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장소에서 담배피우지 마라고 했다고 뺨 맞고 짐 나르는것 안 도와줬다고 뺨 맞고
나이어린 여자가 친절하지 않고 따박따박 가르침질 했다고 욕을 먹는이곳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

밤에 눈치 안보고 돌아다닐수 있게하고
가고 싶은곳 눈치 안보고 다니게 한다고 전생에 나라 구한 내가 되고,
졸지에 무지하게 복 많은 여자가 되는 이곳..
이 곳이 내가 살고있는 곳이다

실상 나는 살면서 같은 나이 학벌임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팽당한적이 한 두번이 아닌데.. 내가 저렇게 사는 이유는 같이 사는 남자가 나와 자기가 평등하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누가 알까..

대놓고 남자임을 드러내지 않을 뿐인걸.
간혹 무의식중에 튀어나오는 말들에 발끈발끈 대들고 싸우는 것에 지쳐 내버려두고 있을지도..
결혼 초에는 남편이랑만 싸웠다면 이제는 아들들하고도 싸워야한다.

니 엄마도 여자다. 여자에 대해 쉽게 함부로 말하지 마라..

자네는 너무 예민해에서 이제는 엄만 너무 예민해...
내가 예민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너무 무심한거다.
아들들 표현대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도 그 녀석들 입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단어들..
정말 꼭지 돌것 같다.

일례로 서로 말씨름 하다가 문득 튀어나오는 말 ˝야!! 이 18nyoen야˝
그 말 듣고 난 나는 눈 튀어나오는 줄....
이제는 18놈은 욕이 아니라면서 18ㄴㅕㄴ으로 욕하는 이 녀석들.. 뭐가 문제인지 뭐가 잘못 됐는지를 도통 이야기해도 인지 도저히 뭔말인지.. 어리둥절한 표정.
다 그렇게 욕하는데..

엄마가 정색하고 말하니 억지로 알았다고는 하지만.. 얼마나 달라질지는...
그 일이 2~3년전인데 아직도 들리는데...

이제 남고온지 3~4개월밖에 안됐는데 마초의 냄새를 스멀으멀 올라오는데.
군대도 있고~~ 정말이지 예전부터 군대는 안 갔으면 했었는데 갈수록 점점 더 강해진다
이때만은 신의 자식을 만들지 못한 부모로서의 내가 미워진다 ㅋㅋ

이 높고도 먼 산을 어찌 넘을까 ~

어째든 여자인 내가 생각했던것을 남자의 입으로 아니 손으로 직접 들으니 재미있기도 하고 이 사람은 정말 좀더 다를까? 그래도 대한민국남잔데? 라는 생각도 든다.

아들들에게 이 책을 툭 던져줘야겠다.

- 군대의 논리에 대한 거부감을 겉으로 드러냈다가 몇번의 집단적 폭력을 경험ㅈ한 이들은 적응을 결심하면 무서워진다. 약한 모습 다시 보이면 끝장 날 수 있다고 마음먹었는지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보다 더 악질적으로 변한다. 괴물의 탄생이다. 말 그대로 군대가더니 사람이 되었다. 이전과는 매우 다른. 물론 이런 괴물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군 생활했다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맞아, 그런 녀석 한 명 있었지˝ 라면서 신기하리만큼 그 `일부`를 기억한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일부, 그러니 충분히 구조적 문제라 지적할만하다 (76p)

가해자가 북 치고 장구 치고 가해자가 병주고 약 주는 곳이 군대다. 이런 비 합리성이 일상화된 공간에서도 폭력을 문제 삼는 자가 유난 떠는 자로 인식될 뿐이니 가해자는 용서받을 것이 없는 자가 되어 살아간다. 일반적인 세상에서 폭력이 동반된 문제가 이처럼 쉽사리 해결 될리 없다. 하지만 군대를 거쳐가는 이들은 세상 이치의 `역` 즉 오답을 정답으로 배운다.

