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프란스
정 지용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 불멸의 모더니스트

시보다는 가곡으로 더 잘 알고 있는 시를 쓴 시인.
글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직선적인 말도 필요하지만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닌 진실됨이 묻어나는 아름다움을 시어에 담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섰을 듯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렂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밭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밭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별 1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 고나

아스름 닫히려는 눈초리와
금실로 이은 듯 가깝기도 하고,

잠 살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듯, 솟아나듯,
불리울 듯, 맞아들일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이는 화환에 피어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위로 손을 여미다.



비극

`비극`의 흰 얼굴을 본 적이 있느냐?
그 손님의 얼굴은 실로 미하니라.
검은 옷에 가리워 오는 이 고귀한 심방에 사람들은 부질없이 당황한다.
실상 그가 남기고 간 자취가 얼마나 향그럽기에
오랜 후일에야 평화와 슬픔과 사랑의 선물을 두고 간 줄을 알았다.
그의 발 옮김이 또한 표범의 뒤를 따르듯 조심스럽기에 가리어 듣는 귀가 오직 그의 노크를 안다.
묵이 말라 시가 써지지 아니하는 이 밤에도
나는 맞이할 예비가 있다.
일찍이 나의 딸 하나와 아들하나를 드린 일이 있기에
혹은 이 밤에 그가 예의를 갖추지 않고 올 양이면
문 밖에서 가벼이 사양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