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이 지나 만난 첫사랑.
첫사랑과 40년 만에 만나게 된 장소가 미국, 자연사박물관이다.
그를 만나 어떤 말로 시작해야할지 미호는 머리가 복잡했는데
그는 그녀를 만나 가이드처럼 설명을 해댄다.
오늘 만나고 헤어지면 다시 볼지 불투명한 판국에
하루 스케줄을 꽉 채워오질않나
많은 걸 설명하려고 하려고하질않나...
그는 왜 이러는걸까?
책을 읽고 있는 나도 이해불가

하지만 그를 이해하기엔 40년이라는 세월이 가로막고 있었고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어릴적 좋았던 감정은 남아있지만 서로가 어떠했는지는 어렴풋한 것만 기억하고 있는 그들.
대화를 통해 서로 기억이 다름을 깨닫고
나는 조금 허망했다.
돌아보면 시간은 언제나 두껍게 얼어버린 빙하 같았다.
좀처럼 쪼개지지 않아 틈을 낼 수 없었으나
돌아보면 한 세기처럼 거대한 단위로 훌쩍 흘러갔다.
(198페이지)
그렇다.
기억이란 것이 그렇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싶은대로
자기멋대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나에겐 중요했던 일들이
상대방에겐 기억조차 못하는 것으로.....

피아노 한 음마다 별 하나가 떠서 그녀의 가슴으로 와서 박히는 듯했었다. 빛나고 아팠다.
(226페이지)
이야기를 이어가며 과거의 그에 대해 알아갔고
현재의 그에 대해서도 알게 되면서
궁금했던 일들이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이
조금씩 맞아들어감을 깨닫는 미호.
둘은 어찌될까요?

독재정권에 맞서다 고문때문에 고통 속에 죽어가던 아버지를 외면했다는 생각에
미호는 엄마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문득 그녀는 자신도 엄마를 닮았다는 걸 깨닫는다.
마음이 아픈 그녀를 단번에 알아채는 엄마.
역시 엄마는 엄마네....
피하지마, 피하지만 않으면 돼.
우린 마치 서핑을 하는 것처럼 그 파도를 넘어
더 먼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거야.
다만 그 사이에 날이 가고 밤이 오고 침묵이 있고 수다가 있고 그런거야.
젊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거 깨닫지 못해
하지만 이제 너도 오십이 훨씬 넘었고 이제는 이해라 수 있을 거야.
너무 많이는 아파하지마, 그러면 상하고 늙어 살도 찐단다.
(250페이지)
많이도 미워하고 많이도 원망했었다.
그러나 이만큼 살고 죽음이 더는 두렵지 않은 나이가 되고 보니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날씨가 춥죠? 하고 인사하고.....
살아보니 이 두마디 외에 뭐가 더 필요할까 싶다.
살아보니 이게 다인 것 같아, 미호야
(251페이지)

이책을 다 읽고나니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관해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20대에 읽었으면 첫사랑 이야기만 눈에 들어왔을 텐데
나이가 들어가니 나도 보는 눈이 달라지는 듯.
그런데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있는데
미워하는 사람에게 날씨가 춥죠?라고 말 못하겠다.
나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