-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 하지만 어른의 기준이 다른 군대 입장에선 참으로 놀랄만한 선순환이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면 그 때부턴 악화가 양화다 (79p)

- 아름답지 않은 것을 뒤늦게 눈치채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상황은 `아쉾다`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폭력`은 특정언행이 존재한다면 가타부타 따질 필요 없이 그 자체가 `나쁜 것`이다. 이 추잡한 것을 한참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것이 폭력이었구나`라고 인지하는 것은 땅을 치고 억울해 할 일이다. 피해자는 물론 잘못을 저지른 줄도 몰랐던 가해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잘못 된 건 `잘못되었다`고 빨리 정의내려야한다.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쁜 사회` 다.
우리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기전에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이것은 기득권세력이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문제인 것 처럼 포장하는 식과는 다르게 대중의 자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사회는 나쁜 걸 나쁘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개인을 길러낸다 (90p)

개저씨들은 `개 같은 행동`의 기준이 목소리크기와 어휘 선택으로 결정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어떤 개든 개는 개다. 개저씨는 누구나 `존엄한 인간의 가치`를 보장받아야 하는 수평적 인간관계의 균형을 깨는 행동 그 자체로 판명된다.
인터넷에 떠도는 `개저씨 체크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반말을 한다``사생활을 묻는다` 스킨쉽이나 성적농담을 일삼는다. 지위를 이용해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한다. 가부장적 생각을 강요한다 등
이런 행동들은 강도 횟수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행하는 그 자체가 문제다
(94p)

이것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비참하게 죽어가는데도 침묵했고 오히려 그런 독재정치를 자행하는 통치자에 자신들이 환호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 않겠다는 독일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여기에는 `원래부터` 그런 `나쁜`인간은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래서 사회가 무엇을 개인에게 강요하는지가 중요하다 (110p)


사람마다 약간은 다르겠지만 한국사회에서 남자들은 `폭력을 참아가면서` `수치심을 느끼면서` 남성이 되어간다. 그래서 한국에서 말하는 `진짜 남자`는 폭력에 둔감하다. 둔감하다는 것은 쌍방향이다. 폭력을 당해도 당하는 줄 모르고 저질러도 그게 자꾸만 폭력이 아니라 한다. 특히 남성들 개인이 성별에 따른 정체성을 내면화하지 않도록 교육해야하는 학교가 이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115)

한국의 남자들은 자본주의 노동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딛기도 전에 학교와 군대에서 이미 자본가가 부려먹기에 최적화된다는 말이다. 즉 한국의 남자는 어떤 사회에나 있는 남자와는 다른 남자다. 그러니 원래 그런 남자는 없다. (118)

결국 남자들은 `나는 그정도는 아니다`라면서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유 무형의 폭력을 계속 유지한다. 그래서 `괴물까지는 아닌` 자신이 좋은 남자라고 착각한다. 이런 남자에게 집안일은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도와주는 봉사의 영역이다. 그래서 `쓰레기 분리수거`라도 한 번 하는걸 집안일 `해주는` 걸로 이해하고 `나 정도면 괜찮지 않아? 당신은 좋겠다 내가 가부장적인 남편이 아니라서 얼마나 대박이야? 라면서 스스로를 칭찬하고 아내에게 기쁨의 감정을 강요한다. 그 기세등등한 자신감에 눌려 여자들은 복남이가 되어 살아간다 (166p)

