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제목부터 너무 맘에 든다.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책.
중학생 시절 입학전 숙제가 데미안을 읽고 독후감 쓰기였다. 너무 어렵다고 느끼면서도 그냥 좋았다. 그 뒤 <수레바퀴 아래에서>와 <지와 사랑>까지 읽고나서는 헤르만 헤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에 항상 꼽혀 왔었다. 그러고는 한참 헤세를 만나지 못하고 지내왔다. 헤세가 3천편이나 되는 서평을 썼다는 것은 처음 듣는 내용이다. 그중 몇편을 골라 옮겨놓은 것이 이 책이다.
사실 헤세가 소개하는 책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유명하긴 하지만 미천한 나의 독서행태로 살펴보건대 거의 접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한장한장 넘겨나가는 데 쉽지 않았고 이해하기 위해 시간과 공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읽지 못한 책들의 서평들일지라도 그 글들을 읽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평생 책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는 헤세, 그러니 3천편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서평을 써내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위대한 작가가 남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이나 소개글, 평가를 내린 글들을 읽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일이었다. 날카로운 비판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고 거의가 따스한 시선으로 써내려 갔다. 간혹 비평을 한다해도 작가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게끔 포용하는 태도이다. 헤세의 문학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글로 쓰인 모든 것 중에서 나는 오로지 글쓴이가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글을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정신임을 알 것이다.
타인의 피를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글을 읽으며 게으름 부리는 자들을 미워한다."
---- 9쪽 옮긴이의 글 중에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용
이 글을 읽으며 책을 읽는 자세에 대해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본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헤세조차도 피로 글을 썼고 타인의 피로 쓰인 글을 이해하기 위해 게으름부리지 않고 처절히 노력하였을 것이다.
"여기 적은 생각을 그런대로 맥락을 갖춘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내게는 가능하지가 않았다. 내게는 그럴 재능도 없거니와, 그 밖에도 많은 작가들이 하는 일이지만, 몇가지 발상만을 엮어서 실제로는 일부만 좋고 대부분은 그냥 하찮은 내용을 가지고 올바른 결론이라는 듯 완전성의 인상을 주는 글을 쓰는 것이 일종의 오만함이라고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 72쪽
나 또한 서평이라는 글을 쓰면서 자주 느끼던 감정인데 헤세가 콕 찝어 문장으로 써놓았다. 저 위대한 헤세 조차도 생각을 형식으로 갖춰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그런 재능은 본인에게는 없다고 털어놓는데... 약간의 위안이 되었다고 해야하나... 머릿속의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꾸준히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헤세가 소개해준 책들을 읽어보고 다시한번 이 책을 보고, 나의 느낌과 헤세의 느낌을 비교해보고 싶다. 앞으로 책읽기에 더 열정을 쏟아붓고 싶다는 동기를 심어주는 책이다. 내 평생에 걸쳐 3천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고 그에 해당하는 서평을 쓰게 될지도 알 수 없지만 황새를 따라가 보고 싶다.