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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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섯 편의 소설에 사계절을 담았습니다. 각각의 계절에 필요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그 계절에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계절은 아름답고, 계절 안에 삶이 있듯이 이야기도 그 안에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소설과 함께 계절을 배우고 느끼고 지냅니다. 한 권의 책이 나온 것만으로 특별해서 이 봄에 새로운 이름을 지어줘야겠습니다.

가벼운 점심_작가의 말_315쪽

표제작 <가벼운 점심>과 202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을 포함해 모두 여섯 편의 작품이 실린 소설집이다. 작가의 말처럼 여기에 실린 소설에는 사계절인 담겼다.

가족을 두고 집을 떠난 지 10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와 패스트푸드점에서 함께 하는 점심 속에서 그동안 상상으로만 그렸던 아버지의 '무거운' 삶을 무겁지 않은 분위기에서 듣는 <가벼운 점심>에는 봄꽃이 피는 계절이, 서울살이 5년 차 원룸 생활자이며 유통기한이 임박한 통조림 같은 처지의 남자가 어느 날 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집에 들이면서 "인생은 피아노의 하얀 건반이 아니라 검은 건반 같은 거라고" 말하는 <피아노, 피아노>에서는 봄비 내리는 계절이, 세 번의 유산 후 느려지고 게을러지는 아내와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로서 품위를 포기할 수 없는 남자의 지독한 애증을 담은 <하품>에서는 끈적하고 지리한 계절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네 계절밖에 없지만, 네 개로 구분된 계절 안에는 또 다른 계절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한 계절은 뒤이어 오는 계절과 대체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나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순간은 물이 섞이는 것처럼 자연스레 흘러가서 뚜렷한 경계를 지을 수 없다. 이 소설에 담긴 사람들의 삶도 그렇다. 어떤 삶이라고 규정하기보다, 누구나 한번쯤 지나칠 수 있는 그런 삶의 순간들을 조금씩 모으고 한데 묶고, 어떤 형태를 이룰 정도의 묶음이 되어가면, 그걸 삶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책에 수록된 소설들을 읽을 때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문장과 스토리 흐름 때문에 아주 오래전 단막극을 보는 것 같았다. 낡았다는 느낌은 아니고, 조금 흐릿하고 여운이 남는 느낌에 가깝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평소 내가 즐기는 스타일의 소설이 아니라서, 가벼운 듯 싶었는데, 어쩐지 읽는데 힘이 들었고,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소설 속 계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계절에 새로운 이름을 지어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고 고독하게 삶을 지켜내는 사람들이 삶을 지켜내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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