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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패커 -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들려주는 제임스 패커의 삶과 사상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우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나 <우주의 의미를 찾아서>를 읽고 그의 넓은 과학적 식견과 신학적 통찰에 감탄한적이 있었습니다.
원래 화학을 전공했다가 신학으로 진로를 튼 분답게, 맥그래스는 과학의 엄밀함과 신학의 사유 깊이를 자연스럽게 오가죠.
최근에 <신학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데, 읽기 쉬운 문체와 신학에 대한 깊은 이해도 할 수 있어서 공부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그런 저자가 제임스 패커라는 거장을 다시 조명하는 평전을 펴냈다니, 사실 읽을지 말지 고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맥그래스가 쓴 전기’라는 말 자체가 이미 장르 보증수표니까요.
기독교 고전 가운데서도 여전히 널리 사랑받는 책으로 꼽히는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선교단체 시절 ‘필독서’ 목록의 단골이었지만, 정작 저는 아직도 읽지 못했네요.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더 궁금했습니다.
“이 유명한 책을 쓴 사람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그의 신학적 기반은 무엇이었을까?”
맥그래스는 이미 C.S. 루이스와 패커의 전기를 쓴 경험이 있기에, 이번 책은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새롭게 정리한 ‘재조명’에 가깝습니다.
단순히 연대기적 기록이 아니라, 패커라는 인물의 사유 방식과 신학의 핵심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고 있어 처음 패커를 접하는 독자에게도 부담이 없을 것 같습니다.
책의 구성은 그의 삶의 여정을 따라 시간순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부분과 그 사이사이에 배치된 신학적 해설로 교차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교차 구조가 참 좋았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래서 그의 신학은 어떤 특징이었지?” 하고 궁금해질 타이밍이 있는데, 바로 그 지점에서 적절한 설명이 들어와 독자를 ‘패커의 사유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끕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C.S. 루이스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존 오웬을 만나 깊은 신학 세계로 들어가며, 성공회 사제와 교수로서 시대와 교회를 향한 목소리를 내고, 훗날 캐나다 밴쿠버로 터전을 옮겨 노년을 살아가는 과정까지를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영적 여정이 영화처럼 펼쳐집니다.
특히 마틴 로이드 존스와의 협력과 결별이야기는 거장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엿보는 듯해 괜히 혼자만 비밀을 들은 듯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부분은 패커가 바라본 ‘보수주의’와 ‘전통’에 대한 관점이었습니다.
그는 전통을 신앙과 교회를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으로 보았지만, 그 기둥이 건물 전체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전통은 권위가 아니라 지원이어야 하며, 무비판적 수용이 아니라 평가의 대상이라는 것이죠.
이 말이 참 날카롭고도 따뜻하게 들렸습니다.
패커의 보수성은 과거를 붙잡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무엇이 유익한지를 묻는 진지한 태도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통을 존중하되, 그 전통이 지금도 생명을 주는가?"
이 질문은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유효합니다.
맥그래스의 <제임스 패커>를 덮으며 느낀 건,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이 곧 그의 신학이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패커의 저술이 왜 지금도 영향력을 가지는지, 그의 문장 뒤에 어떤 고민과 경험이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 분명히 보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읽을 때가 된 것 같네요.
패커의 삶을 알고 나니, 그의 문장을 대하는 마음 또한 새로워질 테니까요.
패커의 삶과 그의 사상을 알고 싶으시다면 이 책 꼭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