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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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그 질문은 원도가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거나 스쳐지나간 타인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고, 원도가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고, 현재의 원도가 과거의 원도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질문은 원도의 세계에서 맴돌지 않고 갑작스레 방향을 바꾸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지금까지 원도를 지켜보며 원도에 대해 여러 평가를 내리며, 왜 그가 죽지 않았는지 지켜보고 있는 바로 그 독자들에게. 그런 다음, 그런 질문 따위는 한 적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 떼는 듯한 얼굴을 한 채로 "나 혼자요."라고 여관 주인에게 대답하는, 다음의 원도를 보여준다.

내가 볼 때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검은 봉지에 담겨 으슥한 곳에 버려진 불법 쓰레기같은 원도"가 여관을 찾았을 때 원도는 "혼자요?"라고 묻는 여관 주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원도를 불안하게 보던 주인은 '이상한 짓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서 다시 여관을 찾은 원도는 어쩐지 첫 장면에 등장한 원도와 달라진 원도처럼 보인다. 물론 여전히 '더럽고 병든' 모습의 원도이다. 어쩌면 첫 장면에서보다 더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도는 "거기, 혼자요?"라고 묻는 여관 주인의 질문에 "나 혼자요."라고 대답한다.

여전히 희망 한 자락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원도가 드디어 '혼자'라는 대답을 자신의 입으로 시인했다는 것이다. 그게 어때서 중요한가 다시 묻는다면, 나는 소설에서 "걷기 위해선 먼저 멈춰야 한다. 함께하길 원한다면 우선 혼자여야 한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하고 선택해야 한다." 라는 구절을 들려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첫 장면의 원도는 여관에 숨어 웅크린 채 그저 정처없는 과거의 혼란스러운 기억 속에서 자신의 현재에 대한 이유와 왜 죽지 않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마지막에서 다시 여관을 찾아온 원도는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상태로 보이며, 아마도 자신의 과거를 충분히 돌아보고 기억하고 선택했을 것이다. 죽음이 아닌 삶을. 그렇게 완전하게 혼자가 되었고 죽지 않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고 삶을 선택한 원도가 갑자기 독자를 향해 얼굴을 내밀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일어나려면 일단 앉아야 한다. 걷기 위해선 먼저 멈춰야 한다. 함께하길 원한다면 우선 혼자여야 한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하고 선택해야 한다. 미룰 수 없다. 거부할 수 없다. 주저앉았던 원도가 일어난다. 걷는다. 아직 어둡다. 눈이 내린다. 해가 뜨더라도 충분히 밝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추울테고, 몹시 배고플 것이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 원도가 걷는다. 망설이며 걷는다. 걸으며 묻는다.

왜 사는가.

이것은 원도의 질문이 아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 역시 아니다.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

이것이다.

- 원도 240쪽


이 장면에서 글을 정확하게 재단하는 듯한 작가의 재단사적인 능력을 엿볼 수 있는데, 소설의 처음과 끝이 너무 아름답게 맞물린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너무 적절하게 소설 입구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를 문처럼 세워놓았다는 점이 더욱 그러했다.


난 혼자요 하고 말하자

여인숙 주인이 숙박부에 그렇게 적었다.

이 추운 겨울밤.

_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8)


이 하이쿠를 읽고 다음 책장을 넘기는 순간이 마치 소설이라는 커다란 세계의 문을 여는 것처럼 느껴져서 어쩐지 소설 내내 원도가 하는 질문들이 더욱 절실한 외침으로, 깊은 탄식으로 들려왔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원도에 대해 생각했다. 원도라는 이 남자는 왜 이런 생각을 하며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자신의 잘못을 어째서 과거의 어떤 인물이나 사건으로부터 찾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이렇게 인생이 '끝장'났는데도 왜 아직 살아있는지, 아니 왜 죽지 않았는지...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왜 죽지 않았는지, 왜 아직 죽지 않고 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에게 원도 방식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과거를 배회하며 기억을 모으기 시작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것은 어쩌면 조금이라도 삶에 가까운 답이 되는 방향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최진영 작가의 소설은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내기에 읽을 때마다 두렵고 버겁다. 이 소설도 몇 번이나 쉬어가며 읽었다. 죽은 아버지와 산 아버지, 공허한 눈빛을 가진 어머니로부터 자유를 억압당한 원도.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가속도를 더해 내달리는 원도. 그런 원도를 지켜보는 것도 힘겨웠지만, 원도의 여정 끝에 작가가 방향을 바꿔 나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할 것을 예감했기에 더욱 힘겨웠던 것 같다.

원도는 소설 속 한 남자가 아니라, 질문 그 자체이다. 생의 깊고 커다란 구멍을 향해 끝없이 쏟아내는 처절하고 근원적인 질문. 왜 죽지 않았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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