그냥 이기적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정말로 남자다운 것 아닐까? 내가 갓난아기를 돌보면서 경험했던 악몽의 원인은 내가 엄마가 아니라는 생물학적 이유가 아니라 이 사회안에 `원래 엄마는 그런거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었다..... 기저귀때문에 가득 차는 쓰레기통을 자주 비우는 정도로 갓난아기와 과연 교감할 수 있을까? 많은 남자들이 `자신도 그러고 싶은데` 물리적 한계가 너무 심하다고 할 것이다. 이때 두가지를 생각하면 된다. 첫째, 당신이 원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이 사회에 강력한 요구를 해야한다. 아내를 사랑한다면서 가장 실질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을 외면하면 되겠는가. 나도 `부모답게` 아이의 성장을 가급적 많이 지켜보겠다는 의지를 자꾸만 표출해야지만 이 사회는 변화를 모색할 것이다. 둘째, 남자가 생계부양을 한다고 해서 모든 나라의 아빠들이 `한국의 남자들`처럼 육아에 무관심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는 `아빠는 돈을 버니, 엄마는 집안일을 책임지는 성 프레임을 극도로 경계한다. 아빠가 퇴근을 하면 그때부터 `함께 노동을 하고 함께 휴식을 취한다. 한국의 남자들은 `원래 그런거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원래 그런건 하나도 없다. 의지의 문제일 뿐. (177p)

남자들이 요즘 힘들어졌다는 걸 여자들의 경우와 비교하여 해석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활발해질수록 가정 내 권력이 구성원들에게 적절하게 분배된다면 이야말로 이상적 사회다. 이상적이라는 건 `균등`이 아직은 요원한 상태임을 말한다. ˝남성에 대한 여성의 예속,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성˝은 전복되지 않았다. 역학의 방향성은 그대로인 채 과거에 비해 크기만 좀 작아졌을 뿐이다. 남자들은 바로 이 점이 힘들다는 거다. 남자가 여자보다 불평등해서도 아니고 남녀가 평등해져서도 아니고 단지 `과거만큼` 여자가 불평등하지 않아서. 물론 `의무`의 측면에서 지금의 남자들이 겪는 고충이 과거에 비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졌다는 것도 명백한 팩트다. 가족 부양의 비용자체가 아버지 세대의 경우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분노한다면 그 화살은 여자가 아니라 마땅히 사회에 던져야한다. 그리고 그 사회를 만든 아버지에게 다짜고짜 캐물어야 한다. 허구헌 날 세상 근심 다 짊어진 표정우노 가정 내 권위를 보장받았던 아버지 말이다. 이런 사회를 만들면서 집에서 황제 노릇을 했단 말인가. 이제는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진 정도가 아니라 일이 삶을 건사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뼈 빠지게 일하고도 이리저리 눈치 봐야하는 남자들의 기구한 팔자를 만든 여자에게서 찾는 건 어불성설이다.
사회의 포악스러움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을 외면한 채, 여자들 기에 눌려 산다면서 자신들의 `심리적 거세`만을 말하기 바쁜 지금의 아버지들을 보고 아들들은 이상한 걸 배운다. 이들은 아버지가 할아버지만큼 화려하게 살지 못하는 `사실`을 보고 지금의 세상이 여자들에게 훨씬 유리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185p)


이런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자꾸만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취업과정에 여자들이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화제가 떠오르면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수 없다. 여자는 원래 그렇다. 기업입장에서는 어쩔수 없다!`면서 차별을 합리화하는지를 토론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199p)



낭만적인 남편의 증가는 `사회구조`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실증할 뿐이다. 심리적 위안이 동반된 가정은 `화목`할 수는 있지만 이것만으로 `평등`이 완성될리 없다. (291p)


희생의 크기로 본다면 가장 화낼 사람은 아내이자 엄마임이 분명하지만 그녀는 늘 분풀이 대상 즉 호구일뿐이다. 남편은 사회생활에서 살얼음판을 겪는 스트레스를 자녀는 번번히 취업문턱을 넘지 못한 울분을 집에서 고스란히 표출한다. 가장 희생한 사람이 자책을 해야 할 지경이다. 물론 다수의 여자들은 지금껏 산전수전 겪었던 경험으로부터 터득한 지혜를 발휘하여 누군가의 화를 받아준다. 그리고 이와 비례하여 본인의 화는 속으로 감춘다. 운동장은 `더 ` 기운다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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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7 1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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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7 2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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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7 2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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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8 1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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