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친구와 있어도 불편할까>의 작가는

일본의 심리학자로서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심리학 강의 중에서도 '대인불안' 수업은

평소 수업을 듣지 않던 학생들도 집중하게 만든다고하니

다른 사람은 신경 안쓸것 같은 요즘세대라해도

다 그런것만은 아닌가보다.

 

 

첫페이지부터 공감되는 제목.

[친구들과 함께할 땐 즐겁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피곤해진다]

사실 이런 기분을 나는 학창시절에는 느끼지 못했고 어른이 되었을 때 느꼈다.

 

 

난 불편한 친구라면 단둘이 만나지는 않지만

여러명이 만나는 모임이라면 무리 중에 불편한 친구가 끼어있을 수는 있다.

불편한 사람이 있는 모임에 나갔다오면 기운이 쫙 빠져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해지는 나.

 

모임에 나가면 아무래도 상대방을 배려해야되고,

다른사람 이야기를 들어주어야되니

도대체 내가 왜 나와있는건지 모르겠고

시간낭비인 것 같고

내 에너지가 바닥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모임은 점점 자제하게 된다.

 

어떤 모임에서 친구들의 이야기 패턴을 관찰해보면

한가지 주제로 얘기를 주고 받는것이 아니라

서로 자기얘기만 하고있다는 생각이 들기도ㅋㅋㅋ

(특히, 엄마들 모임;;;;;)

 

 

다른 사람 배려한답시고 자신을 돌보지 않다보면 한계가 오기 마련이다.

내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문화적인 영향이 크다.

동양과 서양을 비교해보면 동양은 관계의 문화이고 서양은 자기중심의 문화.

우리가 토론에 서툰 까닭은 역시 이런 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내가 나서서 주장을 펼치고 말하는 것이 싫었던 것은 내탓이 아닌걸로 생각해본다ㅎ

 

 

예전에는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공감하며, 관계를 좋게 이어가는 것을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상대방의 기분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배려라고 생각한다.

 

부딪히면서 서로를 이해하려하지 않고 아예 부딪치지 않으려는 현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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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건지 이해가 된다.

속내를 교류하려하지 않으려니 외로움이 동반되는 것은 당연한지도.

슬픈 현실

 

 

나는 여지껏 내모습이 한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드러나는 내 모습이 다를 때가 있을때마다 내가 낯설게 느껴지곤 했다.

혹,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저자는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

상대와의 관계속에서 드러나는 내 모습이므로

여러가지 모습들이 바로 내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이다.

단지 다양한 내 모습이 상대에 의해 드러나고 밝혀지는 것이라고 한다.

대인불안이란?

타인에게 평가받는 상황 혹은 평가받는 것을 예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안.

남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신경쓰다 불안한 감정이 높아지는 것.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을지 모를 불안.

 

 

저자는 대인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어찌보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몇가지만 적어보자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기

-타인의 시선에 비치는 나보다 상대 자체에 관심 두기.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해결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다른사람은 제쳐놓고 나를 중심에 두는 것이다.

상대에 대해서도 내려놓으면(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대인불안을 극복해갈수있고

친구와 불편한 감정소모없이 만나며 지낼수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나를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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