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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이번엔 또 어디까지 상상했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개미>에서 시작된 그의 탐험은 뇌, 신, 인류의 기원, 그리고 우주로 뻗어 나갔습니다.
이제는 인간과 동물이 결합한 신인류의 등장이라니, ‘베르베르 월드’는 여전히 무궁무진하네요.
<키메라의 땅>은 지금으로부터 딱 5년 뒤를 무대로 삼습니다.
가까운 미래라는 점에서 더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할까?’라는 오싹한 질문을 던집니다.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동시에, 몰래 기대도 하게 만드는 설정이지요.
주인공 알리스 카메러는 진화 생물학 교수입니다.
그녀는 ‘변신 프로젝트’라는 다소 섬뜩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인간과 박쥐를 합친 에어리얼(Aerial)
인간과 두더쥐가 합체한 디거(Digger)
그리고 인간과 돌고래의 혼종 노틱(Nautic).
이름만 들어도 각자 능력이 짐작되지 않으신가요?
문제는 세상은 이런 실험을 곱게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특종 기자 디에고의 습격으로 연구는 중단되고, 알리스는 비밀리에 우주에서 실험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지구는 그 사이 핵전쟁으로 멸망해버립니다.
그리하여 우주에서 태어난 세 혼종과 알리스는 멸망한 지구에 내려와 새로운 문명을 일구기 시작합니다.
1권과 2권에 걸쳐 무려 50여 년의 역사가 펼쳐지는데,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마치 문명의 탄생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된 기분을 맛봅니다.

베르베르 작품의 세계관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될 거 같네요.
[어김없이 등장하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과 에드몽 웰스]
이번 작품에서도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중간중간 백과사전은 독자의 머리를 툭툭 치며 중요한 개념을 설명해주고, 웰스는 후손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팬이라면 반가운 장치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비슷비슷한 구성이라 식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일종의 ‘베르베르의 시그니처’라고 봐야겠지요.
이 소설의 핵심은 사실 유전자 변형이나 생명윤리에 관한 문제보다 더 근본적입니다.
바로 인간의 본질, 인간다움입니다.
멸망한 지구에 새로운 혼종 인류가 나타나지만, 그들 역시 갈등을 겪고 전쟁을 벌입니다.
‘어머니’ 알리스를 중심으로 인간(사피엔스)과 협력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집단도 있었지만, 다른 쪽에서는 상대를 지배하고 노예화하려는 욕망이 끊임없이 솟아납니다.
결국 혼종들이 벌이는 모습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환경 파괴, 종교 갈등, 전쟁… 사피엔스가 넘어지며 남겨 놓은 숙제를 신인류 역시 다시 껴안게 된 셈이지요.

<키메라의 땅>은 단순히 새로운 문명을 그린 공상과학 소설이라기 보다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문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입니다.
인류가 사라지고 새로운 인류가 나타나더라도, 과연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아니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까요?
읽다 보면 “유전자 조작이 문제다, 혼종이 문제다”라는 말보다 “결국 인간이 문제다”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신인류가 아니라 인간성의 진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지요.
베르베르의 소설은 늘 그렇듯 상상력을 자극하고, 동시에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키메라의 땅> 역시 그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다 읽고 나면 묘한 씁쓸함을 남깁니다.
인류의 미래가 궁금하신가요?
아니면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보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이 책, 꽤 흥미로운 여행이 되어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