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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릿 - 한동원 장편소설 ㅣ 담쟁이 문고
한동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삐릿은 마이클잭슨의 히트곡 ‘Beat It‘에서 제목을 따온 소설로서
88올림픽을 한해 앞둔 1987년도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열혈남아들의
메탈음악을 향한 열정의 시간들을 담고 있다.
80년대에 태어난 나에게는 조금 이른 시기여서 기억할 수 없는
시간들이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며, 빡빡머리의 향수, 선도부의 하늘과
같은 입지, 학년마다 색이 다른 뱃지며, 선배들과 복도에서 마주칠때마다
대통령에게 인사하듯 예의를 갖춰야 하는 모습들이 결코 낯설지 않았다.
나와 다르다는 점은, 그들은 음악에 홀딱 빠져서, 그룹을 만들고, 달빛을
조명삼고, 운동장을 무대삼아 유명한 밴드 못지않게 공연을 했다는
점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 또한 중학교 시절, 지금의 아이팟과는
사뭇 다른 두툼한 ‘워크맨‘을 나의 재산목록의 상위권으로 정해두고
용돈이 모일때 마다, 레코드가게에 가서, 테이프를 사 모으며
그들의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실황공연의 어느 자리쯤 앉아
있는 상상의 나래 속에 빠져있었다는 점이다.
백동광이 정도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같은 반 함주석을 통해
전자악기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좋아하는 여학생 ‘정아연’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본격적으로 메탈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교회 찬향단에서 함주석과 성만 다른 김주석을 자신의 라이벌로
생각하고, 좀 더 멋지게 기타를 연주하고 싶어한다. 처음에는
베이스 기타와 솔로기타도 구분하지 못했던 동광의 놀랄 만큼
빠른 성장은 아마도, 사랑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 소설이 ‘일렉 기타를 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 불릴이유는
단순히 기타와 메탈에 빠진 고삐리들의 이야기만이 아닌, 정도고의
음지 세력과 반대축인 음악선생을 내세운 전자악기부‘영 파이터스’의 권력싸움
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 파이터스 멤버들의 부모님들은 언론계와
사회에 힘 깨나 쓸 수 있는 사람들이고, 백동광과 ‘영 파이터스’의
새 멤버를 뽑는 오디션에서 만난 양수은은 약하디 약한 존재이다.
양수은의 아버지 또한 ‘소리나‘ 라는 훌륭한 기타를 개발했지만, 대기업에게
자신의 개발권을 쏙쏙 빼앗기고, 미국으로 날아가 버린, 약자이시다
그의 아들 양수은은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고, 그의 아버지가 개발한
소리나 1호를 백동광에게 일임한다.
MBS에서 주관하는 제 1회 영 메탈 페스티벌의 찬조출연 A를 맡게된
소리나의 멤버 백동광과 양수은은 영 파이터스의 히트곡 ‘일단 뛰어‘가
표절곡임을 알지만,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영 파이터스에 비하면
모든 이들이 관심갖지 않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6개월간의 새벽연습과, 교실에서의 비밀 연습으로, 정해진 3곡중 단 1곡이
지만, 빛나는 데뷔를 하게 된다(물론 다른 사람은 신경쓰지 않겠지만,
둘 자신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백동광은 공연 순서 페이지를 보며
깜짝 놀라게 된다. 자신이 정아연에게 보낸 러브레터에 적어 보낸
시가, 영 파이터스의 ‘밤,하늘 ,그리고 길’에 표절된것, 그리고
작사 작곡, 함주석이라니... 고삐리의 순수한 시절에도 세상에도
엄연히 강자와 약자가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공연을 끝으로
양수은은 아버지가 보내준 비행기표로 미국으로 떠나갔다.
다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백동광을 찾겠다는 말을 남긴채.
내가 보는 ‘삐릿‘의 영웅은 짝사랑의 여학생에게 시를 쓰고
열약한 환경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워가며 당당히 무대에
오른 ‘소리나‘의 멤버, 백동광과 양수은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속이지만 지금은 거의 마흔이 되어있을 소리나의 멤버는
대단한 록밴드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