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배경은 근미래로 임신중 자폐로 판단된 경우 치료가 가능한 시대입니다.
루는 치료를 받지 못하고 태어난 자폐인의 마지막 세대죠.
루를 비롯한 자폐인들은 패턴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기에 회사에서 특별한 업무에 배치되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상황이니만큼 전용 주차장과 전용 체육관 등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데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상사인 크렌쇼씨는 이들에게 '정상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이 수술을 받을경우 '정상인'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정상인'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인데요, 이 선택의 기로앞에서 루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저는 루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할 때 목사님과 나눴던 질문들이 무척이나 인상깊었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왔던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던 남자의 이야기.
(책에는 실로암으로 나오는데 작가가 잘못 기재한 듯 합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6)"
루는 이 질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나는 낫고자 하는가? 무엇을 고치고 싶은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금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다고 하셨는데, 장애를 하나님이 부여하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냥 지금처럼 가만히 연못가에서 기다리는 것이 맞고, 바뀌어야 한다면 장애를 포함한 모든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왔다고 믿지 않는 셈이 되니까요.
나는 누구이며, 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루를 보며 '정상인'들 보다 더 깊은 사고를 하는 모습에 저도 이 고민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