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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지뢰
이정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 인가, 보고 싶은 책을 고를때 알라딘에 있는 서평에 의지하는 버릇이 생겼다.

좋은 글을 많이봐서, 그곳 사람들이 추천한 책이라면 믿고 볼만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이러면 안되는데.

난 포인트 때문에라도 책을 교보에서 사야한단 말이다...;ㅁ;

 

각설.

이정하의 나비지뢰도 알라딘의 누군가가 책을 읽고 쓴 글 때문에 보게 된 것.

 

남자주인공이 오랫동안 바라봐온 여자를 납치(?)해서 눈 펄펄 나리는 강원도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하는지라,

처음에는 '이게 웬 스토커 질이냐'하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뒤에 서술된 길고 긴 사연은 안쓰러울 정도.

 

이 소설은 온전히 남자주인공인 준영의 이야기이지,

준영이 고등학생 시절부터 바라봐온 미나나, 준영에게 도움을 받은 날 이후로 그를 계속 바라본 수진에게는

'여자주인공'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가 없다.

오롯이, 준영의 '숭고한 희생적 사랑'에 묻혀있는 글이랄까.

자신을 전혀기억하지 못하는 미나를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4일간 납치했다가 돌려보낸다거나,

불륜을 저지르던 상사 민국장의 아내에게 끌려가 정말 '죽을' 상태가 된 미나를 구하기 위해 무턱대고 뛰어든다거나.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정신인가'라고 할 정도로 무모한 사랑이다.

우습지. 미나는 이미 따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몸까지 팔아가며 출세하려고 안달이 난 여자를, 대체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의 그 단 한순간의 열병과, 자신의 은인인 미나의 어머니의 부탁에만 의지한 채로.

나같으면 오만 정나미가 다 떨어졌을 것을.

하긴, 그러니까 준영이 소설 주인공인 거겠지만.


멋있게(?) 맞아가면서 미나를 구하고, 결국은 항상 지켜봐준 수진과 잘되는 것 같다.

미나는 결국 떠나고(아니, 남자친구는 어쩌고?),  옆에 남는건 수진 뿐인 모양. 흐음.

 

이 책의 시작과 끝, 그러니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수진의 말이다.

책의 제목인 '나비지뢰'를 말하는 것도, 그러니까 수진.

'인간이 만든 가장 잔인한 무기가 나비지뢰라면, 인간에게 남는 가장 잔혹한 상처는 사랑'이라는 말에는

대략 삼천만 퍼센트 공감한다.

치정이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 소설에서 가장 불행했던 것은 민국장의 아내인 혜은인것 같다.

아름다운 유명 탤런트에서, 그냥 '한 남자의 아내'로의 몰락(그렇다. 몰락이다.)한 삶이라니.

사랑도 없이, 돈만보고 달려든 남편과의 결혼으로 세상의 뒤안길에 묻혀버리고,

나이가 들고 나니 남편은 젊은 년(허걱, 과격 표현)이랑 놀아나면서,

내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고 금치산자로 몰아 재산을 빼앗아 살림차릴 궁리나 하고 있고.

그래도 빠릿빠릿한 아버지 덕분에 재산은 지키게 됐고, 남편의 내연녀인 미나도 떠나보냈으니

둘 다 그녀 스스로 한일은 하나도 없을 지언정, 소설에 나오지 않은 뒷 부분에선 왠지 남편과 이혼하고 잘 살았지 싶다.

중간에 '다시 텔레비전에 나온'이라는 문구가 있는 걸로 봐선,

현실에서 결혼 후 잠적했던 많은 옛 여자배우들이 그렇듯이 다시 활동도 할 모양.

세상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거랑, 늙는걸 못 참는건 이해하기 좀 어렵지만.

사랑받지 못 하고 살았던 상처는 잘 극복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준영의 헌신은 이해를 못하겠고, 수진의 행동도 속터지기 3초전인데,

그나마 수진과 미나의 남자친구는 현실적인 인물인것 같다.

고백을 못해서 끙끙거리고 매일 같이 창 밖만 바라보고 있는 심정이나,

여자친구와 연락이 안되서 초조한 모습, 여자친구의 불륜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는 모습같은거.


 

지성(미나의 남자친구)의 인물설정은 참 부럽다.

부잣집 맏아들로 태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겠다며 가구 공방을 꾸려서 산다, 라니까,

왠지 드라마 속에 나오는 프로토타입 같은 느낌도 없잖아 있긴 하지만, 뭐.

