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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사 -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최윤석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흔히 칭찬은 세 사람에게 소극적으로 하지만, 비난은 서른세 사람을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한다고 합니다.
특히 자신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거나 상처를 입었을 때는 비난의 강도도 더욱 커지기 마련이죠.
요즘 맛집을 둘러싼 평가나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덤의 모습을 봐도 이런 성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렬히 좋아했던 만큼 실망도 크고, 믿었던 만큼 분노도 깊어지는 것이겠죠.
최윤석 작가의 <파우사>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를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보험조사관 천명관은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싱글대디입니다.
그의 유일한 낙은 아들과 함께 축구선수 최강민을 응원하며 경기를 보는 것이죠.
어느 날 아들과 축구장을 찾았다가 날아온 공에 아들이 다치게 되고, 이를 계기로 명관은 최강민의 집에 초대받습니다.
이후 강민의 개인적인 부탁을 해결해 주면서 조금씩 그의 신임을 얻고, 어느새 오른팔과 같은 존재로 자리 잡게 됩니다.
젊은 시절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던 명관은 못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소했던 부탁도 점점 은밀해지고, 결국 해서는 안 될 일까지 대신 처리하게 되죠.
아들의 수술비가 필요했던 명관은 잘못된 일임을 알면서도 강민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필요할 때는 누구보다 가까이 두었던 강민도 명관의 쓸모가 다하자 조금씩 그를 밀어내기 시작합니다.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다고 믿었던 명관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복수를 준비합니다.
여기에 남편의 비밀을 알아버린 소미까지 가세하면서 이들의 관계는 배신과 욕망, 복수가 얽힌 거미줄처럼 복잡해집니다.

제목인 ‘파우사(Pausa)’는 스페인어로 멈춤 또는 잠깐의 지연을 뜻합니다.
축구에서는 공을 잠시 멈추고 경기의 템포를 조절하면서 상대 수비를 끌어들이는 전술적 움직임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는 명관의 복수 방식과도 닮았습니다.
감정에 휩쓸려 곧바로 달려들기보다 천천히 덫을 놓고 강민이 스스로 걸어 들어오기를 기다립니다.
상대가 빠져나갈 수 없을 때까지 숨을 죽인 뒤 마지막 순간에 완전히 옭아매는 것이죠.
제목의 의미를 알고 나니 명관이 펼치는 복수의 과정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네요.
무엇보다 복수가 성공하는 순간의 통쾌함이 상당합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단순한 사이다 복수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강민을 무너뜨린 명관이 어느새 그와 비슷한 자리에 서게 되는 결말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욕망의 모습을 보여주며 서늘한 여운을 남깁니다.
어쩌면 이 복수극의 최후 승자는 명관이 아니라 소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
<파우사>는 빠른 전개와 탄탄한 이야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축구 전술을 복수의 방식과 연결한 설정도 인상적이었고, 인물들이 서로를 이용하고 배신하는 과정도 촘촘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 속도감 있는 이야기와 통쾌한 복수극이 생각난다면 <파우사>로 더위를 날려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