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연극에 종종 비유하곤 하지만 인생은 연극이 되기에 너무 무겁다. 삶이라는 무대에 올라 각자의 역할을 맡아 최선을 다해 연기하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고, 커튼콜을 받을 수 있는 배우는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제대로 된 연기를 펼치지 못했을 때 받는 충격은 비할 바가 아니다. 연극 배우는 무대 밖에서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삶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다르다. 연희는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에 모든 것을 바쳤다. 프랑스에 가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불문과에 진학했지만 학과 공부보다는 연극 동아리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무대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소연 언니와 장미도 그곳에서 만나 친해졌다. 소연 언니는 불문과에서 최고 학점으로 장학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면서도 연극 동아리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지금 열심히 살지 않고 놀면 인생이 망할까봐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다. 졸업 후에는 은행에 들어가서 그곳의 분위기와 수준에 맞는 소비를 하고 스펙을 갖추며 살아간다. 연극 무대가 삶 자체였던 장미는 졸업을 한 다음에도 극단에 들어가서 연극을 계속 했지만 적당한 배역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늘 겨우 생계를 이어갈 정도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대에 오를 기회가 생기기를 바랐다. 학교에 다닐 때는 연극에 빠져서 현실을 잊고 있던 연희는 졸업과 동시에 삶이 망할까봐 불안해서 연극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출판사에 취업을 해서 고달픈 신입사원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삶이 힘들 때마다 셋에게는 두번째 정기공연이었던 <하녀들>을 함께 이야기했다. 장 주네의 부조리극인 <하녀들>은 등장인물이 세 명 밖에 되지 않았다. 클레르와 솔랑주르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하녀, 그녀들의 주인인 마담. 두 하녀는 마담의 삶을 동경하고 마담을 따라하고 싶으면서도 질투했다. 마담이 없을 때는 마담의 옷을 몰래 입고 마담의 말투를 흉내내며서 다른 삶을 연기했다. 결국 그들은 동경과 증오의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마담을 독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자신들이 파국을 맞게 된다. 연극에서 연희는 솔랑주, 장미는 클레르, 마담은 소연 언니가 맡아서 연기했다. 부조리극 특유의 난해함 때문에 해석이 어려웠지만, 그만큼 추억이 남았다. 연희의 말대로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각자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고비를 맞을 때마다 연희는 그때 연극을 더 이야기했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시간에 영원히 남아있을 불멸의 무대를. 소설을 읽으며서 감탄했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상황이 잘 드러나는 대사와 행동에서 만들어지는 생생한 캐릭터와 현실의 상황과 과거 연극을 교차시키는 연출력이 짧지 않은 소설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다. 아주 성공적인 무대가 아니면 커튼콜을 받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오늘을 연기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무대에 올라 맡은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잘 하지 못하면 다음 무대에 오르기 어렵고 그러면 영영 잊힌 사람이 될 테니까.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유쾌한 상황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뚝, 하고 전환되는 순간이 있다. 삶의 부조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연극을 삶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바친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이 결국 비참한 생활과 쓸쓸한 죽음이라면, 꿈꾸는 것을 향해 나아가라는 말을 믿고 따라가도 될까.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삶이 끝날 때까지 연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각자 맡은 배역에 맞처 최선을 다해 연기해야 할 것이다. 부조리극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연극일지라도. 『탬버린』, 『이완의 자세』에 이어 ‘청춘 삼부작’의 완결편으로 불리는 이 소설은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지 못하는 세대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청년 세대의 고민과 갈등, 방황과 실패를 무겁지 않게 유머가 섞인 리듬감으로 강약을 조절하여 보여주고 있다. 청년 세대를 향한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담겨 있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연극과 현실을 교차시키며 보여주는 방식도 슬프면서도 독특하게 재미있다. 김유담 작가의 다음을 기대하게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