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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죽인 남자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줄리안 시먼스 지음, 정향 옮김 / 엘릭시르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연극 [라이어]를 아시나요?
주진모, 공형진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영국 극작가 레이 쿠니(Ray Cooney)의 코미디입니다.
택시 운전사인 주인공이 두 명의 아내를 두고 철저한 이중생활을 하다가 사소한 사고 하나로 위기에 몰리고,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으며 점점 꼬여가는 상황이 요절복통 웃음을 자아내던 작품이었죠.
아직도 대학로에서 롱런하고 있는 스테디셀러이기도 합니다.
줄리언 시먼스의 <자신을 죽인 남자>도 출발점은 비슷합니다.
주인공 아서 브라운존은 아내 클레어에게 완전히 잡혀 사는 소심하고 유약한 남자입니다.
처가가 부유한 탓에 늘 상대적 박탈감과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런 그가 택한 도피처는 대담하고 단호한 성격의 이즌비 멜런 소령으로 변신하는 것.
대머리인 브라운존은 가발을 쓰고 결혼중개업체 대표로 탈바꿈해, 조앤이라는 여성과 결혼까지 하고 스스로를 첩보원이라 속이며 살아갑니다.
금·토·일·월은 아서 브라운존으로, 화·수·목은 이즌비 멜런으로 철저한 요일별 이중생활을 이어갑니다.
여기까지는 영락없이 [라이어]의 설정과 닮아있죠.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갑니다.
이즌비 멜런 앞에 미모의 여성 파트리샤 파커가 나타나면서 그는 그녀와 바람을 피우게 되고, 동시에 아서 쪽에서는 투자 사기를 당하고 클레어의 돈에 함부로 손을 댄 사실까지 발각될 위기에 처합니다.
두 개의 자아, 두 개의 삶이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죠.
궁지에 몰린 아서가 선택한 해법은 놀랍습니다.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멜런과, 아내인 클레어를 둘 다 '죽이기'로 한 것입니다.
이 소심한 남자의 위기탈출극은 과연 어떤 결말에 다다를까요.
[라이어]가 순도 100%의 웃음을 위해 달려가는 코미디라면, <자신을 죽인 남자>는 그 웃음 위에 블랙 코미디와 추리의 서늘함을 겹쳐놓은 작품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발표 시기인데, 레이 쿠니가 1983년에 [라이어]를 쓴 반면 줄리언 시먼스는 이미 1967년에 이 소설을 내놓았습니다.
무려 16년이나 앞선 셈이죠.
시먼스는 미스터리 비평가로 더 유명하지만, 미스터리 문학사에 또렷한 발자취를 남긴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소개된 <자신을 죽인 남자>는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되는 그의 소설이라고 하니,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합니다.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은 자신의 정체성조차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데 있습니다.
웃음기 어린 설정 속에서도 인물의 내면은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고, 독자는 그 균열을 따라가며 심리추리소설 특유의 긴장을 즐기게 됩니다.
반세기도 더 지난 작품인데 전혀 낡은 느낌이 없다는 것도 놀라운 점입니다.
블랙 코미디와 추리가 절묘하게 맞물려, 읽는 재미와 서늘한 뒷맛을 동시에 남기는 소설이었습니다.
올여름, 조금 색다른 결의 추리소설을 찾고 계신다면 줄리언 시먼스의 <자신을 죽인 남자>를 추천합니다.
* 엘릭시르 출판사의 '금요 미스터리' 뉴스레터를 통해 서평단으로 선정되었는데요, 매주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식을 접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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