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그리고 다시
박현섭 지음 / 핀스퀘어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살아온 궤적들은 어떤 형태라도 남기게 마련이다. 눈이 쌓이듯 어느 순간은 퇴적되고 어느 순간은 마른 눈물방울처럼 흔적을 남길 뿐이다. (56p)

<첫, 그리고 다시>는 그녀의 살아온 궤적을 담담하게 따올리며 기록한 책이다.
한 어머니의 딸로, 한 지아비의 아내로, 자식들의 엄마로, 이제는 장성한 아이들이 낳은 손주들의 할머니로 세월의 흐름 속에 수차례 변한 그녀의 역할만큼이나 그녀가 펜촉을 다듬고 써내려간 이야기속에는 가난, 그리움, 삶에 응어리진 수 많은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내가 혼자 잘난 듯 건방을 떨지만 제일 중요한 한 가지를 못하고 산다. 딸 노릇을 제대로 못 한다. 왜 나는 아버지 굽은 등에서 삶의 무게들이 술술 새나가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아버지 등에서 시름시름 벗겨지던 빈 지게를 잡아드리지 못했다. 당신이 일궈낸 팔십 평생 세월을 치매라는 강도에게 무참히 빼앗겨버렸다. (72p)

치매로 자신이 가진 소중한 기억들과 추억들을 잊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느낀 안타까움과 또 다른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려는 아버지를 대문의 빗장을 걸어잠그듯 붙잡고 싶은 심정은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건강검진을 통해 알게 된 몸의 이상 증후, 결과는 암이란다. 암 선고를 받은 그녀는 마음을 다스리고 태연한 척했지만 그럴 수 없었음에 고통 속에 두려움이 엄습해오기도 하면서 그때의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써내려간 부분에서는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병마는 그녀의 평범했던 삶을 멈추게 만들었으며, 누군가를 만나는 일조차 가벼워지지 않는 일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삶의 의미를 찾는 우선순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었던 그 시간 속에서 꽃은 지치지 않고 다섯 번을 피었다 지고 또 다시 피었다. (153p)

삶의 끈을 언제쯤 놓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고 한다.
버킷리스트 항목의 첫번째에 자리잡은 것이 바로 '책 한 권 만들기'이였으니 첫번째 항목은 실현되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글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삶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과 다시금 마주하면서 그때의 감정도 솔직히 드러내보일 때 독자들에게 그 감정이 투영되어 공감을 얻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나의 생각에 비추어보자면 <첫, 그리고 다시>는 박현섭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수식어와 관련한 흔적과 생사의 갈림길에서의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풀어내고 있는 점이 독자의 한 사람인 나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전해주었다.

가슴속 얹힌 말
그 속내를 진솔하게 풀어내다.

이 문구는 <첫, 그리고 다시>라는 책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었다.
펜촉을 다듬어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동안 느꼈을 수 많은 감정들.
그 감정들에 나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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