 

수진의 비디오 가게에 들락날락하는, 영화감독이 꿈이라는 소년(갑자기 이름이....-_-;; 범진이?)이,

수진의 모습을 촬영해서 만들어준 짧은 영상의 나레이션은 시 같았다.

사람의 마음을 줄줄이 읽어내는 재주도 있는 소년인 모양. ㅋㅋㅋ

훌륭한 영화감독이 될거다. (라고 믿고 싶다.)

 

소설에서 결과적으로 완전히 새된건 민국장 뿐인 듯.

손에 넣으려던 모든게 다 사라졌으니.

아무래도 회사에서도 짤렸을거 같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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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심 - 상 - 파리의 조선 궁녀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김탁환의 역사 소설은 진짜 같다.

연구를 열심히 해서 쓰시니 그런 것일 테지만,

역사적으로 실재했는지를 알 수 없는 사건도 그가 쓴 것은 진짜일 것 같다.

심지어, '부여현감 귀신 체포기'도 진짜일것 같다.

 

어쨌건,

이번에 읽은건, '역사에 걷어차인' 여자,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

야소교도 어미가 야반도주한 지방의 동기(童妓)에서,

국왕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궁녀로,

프랑스 공사와 결혼하여 양이복을 입고 조선을 떠나, 처음으로 유럽에 간 조선 여자로,

파리에선 인종차별에 상처받은 황인종으로,

사하라에선 아픔을 넘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진 '깨인 여자'로,

하지만, 돌아온 조선에선 역사의 여울에 휘말려, 춤을 추다 자살하게 된 불행한 무희로.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녀는 총명했고, 재능도 있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이 정도라면 당시 현실에서 약간의 제약은 있었을지언정 크게 성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급격하게 흘러가는 역사에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다 결국 죽었다.

아마 리심이 프랑스로 가지 않고 조선에 남아있었다고 해도 행복해지지는 못했을 것 같다.

 

리심은 마치 '조선' 같다.

팽창하는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이리 저리 차이다가 멸망한 조선.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배우려고 노력하고, 변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한.

리심이 그 재능과 미모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죽어야만 했던 것처럼,

조선도 아무리 노력을 했다해도 열강에 눌려 멸망했을 것 같다.

 

사람을 믿는 것은 리심의 병이었다. 그녀에게 깊이 패인 흉터만 남기는, 무시무시한 병.

엄마는 날 버리지 않을거라고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고,

빅토르 콜랭이 자신을 사랑해서 법적으로 혼인했다고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고,

쥘리에트가 낯선 황인종인 자신에게 기댈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됐다고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고,

약방 동기인 영은과 지월은 진심으로 자길 생각해 준다고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고,

동병상련을 느꼈던 홍종우도 가족같이 여겼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리심을 죽음으로 밀어낸 것은 저 쌓이고 쌓인 배신이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을 믿은 병.

그녀를 끝내 배신하지 않은 사람은 죽은 사람 뿐이니.
 

 

빅토르 콜랭은 왜 리심과의 서류 관계를 분명히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녀가 상처받을 일도, 자살할 일도 없었을텐데.

고종이 그녀를 납치해서 자신과의 거래를 하려했을때 정식으로 찾아올 수 있지 않았겠는가.

고종은 왜 또 하필이면 프랑스 공사인 빅토르 콜랭의 힘을 얻으려고 했을까.

그렇지 않았으면 리심을 납치할 일도 없었을 텐데.

리심은 나라'만' 생각한 남자들한테도 걷어차인것 같다.

 

안쓰럽다는 말도 못할 정도로 불쌍하긴 하다.

역사의 물살에서 그녀를 건질 수 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나.

애초에 어머니가 야소교를 믿지 않았다면,

아니, 약방 기생만 되지 않았어도,

아니, 고종과 빅토르 콜랭의 눈에만 띄지 않았어도,

아니, 프랑스로 가지만 않았어도,

아니, 조선으로 돌아오지만 않았어도,

아니, 아니, 아니, 그녀가 그렇게 총명하고 아름답지만 않았어도......................

2007.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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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아마 평생 글 안쓰게 될 것 같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러고 있다-_-;;;;;

....알라딘 서재는 글을 잘, 그야말로 '보는 나는 혼이 나갈 정도로 잘'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말 점하나도 찍고 싶지 않았던 곳...인데.

 

이러다가 여기도 슬슬 꾸미고 막 그러는거 아닌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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