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블루칼라 여자 - 힘 좀 쓰는 언니들의 남초 직군 생존기
박정연 지음, 황지현 사진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고군분투했던 이유는 일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 일하기 위해서였다. 생존이 곧 투쟁이었던 셈이다. 자신의 노동에 관해 이야기하던 그들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햇볕에 얼굴이 다 타고 땀에 절었어도, 주름이 깊게 패이고 먼지로 뒤덮여도 자신의 노동에 관심을 갖고 그 이야기를 들으러 온 여자 기자에게 그들은 너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따. 돈이 필요해서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고, 항상 주눅들어 살다가 일하면서 새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하는 그들의 눈에서 빛이 났다.

나, 블루칼라여자/ 프롤로그

남성이 대다수인 일명 '남초 직군'에서 일하는 여성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이 책은 출발했다. '백래시'가 심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마초적인 문화가 심한 직군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안부가 궁금했던 것. 박정연 기자는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지난 봄부터 겨울까지 남성의 일터로 여겨졌던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산 신항에서 화물차 운전을 하고, 철동차량정비원으로 철도를 수리하고, 주택 수리 기사로서 주택 전반을 수선하고, 빌더 목수로 목조 주택을 짓는 등의 일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과 만났다.

거친 현장이며 고강도의 육체적 노동이 뒤따른다는 것은 남녀 모두에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 더,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들은 편견과 차별에도 맞서야 했다. 남자 동료들의 눈에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들은 동료가 아닌 그저 여자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화물노동자 김지나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처음에 일하러 다닐 때 남자 동료들이 자신을 가볍게 대하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는데, 그러던 중 어느 남자 동료가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원래 잘 웃는 편이어서 모든 동료에게 똑같이 인사를 하고 지냈는데, 그 동료는 김지나씨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그저 누구에게나 같은 인사를 했을 뿐인데, 남자 동료는 김지나시를 동료가 아닌 여자로 여겼던 것이다.

플랜트 용접 노동자 김신혜씨는 무더운 여름 셧다운 현장에서 일하던 중 동료에게 '우유가 없으니 우유 좀 짜줘' 라는 말을 들었다. 더우니까 회사에서 팥빙수와 우유가 간식으로 나왔는데, 남자 동료가 우유가 떨어졌다면 팥빙수만 받아와서 김신혜씨에게 '우유 좀 짜줘'라는 말을 한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있으니, 옆 사람이 '니 젖 짜 달라잖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상은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는데,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이다지도 느린 속도..아니 속도가 나지 않거나, 가끔 어떤 측면에 있어서는 후진을 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출간된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의 방과 500파운드는 왜 이리도 요원하고, 차별과 편견의 벽은 왜 이리도 견고한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이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들의 레퍼런스가 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삶에서 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기운을 북돋아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프롤로그에서 이어지는 블루칼라여자들의 이야기에는 그 현장에서 일하는 직업인들만이 가지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만큼 단단하고 굳건했다. 거친 현장, 고된 육체 노동에 더해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는 동안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서 분투하는 모든 이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남녀노소 따지지 않고 기원한다. 그러니 편견과 차별은 집어 던져버리고, 모두의 안녕을 함께 기원하기를.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안녕을 기원하기를. 같은 사람으로서 안녕을 기원하기를. 그렇게 반드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