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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 ㅣ 월급사실주의
강보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출근하셨나요.
재미없는 직장생활을 견디고, 어쩌다 보니 야근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온 당신.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일하면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바라는 건 정말 욕심일까.
문학동네에서 나온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은 바로 그 질문 앞에 서 있는 책입니다.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라니요, 제목부터 묘하게 서글프네요.
일은 원래 재미없는 거라고, 돈 벌려면 참아야 한다고 말하는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제목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말이 조금 억울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는데, 그곳에서 아무런 재미도 의미도 찾지 못한다면 삶은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할까요.
이 책은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네 번째 단편집입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은 동시대 한국 사회의 먹고사는 문제를 문학적으로 기록해 온 작가들의 모임인데요. 요즘 말로 하면 ‘먹사니즘’의 세계를 소설로 풀어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통령도 강조할 만큼 먹고사는 문제는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도 결국 그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직업이 있고 월급이 있고 현장이 있고 사람 사이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과 신뢰, 책임과 체면, 그리고 버티는 마음의 문제까지 이어집니다.
책에는 다양한 직업군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가 담겨 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웨딩 헬퍼, 앞선 전임자들이 남긴 문제를 수습해야 하는 사람, 방송 현장에서 사고를 마주한 사람까지.
소설 속 이야기인데도 자꾸 현실의 누군가가 떠오릅니다.
너무 소설처럼 안타까운 이야기들인데, 동시에 너무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런 일을 겪지 않은 제가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분명 이런 상황을 실제로 겪고 있는 분들이 있겠죠.
그 생각을 하면 책장이 조금 무겁게 넘어갑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이 모두 재미있었지만 그 중 유독 시선을 끌었던건 권석 작가의 <방송 사고 경위서>였습니다.
저도 방송국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어서 방송사고라는 단어만 들어도 괜히 심장이 먼저 반응합니다.
방송은 늘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되어야 하고, 작은 실수 하나가 큰 사고처럼 번질 수 있는 세계입니다.
그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조금은 알고 있기에 이 작품이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방송사고의 원인을 단순히 밴드 멤버의 일탈에서 찾지 않습니다.
오히려 출연진과의 약속을 깨버린 PD의 태도에서 사고의 본질을 바라봅니다.
결국 문제는 시스템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과 신뢰이기도 한 것이죠.
일터에서 가장 쉽게 무너지는 것도, 가장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것도 결국 신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결혼식 당일 웨딩 헬퍼의 고군분투를 다룬 <이모라는 직업>, 전임자들의 실수를 수습하며 퇴직금을 돌려받기 위해 애쓰는 <퇴직금 돌려받기> 등 여러 작품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 사회 일터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미처 몰랐던 노동의 풍경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책이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은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과장해서 위로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일터의 장면들을 차분히 보여줍니다.
그 안에서 웃음보다 씁쓸함이 먼저 올 때도 있지만, 이상하게 다 읽고 나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먹고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재미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일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은 날, 이 책은 조용히 말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당신만 힘든 건 아니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