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혼 오로라 - 천체사진가 권오철이 기록한 오로라의 모든 것
권오철 글.사진, 이태형 감수 / 씨네21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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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자 좁은 일상의 울타리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바짝 쪼그라든 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이 한층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읽었던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건너온 그림책이나 아름답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주를 떠올리게 했던 그 이름은 언제나 내가 뻗을 수 있는 범주에서 벗어난 곳에 존재했다.

우연한 기회에 마주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천체 사진가 권오철 작가의 『신의 영혼 오로라』를 펼치기 시작하면서 나는 어느샌가 '아름답다'에 이어 '정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끊어낼 수 없을 정도로 오로라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나 보일 것 같은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빛이 쏟아지는 오두막과 뾰족한 가지들이 솟은 숲과 하얀 눈밭과 맑은 호수들. 평생 한번도 바라지 않았던 오로라가 내게 뜨겁게 쏟아지는 순간들이었다.

이 책은 그야말로 오로라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머리말, 에필로그, 맺음말을 제외하면 모두 3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오로라의 모든 것>이라는 주제로 오로라에 대한 정의와 발생 원인, 극대기와 역사적 자료에 의한 관측과 예보, 확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자석으로 자기장을 만들며 자기력선이 가장 강력하게 형성되는 지경이 오로라를 볼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한다.

캐나다 북부, 알래스카 북부, 그린란드 남쪽, 아이슬란드, 유럽과 사베리아의 북쪽 끝 정도에 걸쳐 있다는 오로라 존. 춥고 황량한 지역들로 사람이 살기에는 좋은 환경이 아니다. 하지만 오로라는 그런 곳에서 신비로운 옷자락을 펼친다. 우리나라에서도 붉은 색의 '적기' 오로라를 보았다는 고구려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미래의 극대기에는 이곳에서도 희미하게나 오로라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오로라는 카메라에도 제대로 담기지 않지만 인쇄물로는 제대로 담을 수 없어서 여러 번 작업을 거쳐야 하며, 그럼에도 직접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하니...우물쭈물하지 말고 버킷리스트에 적어두고 실행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들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2장 <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은 오로라를 직접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여행정보가 담겨 있는데, 여러 차례 오로라 여행을 떠나본 여행자만이 가르쳐줄 수 있는 알찬 꿀팁들이 들어있다. 여러 오로라 존 가운데서 가장 크고 공항이 있는 캐나다 옐로나이프는 머나먼 오로라 여행에서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한다. 숙소와 방한복 대여, 작은 시내에 대한 설명, 오래된 식당과 카페에 대한 설명 등과 함께 펼쳐지는 오로라를 보고 있으면 여행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3장 <오로라를 사진으로 남겨보자>는 그곳까지 가서 사진을 실패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오로라 촬영 기법에 설명을 담았다. 오로라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방법이나 빠른 속도로 댄싱을 하는 폭풍을 찍는 방법 등이 나와있지만 카메라를 다룰 줄 모르고 스마트폰으로 단순하게 찍는 것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노출이나 작동 기법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작가는 그런 나에게 강조하려는 듯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눈에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오철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이라는 책을 접한 다음부터 별에 푹 빠지게 되었지만 대학 전공을 고를 때는 "군사정권 시절이라 국가 발전의 일꾼이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세뇌를 받고 자라다 보니" 천문학 대신 공과대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천문동아리 활동을 하며 대학 시절을 보냈고, 졸업 후에는 대기업과 벤처기업에서 다양한 일을 하던 권오철 작가는 일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삶이 행복하지 않아서 고민하던 중 오로라 원정대 행사에서 천체사진가로 캐나다 옐로나이프까지 동행하게 된다. 그때 오로라를 함께 경험했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회사생활만이 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작가는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고 천체사진작가가 되어 오로라가 있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게 된다.

다른 계절보다 더 높고 어두운 겨울 밤하늘에 촘촘하게 박힌 별들을 올려다보면서도 아득한 꿈을 떠올리는데 오로라와 마주하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인간이 볼 수 있는 현상으로 대상을 한정한다면, 밤하늘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단언컨대 오로라이다. 비처럼 쏟아지는 별똥별들, 그리고 개기일식도 다 보았지만 그중 최고는 오로라였다. 과학자들이 예측한 시간에서 한 채의 오차 없이 몇 시간 동안 진행되는 개기일식은 장엄하다. 태양이 완전히 가려지는 단 볓 분, 그 기적의 순간은 숭고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오로라다. 오로라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희미한 날도 많지만 오로라 푹풍과 같이 온갖 색의 빛이 밤하늘 전체를 물들이며 휘몰아치는 순간을 맞으면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신의 영혼 오로라/ 권오철

이렇듯 맺음말에서 작가는 다시 한번 오로라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어제 지인들과 모임에서 나는 '오로라'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는 말을 했다. 뜬끔없는 말처럼 들렸을 것이다.

여유 없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갑자기 꿈처럼 등장하는 단어 하나. 하지만 오로라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이름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나를 둘러싼 시공간이 환해지고 넓어질 수 있다.

바짝 마른 팍팍한 현실에서 오로라 여행을 버킷리스트에 적어두는 것만으로 물기가 살짝 스며드는 것처럼. 언젠가는 오로라, 신의 영혼을 직접 보러 가는 날이 오기를 꿈꾸며 이 책을 자주 꺼내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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