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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된 김에 교토 - 조각난 자존감을 모으는 시간
노푸름 지음 / 상록의서가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자발적인 퇴사가 아니라 갑작스러운 해고로 회사를 떠나게 된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씁쓸할까요.
저도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타의로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데요, 하필 그때가 한겨울이라 마음까지 더 시렸던 기억이 나네요.
다행히 결혼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평소 해보고 싶었던 취미를 시작하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도 하죠.
노푸름 작가 역시 예상하지 못한 해고 통보를 받고 교토로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은 단순히 새로운 풍경을 보고 즐기는 시간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 머무는 동안 평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볼 수 있으니까요.
노푸름 작가의 <해고된 김에 교토>는 갑작스러운 해고로 상처받은 마음을 교토라는 도시에서 천천히 회복해 가는 과정을 담은 여행 에세이입니다.
교토는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도시입니다.
화려하고 분주한 일본의 대도시들과 달리 고즈넉한 풍경과 전통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곳이죠.
오래된 사찰과 골목길, 작은 가게들이 어우러진 교토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저자는 교토의 유명한 관광지도 찾아가지만 그보다는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은 초콜릿 가게나 카페, 이자카야 같은 공간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렇게 골목을 걷고 작은 가게에 들러 낯선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습니다.
해고를 당한 뒤 느꼈던 감정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들도 교토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어쩌면 정신없이 돌아가는 대도시였다면 미처 돌아보지 못했을 생각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느긋하게 골목을 걷고 잠시 멈춰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교토였기에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저자가 왜 하필 교토를 선택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토에서 돌아온다고 새로운 직장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자 역시 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자존감을 조금씩 되찾아 갑니다.
갑작스러운 해고를 당한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대신, 세상이 자신에게 글을 쓸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같은 상황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어쩌면 이것이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요.
당장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 말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갑자기 길이 막히기도 하고, 자신이 걸어온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죠.
그럴 때는 잠시 쉬어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그 시간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테니까요.
<해고된 김에 교토>는 인생의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천천히 건네는 위로 같은 책입니다.
저자의 교토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잠시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S. 그런데 저는 왜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기 전까지 노푸름 작가가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아무래도 표지 사진 때문이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