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 세월호참사 10년, 약속의 자리를 지킨 피해자와 연대자 이야기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기획, 박내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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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배는 출발지를 떠나 목적지로 간다. 바다 위를 항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해진 항로를 따라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배는 아직 부두를 떠나지도 못했다. 출발지에 멈춰 있는 것이다. 과연 이 배는 항해를 잘 마칠 수 있을까?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61쪽


그 배는 점점 기울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던 4월의 어느 아침, 나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라는 이름의 여객선. 그 배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고 했다. 선체가 많이 기운 것 같지만 그래도 구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계속 지켜보았지만, 어쩐 일인지 화면이 정지한 것처럼 텔레비전 속에서는 바다로 점점 기울어 빠지고 있는 세월호만 보였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기색은 없었고, 텔레비전에서는 계속 이 배의 출발지와 도착지, 출발 시간과 기울게 된 시간, 수학여행을 떠나던 학생들을 타고 있었다는 내용과 배가 얼마나 기울었는지에 대해서만 반복해서 알려주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10년이 지났어도 알 수 없다. 당시 내가 알 수 있었던 사실은 나라에서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여전히 진상규명은 요원하고, 가해자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나 더, 희생자 유가족들을 향해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혐오의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해준 이야기. 친구들과 지하철역 근처를 걸어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아이를 불러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가방에 그건 왜 달고 다녀?"라는 질문을 했다고 하다. 아이는 언제나 세월로 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닌다. 오래 전부터 달고 다닌 리본이었기에 아이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질문을 받아서 당황했던 아이는 "잊지 않기 위해서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벌써 10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그걸 달고 다니냐고 했고, 아이는 10년이 지났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답했다. 그 뒤로 그 사람은 자신이 내는 세금이 아깝다고 했고, 돈도 많이 받았으면서 아직도 세월호 말하냐는 식으로 혼잣말을 하다가 가버렸다.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아직 진상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세월호에 대해, 남은 유가족들에게 대해,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아이를 불러 세워서 자신이 낸 세금이 아깝다고 말할 정도로,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어딘지 어긋나버린 생각은 한 방향에서 흘러오는 소리만 담는 것인지, 진실을 말하는 목소리에는 귀를 닫아버리는 것 같다. 그러니, 단식을 하던 유가족들 옆에서 먹방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

세월호는 정치 영역이 아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이다.

책을 읽으면서 "모든 배는 출발지를 떠나 목적지로 간다. 바다 위를 항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해진 항로를 따라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배는 아직 부두를 떠나지도 못했다. 출발지에 멈춰 있는 것이다. 과연 이 배는 항해를 잘 마칠 수 있을까?"는 글이 오래도록 남았다. 출발지에 멈춰 있는 이 배가 항해를 잘 마치기 위해서는 '이유', 이 사고가 발생하게 된 이유, 진상규명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 다음에 가해자를 찾아 처벌하고, 그 다음에, 또 그 다음에....그런 수순을 밟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첫 번째 단계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는 세월호참사 10년의 시간을 통과해 온 기억공간들을 중심으로 세월호 생존자, 유가족, 활동가들을 인터뷰하고, 안전사회를 위한 다음 걸음을 고민하는 책이다. 이 책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 4·16재단이 주축이 되어 발족한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의 기획으로 송경동 시인이 직접 각 분야에서 구술, 인터뷰 활동을 해온 10인의 작가를 모았다. 그리고 10년 전의 약속을 되새기고 앞으로의 10년을 그리겠다는 다짐을 응원하기 위해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가 서문을, 김훈 소설가가 추천의 글을 썼다.

1부 ‘10년의 기억을 담은 공간들’에서는 수많은 방해와 반대에도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목포 신항만, 두 번의 임시 이전 끝에 자리를 잡은 단원고 4·16기억교실, 설립 반대 압력에도 착공을 앞둔 4·16생명안전공원 등의 기억 공간을 보여 준다. 이 기억공간을 지켜온 활동가들의 구술과 이곳의 사진들을 따라 읽다 보면, 함께 노란 리본을 만들고, 명절을 지내고, 수다를 떨고, 맘 편히 웃고 우는 세월호 생존자, 유가족, 활동가의 얼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2부 ‘10년의 기억을 품은 사람들’은 참사의 피해당사자인 생존자,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안전사회의 기틀을 마련하는 동안 “시체팔이” 등의 혐오 표현을 견디고, “빨대 꽂는 인간들”에게 뒤통수를 맞고, “자식 잃었는데 웃어?”라는 시선에 상처받았다. 2부는 이들의 진솔한 고백을 옮겨 적으며 그동안 세월호 피해자들을 가리고 있던 오해를 걷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세월호 생존자, 유가족, 활동가들은 “10주기에는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그들은 그런 질문에 앞서 10주기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귀 기울여 듣진 못하더라도 이제라도 자신이 품고 있는 기억을 각자의 자리에서 나누고, 기억공간을 찾고, 다시 연대의 힘을 보태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왜 그랬을까?

세월호 참사처럼 이태원 참사 때도 정부는 '돈'이야기부터 했다.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부터 해놓고 슬며시 몸을 숨긴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결국 희생자의 유가족과 생존자 뿐이다. 내가 그런 참사와 관련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나라로부터 철저하게 버려진,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함. 책을 읽으면서 4얼 16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10년 동안 서서히 잊고 있었으니까. 큰 힘을 보태지 못한다 하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기억을 나누는 것은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오래 살면 여러 사건을 겪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참사가 되풀이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정말 비슷하게, 똑같은 희생이 되풀이되는 거거든요. 그런 참사가 자신의 일이 되기 전에 시민 의식과 연대 의식을 바짝 날 세우고 챙겨야 해요. 사회적 재난은 대비하고 막을 수 있어요. 관심을 가지고 나와 가족, 이웃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깨어 있는 정신으로 저희와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안전문제는 생명과 연관되는 거니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참사가 중요한 문제라고 여기고 진상규명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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