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주에 산다
하지만 광주에만 살지 않았다
어렸을땐 외가인 부산에서 많이 살았고
초등학교때는 서울에서 지냈고
실상 6학년부터 대학까지만 약
10년간을 오롯이 광주에서 살은 듯 하다
대학을 졸업후엔 다시 서울에서 살다
결혼후 이곳으로 와 17년을 광주에서 살고 있다.
짚어보니 지금이 광주에서 제일 오래 살고 있는 셈이다
부산사람인 우리 엄마는 광주에서 이제는 반백년을 살고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 쪽 말투를 쓴다 대단한 생명력이다 ㅎㅎㅎ
부산으로 이사가자고 해도 안 간단다 여기가 이제는 고향이라고...

가장 예민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광주에서 보냈다.
하필 학교도 그런 학교를 갔다. 의지와 상관없어도 그런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접할 수 밖에 없는...
대학을 들어가기도 전부터 데모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니..
그래서 광주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던건가?
시간으로 보면 광주사람이 아니었던것 같은데도 광주사람이라고 생각을 한것을 보면..

타지에서 살다보면 광주에서 왔어요 라는 말은 광주사태. 그리고 광주 민주화운동. 대학어디 나왔어요라는 말은 운동열심히 하셨겠네요~ 두 이미지였었다
80년 5월엔 나는 광주에 없었고 그 대학을 다녔을 뿐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은 - 숨 쉬기 운동은 열심히 했는데- 나는 그저 슬쩍 웃을 뿐이었다.
아 네~~~~ 다 운동을 하진 않아요 하면서 ㅎㅎ
어째든 나에게 광주라는 도시는 살고 있는 동안에도 편하지 만은 않았고 타지에 살때도 고향이어서 편한 느낌만 드는 곳은 아니었다.
어지간하면 다시 올 생각이 없었는데..
결혼이라는 것이 나를 이곳으로 다시 불러들였으니..
운명인가? ㅋㅋㅋ

이래저래 무거운 도시였던것 같다.
지금은? 글쎄...
이곳이 아니면 안되라는 마음은 없는걸 보면
아직도 광주사람이 아닌가? ㅋㅋㅋ

광주라는 곳이 단순히 행정적인 명칭이 아니라는 것은
사는 사람으로써는 무거운 것은 사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겁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왜 나는 이렇게 생겨먹은 것인지...ㅋㅋ

어째든 지금 나는 광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광주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난다출판사의 걸어본다시리즈를 좋아한다
글 재주가 없어서 나는 엄두를 못 내지만 살고 있는 도시. 좋아했던 도시, 장소를 자신만의 감성으로 써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책이 걸어본다 시리즈인듯 하다.
경주. 용산. 파리 등등 여러곳에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광주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광주를 쓰는 사람이 생겼다.
광주를 책으로 읽어준다
호기심이 안 일수가 없다.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

평론가 K가 지나온 발자취는 광주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인듯 하다.
송정리. 광주가 아닌데 광주가 된.. 아직도 광주라는 느낌보다 송정리라는 옛이름이 더 익숙한 곳.
금남로. 양림동. 광주극장. 이제는 챔피언스필드가 되어버린 무등경기장. 우치 동물원. 대인시장. 망월 묘지. 영락공원. 이름만 들어도 아~ 거기..
그러나 이제는 잘 가지 않는 곳..
프로그램으로 방송으로 보여주면 그때서야 가 보는곳.
옛 추억을 곱씹으러 또는 옛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가는 곳들이다.
학부모이자 아줌마이고 엄마라는 직업을 가진 내가 느낀 광주의 그곳들은..

지금 세대들은 아니 대부분의 내 주변의 사람들은 광주를 쓰라고 하면
유스퀘어. 충장로. 전대후문 - 문화를 겪는 곳.
김대중 컨벤션 센터. 비엔날래 -체험학습 소풍가는 곳..아이들의 시선으로..
어른들은 첨단. 상무지구. 여긴 거의 술 마시러들 가는 것 같다. 유흥지이다..

또 어디가 있을까? 기억이 안 난다. 아니 잘 모른다
잘 다니지 않으니 아는 곳이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내가 다니는 공간들. 그리고 우리집이 내 활동반경의 다이다.

