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는 배달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생산 활동을 하는 일터다. 오토바이와 택배차가 달리는 동선을 이어보면, 도시 전체를 돌리는 거대한 컨베이어벨트가 드러난다. 배달노동자들은 이 기계에 몸이 빨려 들어가거나, 팔과 다리가 잘려나간다. 공장 안에서 벌어졌다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산재다. 하루 6명이 일하다 사망해도 변화가 없는 나라다. 이 사망사고는 시민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굳게 닫힌 공장의 파쇄기에서, 시골의 비닐하우스에서, 펜스가 쳐진 공사현장에서, 알 수 없는 화학물질을 내뿜는 공장 안에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 그러나 플랫폼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기계는 차량 운전자,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 유코차를 끌고 가는 부모 꿀잠을 자고 싶은 주민 옆에서 돌아간다. 김용균이 죽은 석탄발전소가, 삼성 노동자가 죽은 반도체 공장이 내 집 앞 길거리에서 돌아가고 있다면 누가 분노하지 않겠는가.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언젠가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길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있었다. 버스와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인 6차선 도로였다. 도로를 꽉 채운 차량에 비해 차량이 통과할 수 있는 신호는 짧았다. 다음 신호를 기다릴 여유가 없는 차량들은 꼬리물기를 했고, 그로 인해 신호를 못 탄 다른 차량들은 경적을 울리며 불만을 표출했다. 그 사이로 오토바이들은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녔다.

서로 뒤엉켜 엉망으로 돌아가는 도로를 보면서도, 보행자인 나는 내가 건너는 횡단보도가 확보되지 않을까 조바심을 냈을 뿐 다른 곳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신호등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고 도로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언제쯤 신호가 바뀌나 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충돌에 이은 쿵 하고 추락하는 소리.

버스가 왼쪽으로 몸을 틀었고 그 아래 오토바이가 쓰러져 있었다. 운전자는 오토바이에서 조금 떨어져서 쓰러져 있었다. 일순간 차량들은 멈췄고 버스 운전사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때 나는, 보행신호로 바뀐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쓰러진 오토바이 운전자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을까. 크게 다쳤을까.

오토바이 운전자는 잠시 뒤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주저앉았다가 쓰러졌다. 꽉 막힌 도로라서 버스가 속도를 많이 내지는 않았지만 방향을 트는 순간 부딪혔으니까 충격이 컸을 것이다. 주변을 맴도는 소리들이 들렸다. 정말 라이더들이 문제야. 저러니까 사고가 나지. 자기만 다치면 모를까,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잖아. 맞는 말이었다. 시민들에게 배달 오토바이는 위협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이번에도 버스가 차선을 바꾸려고 하는 순간 오토바이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벌어진 사고였다.

도로에서 위험한 라이더들을 많이 본다. 어쩔 때는 정말 사고가 날 것 같아서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다. 차에 타고 있으면 내가 탄 차에 부딪힐까봐 놀라고, 걷고 있을 때는 보행신호에 달려드는 오토바이에 놀란다. 정말 라이더들의 운전은 너무 위험했다. 문제였다. 그럼, 정말 라이더들의 모든 문제의 원인일까.

코로나 이후로 배달플랫폼은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빠르게 배달되는 음식들은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였다. 사람들의 휴대전화에는 배달앱들이 몇 개씩 깔렸다. 버튼 몇 번만 누르면 빠르게 맛있는 음식을 집에서 먹을 수 있다. 새롭게 나타난 어떤 버튼은 더 빨리 배달이 된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할인 쿠폰을 선물로 준다. 배달 버튼을 누르지 않을 이유가 사라진다. 일회용 플라스틱이 쌓이고 도로 위 교통사고가 쌓이고 매장업주들의 부담이 쌓이지만, 소비자들에게는 배달플랫폼기업이 주는 편리함 외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소비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배달플랫폼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함 '라이더유니온' 초대 위원장이자 7년 차 배달라이더 박정훈 작가가 일하면서 직접 겪었던 일화를 바탕으로 안전의 문제, 배달노동자들의 독특한 직업 환경에 대한 내용을 시작으로 법과 제도에서 방치된 배달산업의 구조와 전투 콜이 노동안전에 미치는 영향, 빠른 배달과 위험에 내몰린 배달노동자들을 양산시키는 알로리즘의 속성, 사고가 나도 책임을 지우기 어려운 배달산업의 복잡한 구조를 설명한 후 기업의 책임을 묻는 방법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산재 신청과정과 방법을 다룬 부록은 마지막에 있다.

<뼈가 부러져도 다시 오토바이에 오르는 이유> 부분을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면허가 없어도 오토바이가 없어도 괜찮은 이 세계에서 초보는 늘 환영이다. 하지만 라이더가 되면서부터 모든 책임은 오직 라이더에게 있다. 그 다음 챕터에 나오는 전투콜은 라이더에게 과속을 부추긴다. 과속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갑자기 달려드는 오토바이 때문에 놀란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었고 화가 났었으니까. 과속을 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라이더의 안전을 위해 이륜차 배송을 없애고 자동차 배송만을 하자고 하면 찬성해줄까. 라이더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빠른배송을 포기하라는 주장을 한다면, 찬성해줄 수 있을까.

우리 눈에 쉽게 보이고 자주 보이는 배달노동자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


배달산업은 배달노동자의 생명을 먹으며 계속해서 성장했고, 도로는 전쟁터로 변했다. 전사자는 장례식장으로 옮겨지고 살아남은 자는 '딸배(배달노동자를 비하하는 은어)'가 된다.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은 날에 쿠팡이츠는 5건 하면 추가 보너스를 주겠다는 알림과 문자를 보냈다."는 배달 라이더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노동자의 죽음이 그림자처럼 숨겨진 배달플랫폼기업의 태도는, 노동자를 사람이 아니라 소모품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는 소중하다. 자유는 좋다. 자유는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자유는 위험하다.

'노동의 자유' '노동의 유연화' ...이런 말들이 들려오면 저울에 무게를 재고 싶어진다. 누구의 기준에서, 누구에게 좋은 '자유' '유연화'인지.

글의 시작부분에서 나는 사고를 낸 배달노동자의 위험한 오토바이 운전에 대해 비난하는 시선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짓기에 나는 배달노동자와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다.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널 수만 있다면 도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험한 전투는 나와 상관없다고 말할 수 없다. 시민이자 소비자이자인 나는 배달노동자가 될 수도 있고 배달노동자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이웃이 될 수도 있다. 배달앱을 누르는 소비자는 배달플랫폼기업을 성장시켰고 그 성장의 동력에는 라이더들이 존재했다. 소비자는 빠른 배달의 편리성을 마음껏 누리면서 그걸 완성시키기 위한 도로 위 라이더에게는 비난을 한다. 배달플랫폼기업에게는 하는 방법을 모르니, 눈에 보이는 라이더들에게만 그렇게 한다.

비단 배달플랫폼 뿐 아니라 수많은 플랫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좁은 범위의 자유와 무한한 책임이 뒤따른다. "노동이 쪼개지고 유연화되는 것만큼 기업도 쪼개지고 유연화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모든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지우는 사회에서 벌어진 수많은 비극들을 잊지 말자. 자유와 유연화를 자주 말하는 이에게 묻고 싶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누가 지느냐고. 뭉퉁거리지 말고, 구체적으로 정확히 말해달라고.


오늘도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출근했다가 무사히 퇴근해 소중한 사람과 밥을 먹고 수다를 떠는 게 기적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