘 듣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잘 듣는 사람은 침묵을 두려워 하지도 않고, 낯선 주제로 대화하는 것도 어려워 하지 않는다고 한다. 거기다 잘 듣는 것 만으로도 타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정말 당신은 상대방의 말을 진정으로 잘 들어 주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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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셀로나 섀도우 - 마르크 파스토르 '

  

 연쇄 살인마 엔리케타 마르티를 소재로 한 소설로 소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0세기 초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둡고 암울한 배경, 거기에 전지전능한 시점을 가진 '나'라는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소설은 시작된다.

처음에는 '엔리케타 마르티'를 주인공으로 한 범죄 소설인 듯 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 수록 의구심이 커진다. 미지의 존재 '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애꾸눈과 블랙마우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시체를 구해 엔리케타에게 넘긴다. 블랙마우스는 엔리케타를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진 동시에 공포를 자아낸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표현처럼, 그는 그녀를 두려워하지만 계속 그녀 주변을 멤돌며 그녀의 말에 복종하는 인물이다.

소설 초반에 애꾸눈은 죽는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후안과 모이세스라는 경찰이 블랙마우스를 찾아온다. 모이세스는 완벽한 선도, 완벽한 악도 아닌 인물이다. 어떤 면에서는 아이들을 잡아가는 괴물을추적하는 정의로운 경찰​같지만, 그는 단지 그 사건에 흥미가 있을 뿐이다. 유산으로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자신의 아내 때문에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런 아내를 두고, 창녀들과 어울린다. 또 그는 착한 사람이라는 것 자체를 믿지 않는다. 오직 인간은 자신과 같은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 이 두 가지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는 일반적인 범죄 소설에서 살인귀를 쫓는 정의로운 경찰의 모습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소설은 크게 네 사람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간다. '나', '모이세스'​, '엔리케타', '블랙마우스' 네 사람이고 말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엔리케타의 대부분 이야기는 블랙마우스를 통해 진행된다. 그가 엔리케타의 곁에 멤돌면서 말이다.

모이세스는 후안과 아이들을 잡아먹는 괴물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더 이상 손 떼라는 윗선의 말을 무시하다 정직을 당하기도 한다. 엔리케타는 몇 번이고 잡힌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녀를 봐주는 배경들로 인해 금새 출소하곤 한다. 그녀는 부자들에게 아이들을 제공하기도 하고, 특수한 약을 만들어 제공하기도 한다. 중간에 그녀가 납치한 아이의 눈알을 파내 먹는 장면이 잠깐 등장하는데, ​한 번의 짧은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소름이 돋았다.

모이세스는 그녀를 추적하다, 역으로 블랙마우스에게 머리를 맞고 납치된다. 후안은 엔리케타의 아파트를 찾아내, 엔리케타에게 모이세스가 어디있냐고 소리치지만, 그녀는 그저 웃을 뿐이다. 그 시각 모이세스는 자신을 테레시나라고 말하는 '나'와 마주한다. 하지만 '나'는 테레시나가 아니다. '나'는 언제나 모이세스의 곁에 머물렀던 존재, 모이세스가 숨을 거둘 때 함께하는 존재이다.

'나'는 엔리케타를 잡아야한다고 외치는 모이세스에게 말한다. '그녀는 교도소에 갈 것이며, 많은 죄악이 들어날 것이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도 있을 거라고 말이다. 또한 마지막 순간 사랑했던 사람들 가슴 속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산다는 것은 항복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다. 떠날 때도 고개를 꼿꼿이 세우는 거다.' 라고 말이다.

이렇게 모이세스의 죽음과 함께 소설을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은 모이세스라는 인물이 지니는 특징처럼 전형적인 범죄소설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의 띄고 있다.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전, 사실적인 살인 묘사, 기묘한 알리바이 등을 기대한다면 아마 실망할 것이다. 소설은 잔잔하지만 음침하게, 그리고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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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소풍 - 목혜원 '

 

 책을 다 읽고 나서 바로 드는 생각은, 잔잔하고 고요한 영화를 본 느낌 이였다.​ 22살의 은우는 지하철 2호선에서 사회 복무 요원으로 근무하며, 한 여자에게 반한다. 그 여자의 이름은 미란, 은우는 1년간 그녀를 지켜만 보다가, 마지막 근무 날에 그녀에게 처음 말을 건다. 하지만 그녀는 곧 결혼할 여자였고, 옛 사랑 현채를 보내지 못한 여자였다.

 

그럼에도 은우는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녀 집 가로등 아래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하고, 문 좀 열어 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그런 은우와 미란은 현채와의 추억이 잠긴 곳을 찾아간다. 현채와는 결혼도 생각했지만 현채 부모의 반대로 헤어지게 된다. 그 후 현채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는데, 미란은 현채의 결혼 후에도 만남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런 현채에게 미란은 은우를 결혼할 사람이라며 소개하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현채와 헤어진 후 미란은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 하지만 그게 현채인지 은우인지는 모른다. 은우와 간간히 만나다 결혼식이 다가오고, 은우는 미란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신부대기실에 온 은우는 미란에게 말한다. 이제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러 갈 것이라고, 어머니가 위독하다고 말한다. 은우의 엄마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나서 가정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다.

미란에게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말만 남기고 은우는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은우는 미란을 적극적으로 잡지 않는다. 미란 또한 결혼할 남자를 열렬히 사랑하지는 않지만, 지금 자신의 처지에서 만날 수 있는 최선의 남자라고 생각하고, 이제와서 결혼을 그만 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

4년 후, 파리에서 은우가 돌아온다. 파리에서 은우는 보영이라는 여자와 만난다. 보영은 미란의 직장 후배로, 미란이 은우에게 진짜 이름대신 가르쳐 준 가짜 이름이었다. 미란의 직장에서 보영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찾다 만난 연이 파리에서도 닿았는지 약혼도 할 뻔 했지만, 은우는 약혼을 하지 않는다.

보영에게서 미란의 이혼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은우는 미란을 찾아가지만, 미란은 다시 전남편과 재결합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심지어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는듯 했다.

은우와 헤어지며 지하철 계단에서 눈물을 흘리던 미란은 망설이다 뒤를 돌아보는데, 은우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두 사람은 껴앉는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런 말이 있다. 눈발이 점차 거세졌으나, 푸근하였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은우와 미란의 태도는 이해할 수가 없다. 결혼할 남자인 동준을 두고, 현태에게 미련을 가졌었고, 은우와 만났던 미란, 결혼을 앞 둔 미란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은우.

그럼에도 은우는 미란을 적극적으로 붙잡지 않는다. 아니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붙잡지 못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앞 둔 여자이고, 정말 드라마처럼 결혼식장에서 미란의 손을 잡고 뛰쳐나온 다면, 그 후는 어떻게 되는 걸까? 드라마라면 그럼에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핑크빛 미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두사람은 그러한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사실 답답했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하려는 미란도, 미란을 사랑함에도 너무나 담담해 보이는 은우도. 그런데 막상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과연 무슨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결혼 날짜를 잡고 청첩장까지 다 온 상태에서, 결혼을 포기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하는 걸 알지만 거기서 무슨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4년만에 다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지만, 이미 그녀는 전남편과 재결합을 앞두고, 아이까지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는 너무나 당연한다는 듯 오직 사랑 하나만 바라보고 행동한다. 결코 쉽지않은 그 행동들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당연시 여기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걸 답답하게 생각한 것이다. 담담하게, 조용하게 그렇지만 자꾸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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