어느 도시든 마찬가지일듯하다
낡아가는 건물. 한산해지는 거리에. 점점 줄어드는 사람들..
그리고
새로 들어오는 건물. 화려한 네온사인에 복작거리는 신시가지..
변하는 것은 어쩔수 없다. 변해야 한다.
그런데 변화가 안타깝다. 변질이 되는것 같아서.
문화를 담고 철학을 담고 사람을 담아서 변했으면 좋겠는데 겉만 번지르하고 사람냄새가 안나는 변화만 있다.
명분만이 전부가 아니지만 명분도 중요하고 경제적이익을 무시할 순 없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가야하는 그것은 좀 지키고 가야하는데..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타이들이 창피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문화는 없어지고 있는도시가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 쓰는 사람들까지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보다 더 많으니 하는 말이다.
책속의 평론가K가 다닌 곳들 역시 관광지화 되고 있어서 TV에 광고도 하고 예쁜 명소로 소문이 나서
예전을 기억하고 있는 - 그리 먼 기억도 아니다- 개발이 덜 되었던 그 때.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고 옛날의 가치를 기억했던 그 때를 기억하고 있는 나로는 아쉬워 할 뿐이다.

어째든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을 기억하기도 하고 저자가 시니컬해서 다행이라고도 생각도 하고- 미화하고 찬양일색인 지역책보다는 나은듯 해서 -
좀 너무 뻔한 곳들을 보여줘서 아쉬운 점도 있다
이건 아마 내가 이곳에 살고 있어서 느끼는 점인듯 하다.

지리책이 아닌 도시소개책자가 아닌 책을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책을 읽게 되어 좋은것은 사실이다.
더 많이 광주를 이야기하고 광주를 읽히고 광주를 보여줬으면 한다.80년 5월의 광주만이 아니라 다른 광주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지금 세대들이 지나가면 다음 세대들은 광주라는 도시를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진다. .


나는 평론가 K를 기억한다
아니 그가 부른 노래를 기억한다. 그 노래의 이미지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신입생때 예비대학이니 수련회니 많은 행사들이 있을때
그때는 대세가 민중가요였고 학생회가 대부분 운동권들이 하고 있을 때라 분위기는 상상그대로였다.
그때 높은 학번의 선배라고 군대가려고 휴학중이라면서 신입생을 위해 노래한다고 했던것 같다.
듀엣으로 한 명은 기타들고.. 한 명은 노래하고..
그 때 노래가 존 덴버. 플라시도 도밍고의 Perhaps Love였다. 대학시절이 그리 기억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 이 노래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잊혀졌다가도 문득 기억이 나고..
그 선배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데..평론가 K는 이름이 비슷했던것 같아서... 혹시 그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이름이 여러개는 아니었을 테니까.. 그 때 그 사람이 아니면 말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노래가 뇌리에 박힌 이유가 뭘까? 노래부른 사람도 기억도 안나는 이 노래..
맞는 기억일지도 모르는 이 노래..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이유가 내가 이 책을 읽은 다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 책속에서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절대공동체는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라는 바로 그 이유때문에,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유물론으로는 설명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강렬함. 그러나 다시 체험할 수 없는 우발성과 일회성, 그 사이에 이제 틈이 생긴다. 그리고 바로 그 틈, 짧은 충만과 그 후의 아주 긴 상실 사이에서 발생한 그 틈이 1980년 이후 우리에게 전수된 기호로서의 `광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는 틈이다... 순간적이었던 절대공동체의 경험과 이후의 긴 상실감 사이에 벌어진 틈, 그것이 `광주`라는 기호의 의미라고...
광주는 끝내 금남로가 뿜어내는 저 `절대 공동체`의 자장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광주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소 집요하고 배타적이고 고립적인 정치감각, 머리보다 가슴에 휘둘리는 삶의 태도, 자주 분노하고 쉽게 울어버리는 성향들은 다 금남로에서 비롯되었다고 K는 믿고 있다. 설사 어느 순간 그 경험을 의식하지 못하게 되거나, 광주를 떠나 살게 되거나, 심지어 1980년 5월에 광주에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는데, 그날들 이후 `금남로`라는 거리의 명칭은 실제 거리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일종의 `실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죄책감과 분노와 우울과 원한등등의 어마어마한 감정지출을 요구하므로 대면하기 매우 두렵지만, 그렇다고 결코 떨처버릴 수도 없는 실재..
(53~ 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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