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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이의 축복 코리아둘레길 : 입문편 - 민달팽이 리듬으로 걷다
이화규 지음, 이세원 사진 / 나무발전소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버킷리스트 1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기.'
이런 문장을 한 번쯤 다이어리에 적어보신적 있으시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업무와 비용, 애들 키우다보니 시간과 체력까지 걸림돌 투성이입니다.
그러다 문득, “아니, 우리나라에도 멋진 길들이 있는데 왜 굳이 스페인까지 가야 하지?” 싶었습니다.
그 순간 만난 책이 바로 이화규 작가의 <걷는 이의 축복 코리아 둘레길>이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 땅, 바로 발밑의 길들을 걷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냥 걷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만난 풀과 나무, 사람과 음악, 사색이 담긴 기록이죠.
‘걸었다’가 아니라 ‘함께 걸었다’는 느낌.
그게 이 책의 힘입니다.
보통의 여행 책이 풍경을 보여준다면, 이 책은 그 풍경에 말을 겁니다.
예컨대, 경기둘레길을 걷다가 마주한 민들레 한 송이가 ‘봄날의 편지’가 되고, DMZ 평화의 길에서 날아가는 새 한 마리가 ‘희망의 화살표’가 됩니다.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따뜻하고, 때로는 철학적입니다.
무엇보다 “이건 그냥 산길입니다” 하고 넘길 만한 장소에서, ‘생명’과 ‘기억’을 발견해내는 관찰력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은 ‘듣는 책’이기도 합니다.
각 장마다 작가가 추천하는 음악을 QR코드로 들을 수 있게 했는데요, 마치 산책길에서 누군가 옆에서 “이 풍경엔 이 노래 어울리지 않아요?”라고 말해주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핑크 플로이드부터 피터, 폴 앤 메리와 냇 킹 콜을 거쳐 송창식과 신해철까지 작가의 다양한 선곡은 글을 읽는 재미와 함께 듣는 재미도 더해줍니다.
이건 그냥 책이 아니라 사운드트랙이 있는 여정입니다.
한 곡 들으며 페이지를 넘기면, 글과 음악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는 경험을 하게 해주네요.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외국의 유명한 길들이 떠오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미국의 존 뮤어 트레일(JMT),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네팔의 ABC 트레킹과 안나푸르나 서킷, 페루의 잉카 트레일 등…
이 길들은 단지 ‘풍경’이 아니라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쌓여온 사람들의 발자취가 서사로 이어진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 둘레길은 아직 그런 역사와 전통이 부족한 느낌입니다.
풍경은 훌륭한데, 그 풍경을 해설해줄 이야기가 아직은 비어 있는 거죠.
작가도 그 아쉬움을 조심스럽게 언급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길들이 그 서사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오래된 길은 없습니다.
누군가 걸어야, 그리고 이야기해야 길이 됩니다.
이번 책에서는 경기둘레길과 DMZ 평화의 길이라는 두 개의 독특한 길을 따라갑니다.
하나는 수도권의 외곽을 돌며 도심과 자연을 오가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분단이라는 현실을 걷는 길입니다.
각각의 길은 우리 삶과 역사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독자로서 아쉬움도 남습니다.
해파랑길, 남파랑길, 서해랑길… 이화규 작가 특유의 시선으로 그런 길들도 만나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이 책은 ‘완성된 안내서’라기보단 ‘앞으로 계속될 여정의 1권’처럼 느껴집니다.
<걷는 이의 축복 코리아 둘레길>은 단지 한국의 둘레길을 소개하는 책이 아닙니다.
걷는 이가 길 위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음악을 들으며 지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길을 걷고, 그걸 기록합니다.
또 누군가는 그 글을 읽고, 이어 걷습니다.
그렇게 길엔 서사가 생깁니다.
어쩌면 당신이 걷는 지금 이 순간이, 다음 세대의 ‘순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걷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니' 코리아 둘레길을 만나는게 축복이고, 걷는 것도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