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들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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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이동원 작가님의 작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역시 선과 악의 경계입니다.

종교적인 주제, 특히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님이지요.

(물론 작가님의 개인적인 종교는 알 수 없지만, 작품의 성격을 보면 자연스레 그런 추측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천국에서 온 탐정>과 <찬란한 선택>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번 <얼굴들> 역시 큰 기대를 안고 읽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작품은 <적의 연작 살인사건>의 개정판이더군요.

제목부터 인상적입니다. ‘적’에서 ‘얼굴들’로.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단번에 알려주는 변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소설은 아동 연쇄살인마 한바로의 사형 집행으로 시작합니다.

시작부터 결코 가볍지 않은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끔찍한 범죄자의 끝은 의외로 한 아이로부터 비롯됩니다.

한바로를 결정적으로 검거하게 만든 여자아이, 그리고 시간이 흘러 경찰청 홍보팀 소속이 된 오광심.

오광심은 이 소설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그는 경찰로서 범죄자를 잡는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사이코패스와 경찰 사이 어딘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합니다.

정의를 집행하는 얼굴과, 냉정하게 사람을 판단하는 얼굴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모습은 이 소설의 긴장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축입니다.

이야기는 오광심이 ‘얼굴 없는 작가’로 불리는 베스트셀러 작가 주해환을 만나면서 또 한 번 방향을 틉니다.

최고급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살며 철저히 자신을 감춘 채 살아가는 인물, 주해환.

그는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지만, 누구보다 강력한 이야기의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이 두 사람이 비밀리에 맡게 되는 사건이 바로 스타 강사 고보경의 딸, 고혜경의 실종 사건입니다.

이미 대중의 시선에 익숙한 인물의 가족사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진실보다 체면과 이미지가 더 중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누가 어떤 얼굴로 세상에 비칠 것인가, 그 선택이 이야기 곳곳에 긴장감을 더합니다.





겉으로 보면 <얼굴들>의 중심 사건은 분명 고혜경의 실종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소설이 진짜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실종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싼 어른들의 민낯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필요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는 사람들처럼 말이죠.

이 과정은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욱 눈을 떼기 어렵습니다.

읽는 내내 '여기서 멈추겠지'라고 생각하면, 작가님은 한 겹 더 가면을 벗겨 보여줍니다.

개정판의 제목이 왜 <얼굴들>이 되었는지,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 소설에는 정말 다양한 얼굴이 등장합니다.

정의로운 얼굴, 피해자의 얼굴, 성공한 사람의 얼굴, 그리고 숨기고 싶은 얼굴까지.

흥미로운 점은, 이 얼굴들이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선과 악의 위치가 바뀌고, 누군가는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되며, 누군가는 정의를 말하다가 자기 합리화의 대명사가 됩니다.

결국 이 소설은 조용히 독자에게 묻는 듯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요?”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마음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이 특별히 괴물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뉴스에서, 일상에서, 그리고 어쩌면 제 안에서도 본 적 있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얼굴들>은 단순히 범인을 찾는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쉽게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읽는 동안은 긴장감 있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고, 다 읽고 나서는 조용히 자신의 얼굴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저는 과연 어떤 얼굴로 살아왔는지,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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