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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로 일의 이치를 풀다
이한우 지음 / 해냄 / 2021년 4월
평점 :
신문사의 논설위원과 기자로 일하시고,
논어등반학교의 교장으로 있는 저자는
<논어>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일의 이치(사리)에 따라 일을 하고
일의 이치에 따라 사람을 잘 가려서
마침내 그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법을 말해 주는 책이다" 라고 하셨어요.
제가 그동안 알고 있던 논어, 맹자는
책 속의 학문이고, 공부를 위한 학문이었는데
저자의 말씀대로라면 이거야말로 가장 실용적이고
필요한 학문이 아닌가!하며 놀랍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책의 차례만 보아도,
인간관계,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위한
관계 필독서에 나올 법한 소제목들입니다.

연산군이 폐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실정을 해서가 아니라 세력을 확고히 하기 전에
너무 성급하게 권세가들을 제거하려 한 것과
측근을 함부로 다루어 심복을 얻지 못한데 있었다고 합니다.
연산군의 상황이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를 닮지 않고 아버지의 업보를 넘었다면
또 다른 임금으로서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섭공이 정치의 도리를 묻는 부분에서
공자는 "가까이에 있는 자들을 기뻐하게
하여 멀리 있는 자들이 찾아오게 해야 한다"라고 했어요.
공자는 사리를 말하고 있으며 일은 가까운 데서
먼 데로 차근차근 나야가 한다는 것이에요.
이를 잘 따른 것이 바로 세종 임금이셨지요.
태종은 세종을 위해 외척을 제거했어요.
장인을 죽이고 처가를 멸문하게 주도한
영의정 유정현과 좌의정 박은에 대한 원망이 있을텐데
박은은 태종이 세상을 떠나기전에 죽어서
그에게 어떻게 대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유정현을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어요.
태종이 죽은 후에도 제거하지 않고 그 자리에 썼어요.
게다가, 세종 즉위 전에는 부정적이었던 황희와 이직은
세종에게 돌아와 태평치세의 밑거름이 되었답니다.
세종은 진실로 일의 이치를 알고 효를 실천한 분이십니다.
다리 하나가 짧아서 절뚝이는 사람을 보고,
"짧은 다리는 딴 사람과 같으나 한 다리가 길다고 하라"고 했다니.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는' '예'를 정말 잘 가르쳐주는 예화입니다.
얼마전에 본 <자산어보>라는 영화에서
"주자가 이렇게 힘이 세구나"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안타깝게 현대에도 기존의 주자학이 곧 유학인줄 알고
주자학에 젖어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공자가 일하는 법을 알려준다'는 것이
낯설고 의아하게 느껴졌지요.
책을 읽다보면, '예'를 단순히 '예절' '예의'로
본다면 공자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데 무리가 있어요.
'예'를 '일의 이치(事理)로 보아야 뜻이 분명해지지요.
공자께서 제자에게 해주신 말씀이 와닿아서 적어봅니다.
여섯가지 좋은 말과 그에 따른 여섯 가지 폐단입니다.
어짊(仁)을 좋아하기만 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리석게 되고
사람을 평하고 논하기(知) 좋아하기만 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시간과 노력을 탕진하는 것이고
신의(信) 라고 하여 하나만 잡고서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잔인해지는 것이고
곧은 것(直)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너무 강퍅해지는 것이고
용맹(勇)을 좋아하기만 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지러워진다는 것이고
강한 것(剛)을 좋아하기만 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경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 배운다는 것은 사리로서의 예를 배운다는 거예요.
나는 곧은 사람이야. 라고만 하고 곧기만 하고
일의 이치, 사리를 배우지 않는다면 강퍅해서
사람들이 그를 따르거나 좋아하지 않겠죠.
정말 딱 맞는 말입니다.
그 동안 어려운 한문이고 옛이야기들이라
현실에서는 맞지 않고 윤리나 철학 시간에만
듣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논어를 다시 느끼고 배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