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독서모임에서 한 번 선정되었을 때, 나는 이 책을 대수롭지 읺게 생각했다. (내가 고른 책이 아니면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이 에고는 어쩔 것인가!) 그리고 결국 그 달의 독서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일이 생기면서 책을 구하지 못했다는 핑계로-그당시 도서관에서 최고 인기 도서였다-읽지 않고 넘겼다. 얼마 전 읽은 <도시인의 월든> 마지막에서 두번째 챕터에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반전이 있으니 스포를 당하고 싶지 않다면 그 책을 먼저 읽으라는 저자의 말에 당장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제 빌려서 오늘부터 시작해 오늘 다 읽는 쾌거(?)를 이뤘다. 워낙 술술 읽히게 쓰기도 했고, 내가 조금 대충 읽은 덕(?)도 있다.
회복탄력성이 무지하게 좋아보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와 인생은 아무 것도 없고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하는 아버지를 둔 저자의 이야기가 교묘히 잘 섞여 있다. 결국은 우리가 살면서 ‘혼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동안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을 포기하는 것이 위험하지만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설득력 있게 들려주고 있다. 내 맘 속에 있었던 다윈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발췌2. 사다리 있는 줄 알았다. 더 높은 곳으로 진화된다는 줄.).
요즘 내 자신의 에고에 얼마나 놀라고 있는가. 나 중심성에 대해 말이다. 그걸 놓으려고, 집착을 놓으려고 열심히 연습하는 요즘. 이 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다. (발췌 3. 있는 그대로 보기. 호기심을 갖고!) 이렇게 만날 책은 만날 타이밍에 만나게 되나보다. 책 한 권을 읽으면 읽고 싶은 책이 배수로 늘어나지만-이번엔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와 제니퍼 마이클 헥트의 <살아야 하는 이유>다- 읽으면 어떠하고 읽지 않으면 또 어떠하랴. 집착을 내려 놓으면 인생이 너무나 가볍다. 둥둥 떠다닐 수도 있을 것처럼 말이다.
추신. 발췌1같은 농담이 너무 좋다. 한참 웃었네. 본인은 농담이 아니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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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1. 그러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신실한 청교도라 법을 어기는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생학적 불임화의 합법화를주장하기 시작했다. - P185
발췌 2.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알려주려고 그토록 노력했던점이다. 사다리는 없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다윈은 과학자의 입으로 외쳤다. 우리가보는 사다리의 층들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며, 진리보다는 "편리함"을 위한 것이다. 다윈에게 기생충은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경이였고, 비범한 적응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크건 작건, 깃털이있건 빛을 발하건, 혹이 있건 미끈하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그어마어마한 범위 자체가 이 세상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는 무한히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 P206
발췌 3.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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