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작 <골드 러시>는 빛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낯선 타국으로 건너와서 불안하고 떠도는 삶을 살아가는 이방인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집의 표제작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첫 장면은 이렇다. 골드러시를 체험할 수 있는 상품인 '골드 러시'를 즐기기 위해 서인과 진우는 함께 차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붉은 흙 위를 달리고 있다. 인적은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그 길에서 그들은 사고 다친 캥거루 한 마리와 조우한다. 캥거루는 무척 괴로워보이지만 그들이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냥 두고 가자는 진우에게 서인이 힐난한 듯한 말투로 대응하지만, 진우는 "그럼 네가 남아서 뭐라고 해보든가." 라는 말과 함께 차로 먼저 돌아갔다.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 혼자 남게 되면 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캥거루를 위한 일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조차도 불가능할 것이다. 진우에게는 서인에게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결혼 7주년을 맞이한 두 커플은 사랑하기 때문에 부부로서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유로 헤어질 수 없어서 그저 살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처음 사귀기 시작할 때 이 커플은 빛나는 미래를 설계하며 가슴 가득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난관들- 비자 문제,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 벗어날 수 없는 생활고, 그로 인한 피로와 고독, 마침내 권태와 파국으로 이어지는-은 그들에게 가득했던 희망을 소리없이 앗아갔다. 그렇게 7년을 살아가던 중, 서인이 여행사 프로모션 상품인 '골드 러시'를 예약했다. 지하 광산을 개조해 만든 숙소와 금광 체험, 사륜구동 렌터카가 포함된 상품인데 여행사 프로모션으로 반값 할인을 하는 상품이었다. 여행지로 가는 도중 그들은 조금 전의 캥거루와 조우한 것이었다. 애초에 오고 싶지 않았던 여행이었다. 일하고 있는 매장에 휴가를 내는 것도 서인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으니까. 결혼 7년 동안 이 커플의 삶은 메말라서 황폐해져갔고,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듯했다.
'골드 러시'라는 여행 상품은 둘의 만남과 결혼 생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미장센처럼 보인다. 한때는 빛나는 금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금광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몰락하고 황폐해져 폐광으로 변했고, 이제는 반값 할인으로 겨우 관광객들을 끌어모아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 금광이 있던 자리. 서인과 진우의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빛나는 삶을 꿈꾸었던 순간은 이방인의 고된 삶 속에서 무너져버렸고 이제는 관성으로 이어진 생활만이 남아있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해 호주에서 늘상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던 진우는 서인의 도움으로 소통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정작 서인과의 소통은 단절되어버렸다. 그렇게 보면, 진우의 소통 불능은 영어 실력의 부족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폐광에서의 금광 체험을 하는 동안 가이드는 계속해서 천장의 돌을 만지면 무너질 수 있으니 만지면 안 된다고 주의를 했지만,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할 뿐 아니라 주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진우는 그물에 감싸인 천장의 암석을 만지고 만다. 서인이 진우의 행동을 말리며 설명을 해준 다음에야 진우는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인은 가이드에게 진우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사과를 했다. 그때 서인은 "자신이 광산을 뒤흔든 것처럼, 그래서 광산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걸어왔던 삶에는 가느다란 빛 하나 스며들지 않는 광산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어둠만이 펼쳐져있었고, 그마저도 소통 불능으로 인해 무너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걸, 소설은 이 장면을 통해 보여주고 이다.
빛나는 이름과 달리, '골드 러시' 는 빛을 거두는 방식으로 끝을 맺어간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우는 도로로 뛰어든 캥거루를 치고 만다.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캥거루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쇠막대로 캥거루를 내리친다. 캥거루가 살아있다는 서인의 말을 무시하고 쇠막대로 내리쳐서 캥거루를 죽인다. 그렇게 차를 달리다가, 진우는 정말 캥거루가 살아있었냐고 서인에게 묻는다. 대답하지 않는 서인과 함께 있는 차안으로 붉은 노을이 흘러 들어오며 차안을 가득 채운다. 그 방향 그대로 서있는다면 붉은 노을로 채워졌던 차는 시간이 흐르면서 검은 어둠으로 채워질 것이 분명하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제목과 결말과 미장센이 너무 제대로 맞아떨어져서 놀라게 된다. 차 안이 "붉기만 한 세계'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진우와 서인 커플의 삶과 '골드 러시' 여행상품과의 연관성이 얼마나 밀접한지, 소설의 플롯은 이렇게 짜야 하는구나, 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골드러시>에서 느꼈던 감탄은 <배영>에서도 다시 찾아오는데, 폭죽을 거꾸로 들고 있는 장면이 그러하다. 어둠 속에서 짧은 순간 가장 빛나는 불꽃을 발할 수 있는 폭죽을 우현은 거꾸로 들고 있다가 다리를 다치게 된다. 빨갛게 부어오른 다리에도 불구하고 우현은 괜찮다고 말하고, 이를 지켜보던 여진은 그를 치료하기보다는 다른 폭죽에 불을 붙인다. 그런 다음 밤바다를 걸으면서 우현은 말을 건네고 여진은 다른 곳을 쳐다보는 장면은 빛나는 순간을 가지려다 오히려 상처만 입게 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게 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