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적인 집단 학살은 '1.4후퇴' 국면에서 장소를 비롯해 희생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는데, 그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으며 갓난아이를 포함한 어린이를 포함한다. 엄마의 처형으로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숨이 끊어진 태아를 비롯해서.
충남 아산의 도처에서 벌어진 부역혐의 희생자와 관련된 수많은 화자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다. 모두 50장으로 구성된 책의 홀수장과 짝수장의 화자가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 읽으면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처음에 발굴된 유해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읽었으니까.
서로 다른 곳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서로 닿을 것 같지 않은 평행선을 달리다가 어느덧 뼈의 이야기에서 맞닿게 된다. 이렇게 홀수와 짝수, 특이한 교차식 구성을 통해 한국 전쟁기 동안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사건의 참상과 땅속에 묻힌 진실을 추적하고 있다. 홀수장에서 펼치는 민간인 학살사건 이야기는 유골·생존 피해자·유가족·유품·관련 주변인·가해자 등 여러 화자의 시점을 통해 우리가 납작한 사실로 알고 있던 사건의 참상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짝수장에서 펼치는 선주의 이야기에는 인골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으로 한평생 유해가 남긴 진실을 좇아왔으며 '모던 미스'를 경계하는 인류학자 선주의 삶을 비롯한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탐구 혹은 투쟁의 과정이 담겨있다.
교차하는 화자들의 목소리에는 역사 교과서에서 담아내지 못한 진실들이 숨쉬고 있다. 특히 살아있지 않은 화자들 중 발굴된 유해들은 자신의 이름을 발굴 번호를 붙여서 명명한다. 이름 대신 유해 발굴 번호로 남은 사람들은 전쟁의 참혹하고 슬픈 결과이다. 이 책이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희생자들을 찾아내고, 국가적 차원에서의 집단 학살의 진실을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